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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 노무현은 어떻게 사람들 마음을 훔쳤을까?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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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환영의 책과 사람] (12)《노무현이라는 사람》의 저자 이창재 감독

이창재 감독에게 노무현은?
정치라는 진흙에 함몰되지 않고
뭔가 다른 가치를 구현한 분

노무현을 우상화하면?
인간 노무현이라는 달을 못 보고
손가락만 볼 위험 있다

인터뷰한 사람들이 말하는, 노무현 대통령 자신에게 가장 큰 아쉬움은?  
“나보다 더 힘들었던 오바마는 저렇게 젠틀하고 설득력 좋은데
나는 왜 투사처럼 싸움꾼처럼 했을까?”

노무현의 시대를 거친 국민, 유권자, 한국인은 노무현 대통령에 대해 누구나 한마디씩 할 수 있다. 그를 싫어하건 좋아하건 할 말이 아직도 많다.

그에 대해 ‘김수환 추기경과 더불어 대한민국 현대사의 양대 바보였다’고 말할 수 있다. ‘당신이 떠나는 길마저도 정치적 고려를 한 정말 무서운 사람, 마키아벨리의 권고에 충실했던 정치적인 사람’이라고도 말할 수 있다.

인간 노무현에 대해 가장 많이 아는 인물 중 한 명은, 영화 〈노무현입니다〉에 이어 이번에 《노무현이라는 사람》을 출간한 이창재 감독이다.

《노무현이라는 사람》, 이창재 지음, 수오서재

영화 〈노무현입니다〉(2017)는 2002년 새천년민주당 국민참여경선에서 지지율 2%로 시작해 대통령 자리까지 쟁취한 노무현 스토리를 그린 영화다. 총 관객 수 185만, 매출액 145억. 다큐멘터리∙독립영화 분야 역대 흥행 3위인 화제작이다.

이창재 감독은 노무현 대통령을 “우상화가 아닌, 또는 신화나 신격화가 아닌” 방식으로 접근하려고 했다고 말한다.

노무현 반대파뿐만 아니라 그의 영원한 지지자들까지 이창재 감독을 비난, 비판한다고 한다. 비난, 비판 듣기 좋아하는 사람은 없다. 욕먹을 각오 하고 이창재 감독이 노무현에게 빠진 이유는 뭘까. 중앙대 첨단영상대학원 교수이기도 한 이창재 감독을 만났다.

다음은 인터뷰를 편집하고 요약한 결과다.

- 영화 〈노무현입니다〉와 책 《노무현이라는 사람》의 차이는?
“영화는 시간 예술이다. 95분 안에 노무현 대통령 이야기를 다 집어넣을 수 없었다. 중요한 이야기 줄기를 중심으로 가지치기했다.
보통은 어떤 인물을 2시간 안에 담는 데 큰 무리가 없다. 하지만 제가 노무현을 들여다보니 그는 몇 시간 영화로는 담을 수 없는 큰 숲이었다.
인터뷰한 분 중에 노무현과 안 가까운 사람이 없었다. 그를 단 하루 만난 사람과 30년 함께한 사람 중에 누가 더 가까운지 알 수 없었다.
그분은 어떻게 많은 사람을 당신과 가까운 사람, 자기 사람, 동지로 만들었을까? 답은, 참 풍요로운 품성이었다. 그 품성이 드러나고 자랄 수 있었던 배경이나 토양, 맥락에 대해서는 《노무현이라는 사람》을 통해서 풀어보려고 했다.

- 이창재 감독께서는 전작들, 무당 이야기인 〈사이에서〉, 비구니 수행도량 이야기인 〈길 위에서〉, 호스피스 봉사하는 수녀님들 이야기인 〈목숨〉에서 주로 종교적인 주제를 많이 다루었다. 〈노무현입니다〉는 정치하고 관련됐다. 노무현 대통령에 대해서도 뭔가 종교적, 영성적으로 접근했는가?
“그런 욕심이 좀 있었다. 깊이 들어가 보면 정치에도 영성적인 것이 있다는 것을 보여줄 수 있지 않을까 했는데, 거기까진 좀 어려웠던 것 같다. 제 개인적인 욕심이었다.
제가 《노무현이라는 사람》이나 〈노무현입니다〉를 통해서 보여주려고 했던 것은, 현세적인 대통령을 떠나 한 인간에 초점이 맞추는 것이었다. 노무현을 만나기 전까지 제 경향성을 말씀드린다면, 탈현세적인 욕망이 있었다. 그래서 이 현실이라는 늪지대를 조금 벗어난 연꽃 같은 것을 가능하면 찾고 싶었던 것 같은데, 정치라는 장소는 연꽃이 필 수 없는 진흙더미 같다.
이 분이 연꽃인지 아닌지는 제가 판단할 수 없을 같다. 아마도 그는, ‘진흙 안에서도 진흙에 함몰되지 않고 어떤 뭔가 다른 가치를 구현한 분이다’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 분은 봉하마을에 내려가면서부터 정치나 사회에서 벗어나 종교적인 것, 문화적인 것에 관심을 가지기 시작하셨고, 노력도 없지 않아 하신 것 같은데 꽃을 못 피우고 갔기 때문에 제가 원했던 영상이나 그분의 영성을 충분히 담기 어려웠다.”

이창재 감독

이창재 감독

- 인터뷰 대상이 72명. A4 용지로 1500매, 시간으로는 200시간. 어마어마한 분량이다. 이창재 감독은 인터뷰 대상에게 다음 네 가지 질문을 했다고 알려졌다. (1) 당신에게 노무현은 어떤 사람이었나, (2) 그의 무엇이 당신을 움직였나, (3) 당신은 왜 그를 잊을 수 없나, (4) 당신은 그를 만나고 어떻게 변했나. 이번에 인터뷰 당하는 입장에서 이창재 감독은 어떻게 답할 것인가?  
“제가 인터뷰 대상이 되니 당황스럽다. ‘노무현을 만나고 어떻게 변했나’라는 질문에는 답할 수 있다. 제가 사실 좀 변했다. 인터뷰해주신 분들에게 제가 그 많고 많은 좋은 말씀을 들었지만, 생활 속에서 뭔가 선택할 일이 있을 때 그때그때 계속 떠오르는, 가장 인상 깊은 노무현의 말은 이것이다.
‘5.1 대 4.9나, 4대 6 대. 이런 이익 또는 명분, 가치가 있다 했을 때 어떤 판단을 해야 할까. 4라는 가치의 선택, 4.9라는 명분의 선택이 옳다. 지금 당장은 1을 잃는 것 같고, 더 나아가 5.1을 잃는 것으로 보이지만, 명분은 오래가고 실익, 이익은 짧게 간다. 그렇기 때문에 길게 보고 살려면, 늘 가치와 명분을 선택하는 게 옳다.’”

- 노무현 대통령에 대해 “우상화가 아닌, 또는 신화나 신격화가 아닌, 인간 노무현”이라는 접근이 필요한 이유는?  
“그가 인간이기 때문에, 우리도 그와 동일시하거나 닮을 수도 있고 비판할 수도 있다는 점을 꼭 이야기 하고 싶었다. 우리가 어느 시점에서 한 인물을 회상할 때, O/X중에서 O라는 입장을 선택하면 상당히 큰 우상화의 위험성이 있다. 우상화가 진행되면 될수록 노무현 대통령이 우리와 멀어질 거라고 본다.
노무현의 가치나 노무현 당신의 품성으로 본다면, 노무현은 우상화를 가장 경계했다. 자칫 인간 노무현이라는 달을 안 보고 우상화된 노무현이라는 손가락을 볼 위험이 있다.

이창재 감독

이창재 감독

- 인간 노무현 스스로에게 가장 큰 아쉬움은 무엇이었는가.  
“인터뷰한 여러분의 말을 전하면 ‘오바마는 나보다 더 힘든 과거, 어린 시절을 거쳤는데 저 양반은 어떤 표현을 하더라도 저렇게 설득력이 좋고 젠틀(gentle)하게 사람들 마음을 울리는데 나는 왜 투사처럼 싸움꾼처럼 했을까?’ 노무현 대통령은 그게 당신에게 가장 부끄러운 일이라고 유시민, 김경수 등 동지들에게 여러 번 말했다고 한다. 노무현은 ‘나는 다 옳았어’라고 하지 않고 자신을 부끄러워했다. 그런 그이기에 신격화 시도를 절대 받을 수 없을 것이다.”

- 독자들에게 인터뷰를 정리하는 한 말씀 부탁한다.  
“이 번 책은 ‘노무현 입문서’다. 역사적 인물 노무현이 아니라, 한 인간 노무현을 탐구하기 위한 하나의 통로다. 그 통로를 아직 모르고, 아직 노무현이라는 이름만, 그의 ‘아우라’만 알고 있는 분이 있다면 이 책을 통해 노무현을 읽을 수 있고 이해할 수 있고 나아가서 닮을 수도 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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