할머니 추석 선물 사온다더니… 안타까운 대학생 '효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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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진아, 할머니 추석선물은 우짜란 말이고…."

14일 오후 경남 마산삼성병원 장례식장 제3분향실. 제14호 태풍 '매미'의 영향으로 물에 잠겼던 마산 해운프라자 지하 2층에서 시신으로 발견된 문봉진(20.경남대 기계자동화과1)씨의 가족들이 서럽게 흐느끼고 있었다.

文씨는 이 건물 지하3층 노래방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던 중 변을 당했다. 그는 추석날인 11일에 이어 12일에도 일을 했다. 추석연휴에도 근무를 해달라는 주인의 부탁을 기꺼이 들어줬던 것이다.

그는 군복무 중 휴가를 나온 형 장진(24)씨에게 "하루만 일하면 할머니 선물 비용을 마련할 수 있다"는 말을 마지막으로 남겼다.

文씨가 숨진 12일은 아르바이트 한달 근무가 끝나는 날이어서 가족들을 더욱 안타깝게 했다.

文씨는 앞을 볼 수 없는 할머니에게 추석선물로 새 지팡이를 사드리겠다며 한달 전부터 부모의 허락을 받고 아르바이트를 했었다. 매일 오후 7시부터 이튿날 오전 2시까지 일곱시간을 근무하고 시간당 2천원을 받는 조건이었다.

文씨는 이날 영업이 끝나면 20여만원을 손에 쥘 수 있었다. 文씨의 아버지 문수태(48.사업.경남 마산시 회성동)씨는 "오늘만 근무하면 할머니 선물을 사드릴 수 있다며 아침에 밝은 표정으로 집을 나갔다"며 안타까워 했다.

아버지가 기계 가공업체를 운영하는 文씨 집 살림은 넉넉한 편이다. 하지만 봉진씨는 대학입학 후 아버지에게 용돈을 한푼도 받지 않았다. 주말이면 공사현장에서 일한 돈으로 할머니가 좋아하는 과자를 사오고, 수시로 할머니 손을 잡고 집 주변을 산책하는 등 효심도 지극했다.

文씨의 이모부(40)도 "당당하게 아르바이트를 하는 모습이 대견한 조카였다"고 했다. 文씨의 친구인 金모(21)씨는 "봉진이는 아르바이트 한 돈으로 형편이 어려운 친구들에게 점심을 자주 사주는 착한 친구였다"고 말했다.

文씨는 가게에 물이 밀려들자 주인과 함께 손님들을 대피시킨 뒤 뒤늦게 현장을 벗어나려다 변을 당한 것으로 확인돼 주위를 숙연케 하고 있다.

그가 노래방 주인(33)과 함께 싸늘한 시신으로 발견된 지점은 지하 2층. 사고 당일 지하층 입구에 물막이 둑을 설치하고 상점의 손님들을 대피시킨 건물관리소장 尹모(43)씨 등이 文씨가 주인과 함께 손님을 피신시키고 지하 3층 노래방 출입문을 잠그는 모습을 목격했던 것이다.

마산=허상천.김상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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