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명천지에 인신매매라니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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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대명천지, 밝은 세상에 대로에서 온갖 파렴치하고 흉포한 범죄가 버젓이 일어나고 있어 올림픽을 여는 나라의 체면이 말이 아니다. 캠퍼스 안에서 여대생이 성폭행을 당하는가 하면, 부녀자를 유인해서 윤락가에 팔아 넘기는 무서운 일까지도 자행되고 있다. 그것도 수도 서울의 한복판에서 9차례에 걸쳐 17명의 부녀자를 폭행하고 사창가에 팔아 넘겼다는 것이다.
인신매매라는 무서운 사회악이 이토록 오랜 세월동안 그치지 않고 오히려 더욱 대담해지고 극 악화되는 까닭은 무엇 때문인가. 그 근절책은 없는 것인지 우리는 새삼 주위를 돌아보게 된다. 지난해 10월 여중·고생 5백여 명을 윤락가에 팔아 넘겼던 인신매매조직 15개 파가 검거되었을 때, 사회에 준 충격은 너무나 컸었다. 롤러스케이트장 주변의 여학생을 유인했거나「관광안내원 모집」이라는 허위광고를 내어 찾아오는 희망자를 인도 책에게 넘겨 지방의 윤락가로 팔아 넘기는 수법이었다. 그후 1년이 되었지만 이들의 범죄는 그치지 않고 있다.
금년 4월에는 여학교 앞 빌딩에 수석사무실을 위장으로 차려 놓고 중-고 여학생을 납치해서는 자신들이 경영하는 술집의 접대부로 일하게 한 사례도 있었다. 한달 사이에10여명의 소녀들이 패륜의 구렁텅이에 빠졌던 것이다. 장소와 수법이 약간씩 다르긴 하지만 인신매매의 범죄수법은 두 가지로 대별된다. 허위광고를 내어 찾아온 희망자를 술집 또는 사창가로 넘기고 도망을 못 가도록 히로뽕까지 주사시키는 악랄한 짓을 저지른다. 유인, 매매, 감금의 방식이다.
또 다른 수법은 유인이라는 간접적 방법을 버리고 곧바로 인신매매의 대상을 지목하고서는 납치하거나『드라이브하자』는 식의 접근을 해서 자동차로 납치를 하고 폭행을 한 다음 인도 책에게 넘긴다.
가출소녀가 줄어들고 직업소개소등에 대한 행정단속이 강화됨에 따라 재래식의 은폐방식을 떠나 큰길한복판에서「인간사냥」을 하겠다는 것이 이들의 최근 범죄유형이다.
올림픽이 눈앞에다가 서 있고 개인소득 3천 달러가 넘는 한국의 서울에서 노예선의 선장과 같은 사람사냥이 계속되어도 방치할 수밖에 없는 것인지 안타깝기만 하다.
누구나 알고 있듯이 인신매매는 충동형 범죄가 아니다. 길 가던 여인을 보고 갑자기 납치하려는 충동이 일었다면 이것은 정신병자의 소행일 수밖에 없다. 인신매매조직은 사전에 철저히 조직화된 고도의 폭력집단이라고 봐야 한다. 경찰이 이들의 소탕작업을 철저히 벌이겠다는 의지만 있다면 어떤 형태로든 단속이 될 것이고 적어도 범죄가 늘어나지는 않았을 것이다.
사건이 터질 때마다「인신매매 강력 단속」이나「구인광고 규제강화」 따위의 판에 박은 넋두리만 되뇌는 당국의 무성의가 인신매매를 성업으로 끌고 가는 것은 아닌가.
더욱 무서운 사실은 이들 인신매매조직이 갈수록 성행하고 있는 그만큼 인신매매의 수요도 더욱 늘어나고 있다는 점이다. 정상적인 여성의 취업기회가 적은 반면 여성의 몸을 요구하는 수요가 늘어나고 있는 우리 사회의 부도덕한 사회풍토가 인신매매의 간접적 주범이 될 것이다.
직·간접으로 매춘에 관련된 여성의 숫자가 1백만 명이 넘을 것이라는 한 보고서의 추산은 우리를 더욱 전율케 한다.
결국 인신매매의 수요와 공급 루트를 원천적으로 봉쇄하는 길은 건전한 사회오락의 장려와 도덕적 기풍을 확립하는 노력이 경주되어야 하며 아울러 인신매매조직과 매춘조직에 대한 경찰의 지속적이고도 강력한 단속밖에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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