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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eek&in&Out레저] 여주 황포돛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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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여주군 남한강에 떠 있는 황포돛배. 뒤편으로 마암과 영월루가 보인다.

나는야 황포돛배.

경기도 여주군 남한강 기슭에서 당신을 기다리고 있지. 봄바람 살랑 부는 날 당신이 뱃전에 오르면 나는 너부시 인사를 해. 대개들 바람 때문에 배가 잠시 흔들린 것으로 생각하지만.

내가 이곳에서 진수식을 한 것은 지난해 5월이야. 사람들을 태워 유람을 시켜 주는 게 내 소일거리지. 강을 건너 신륵사 앞까지 갔다가 뱃머리를 돌려 강물을 따라 여주대교 밑을 통과해 영월루와 마암 앞을 지나 30분 만에 나루터로 돌아오지.

하지면 강 건너 신륵사의 다층전탑은 분명 기억하고 있을 거야. 우리 할아버지, 그리고 할아버지의 할아버지들이 남한강 너울을 헤치며 한강.서해는 물론이며 내륙 깊숙이 자유롭게 누비던 모습을 말이야. 댐이 생기기 전까지는 내륙의 중심인 충북 충주에서 경기도 여주.광주를 거쳐 서울과 서해까지 물길이 통했어. 그래서 우리 할아버지들이 물자와 사람을 많이 실어 날랐지. 1960년대까지만 해도 황포돛배가 다녔으니까. 그래서 가수 이미자씨도 '황포돛배'라는 제목의 노래를 부른 것 아니겠어.

도자기 가마

신륵사

'마지막 석양빛을 기폭에 걸고 / 흘러가는 저 배는 어디로 가느냐 / 해풍아 비바람아 불지를 마라/파도소리 구슬프면 이 마음도 구슬퍼'

옛적의 영화를 떠올리자니 정말 구슬퍼지는군. 그런데 어떤 물자를 실어 날랐느냐고. 주로 곡식과 특산물이었어. 고려시대부터 조운(漕運)제도라는 게 있었지. 나라가 조세로 징수한 세곡을 배에 실어 날랐다는 얘기야. 이를 위해 물길 닿는 곳에는 주요 나루터를 세웠는데, 저 신륵사 앞의 조포나루, 그리고 역시 여주에 속하는 이포나루가 그런 나루터들이었지.

소금도 많이 실어 날랐어. 보통 삼남지방(영남.호남.충청)에서 소금을 배에 실은 뒤 서해와 한강을 지나 강원도와 경기도의 산간으로 옮겨주었지. 소금이 제대로 유통되지 않으면 난리가 나기도 했어.

곡식 외에 내륙에서 한강으로 자주 실어나른 것 중 하나가 강원도 원주.양구 등지에서 퍼온 백토(白土)야. 이 흙의 목적지는 경기도 광주에 있던 사옹원 분원이었어. 조선시대 궁궐에서 쓰는 그릇류를 거기에서 만들었지.

주제가 도자기로 이어졌는데, 이곳 여주와 광주.이천 등이 도자기 산지로 유명하지. 여주에서는 주로 일반 서민들의 생활 도자를, 광주에서는 왕실 도자를 만들었어. 이후 여주의 도공들이 이천으로 옮겨가면서 이천에서는 예술 자기를 주로 빚었던 게지.

알고 있겠지만 세 곳 모두 남한강을 끼고 있어. 도자기란 게 물과 흙이 만나야 만들어지는 것이잖아. 찰흙을 만들고 또 유약을 입히려면 물이 많이 필요하거든. 완성된 도자기를 깨뜨리지 않고 서울까지 실어 나르려면 육로보다는 아무래도 수로가 낫기도 했지. 도자기가 널리 퍼지는 데에 우리 황포돛배들이 일등공신 역할을 한 셈이야. 그러기에 나도 돛에 흙(황토)과 물을 섞어 바른 것이지.

이야기는 이쯤 해두고 뱃놀이를 떠나볼까.

강 건너 신륵사를 봐. 저렇게 강변 가까이 있는 절은 흔하지 않아. 부여의 고란사 정도가 떠오르는군. 신륵사는 신라시대 때 세워졌는데 고려 말 공민왕의 왕사를 지내기도 했던 나옹선사가 이곳에서 입적해 유명해졌지. 이 절 다층전탑이 남한강을 굽어보는 모습은 참으로 운치 있어. 올 연말까지 보수를 하느라 탑이 지금은 철골에 둘러싸여 있기는 하지만.

자 이제 뱃머리를 돌려 하류 쪽으로 가볼까. 저 앞 절벽 바위와 그 위의 누각(영월루)이 보이지. 저 바위를 마암이라 부르는데 예로부터 남한강의 거친 물결을 막아 여주를 보호해줬지. 여흥 민씨의 시조가 저 바위에서 나왔다는 전설도 있어. 여흥은 여주의 옛 이름이야. 여흥 민씨 중 유명한 사람이 명성황후지. 명성황후 생가(여주읍 능현리)도 물가에서 멀지 않아. 이곳 여주는 세종대왕릉(능서면 왕대리)과 효종대왕릉(왕대리)으로도 유명하지. 위대한 임금을 두 분이나 모신 것만 봐도 이곳 여주 역사가 얼마나 유서 깊은 줄 짐작하겠지.

자, 도도한 물흐름을 봐. 물 따라 역사도 함께 함께 흘러온 거야. 그 역사를 우리 황포돛배들이 함께했다는 것을 잊지 말아 줘.

<여주> 글=성시윤 기자 <copipi@joongang.co.kr>
사진=권혁재 전문기자 <shotgun@joongang.co.kr>

*** 여행정보

■ 여주 황포돛배=여주군청에서 직접 운행한다. 신륵사 강 건너편에서 매일 오전 11시, 오후 1, 2, 3, 4, 5시 출항하며 매주 월요일에는 배를 띄우지 않는다. 45인승이며 승선 요금은 어른 5000원, 어린이 3000원. 031-887-2867.

■ 여주 도자기 박람회=20일부터 5월 14일까지 여주군 여주세계생활도자관(031-884-8715)과 신륵사 관광지 일원에서 제18회 여주도자기박람회(www.ceramicexpo.org)가 열린다. 돌.물.나무.꽃 등과 어우러진 인테리어용 생활 도자를 선보이는 '세라믹하우스', 5가지 테마로 나눠 놀이와 체험을 하는 '어린이특별전' 그리고 '그림 속의 그릇, 그릇 속의 문화' '동화 속 도자 세상' 등의 전시 행사를 마련한다. 여주도자기박람회추진위원회 031-887-2281∼3.인근 이천시도 설봉공원 일대에서 21일부터 5월 14일까지 제20회 이천도자기축제(www.ceramic.or.kr)를 열린다. 이천도자기축제추진위원회 031-644-2280.

■ 여주 여행 명소=신륵사(031-885-2505), 명성황후 생가(031-887-3576,7), 세종대왕릉(031-885-3123) 등에 문화유산해설사가 상시 배치돼 있다. 여주 역사 및 문화 전반에 대해 알고 싶다면 여주 향토사료관(031-887-3581)을 들를 만하다.

■ 추천 식당=여주대교 북단의 '마우리'(031-885-8840). 쇠고기돼지고기 숯불구이를 여주 도자에 담아 내놓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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