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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동연 패싱이 불안한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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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이정재
이정재 기자 중앙일보 칼럼니스트
이정재 중앙일보 칼럼니스트

이정재 중앙일보 칼럼니스트

김동연 경제부총리 ‘건너뛰기(패싱)’ 논란이 또 불거졌는데, 모호한 게 많다. 우선 김동연부터다. 그는 왜 이런 민감한 시기에 최저임금 속도 조절론을 꺼냈을까. 항간에선 그가 총대를 멨다는 말도 나온다. 최저임금 인상 후폭풍이 워낙 크니 청와대는 출구전략이 필요했고, 그 역할을 김동연이 했다는 것이다. 그래서 청와대 수석들과 다른 장관들 10명이 “최저임금 인상, 문제없다, 잘 되고 있다”는데 김동연 혼자 ‘문제 있다’고 외치는 악역을 맡았다는 것이다. 이른바 굿캅, 배드캅 전략이다.

남북 경협 본궤도 오르면 #깐깐한 경제 사령탑 필요

이런 주장은 하지만 설득력이 떨어진다. 김동연이 최저임금 속도 조절론을 말한 것은 최근 일이 아니다. 그는 작년 9월에도 한 언론 인터뷰에서 “최저임금 인상의 속도와 폭을 신축적으로 하겠다”고 했다. 무엇보다 진짜 출구전략이라면 내년 최저임금이 동결되거나 소폭 인상에 그쳐야 한다. 현재로선 그럴 가능성이 거의 없다.

김동연의 승부수였을 수도 있다. 세종 관가에선 “김동연의 내공은 간단치 않다. 쉽게 패싱당할 사람이 아니다”라는 평이 많다. 실제 그는 지난해 패싱 논란이 불거지자 “내각에 믿고 맡겨 달라”고 직접 대통령에게 요청하는 강단을 보였다. 이번 최저임금 속도 조절 주장이야말로 지방선거 후 자신의 경질 가능성까지 염두에 둔 ‘고심의 한 수’라는 것이다.

물론 진짜 김동연 패싱일 수도 있다. 조짐은 정권 초기부터 있었다. “세율 인상은 없다”던 김동연의 말을 아랑곳하지 않고 여당은 소득세·법인세 인상을 밀어붙였다. 청와대도 기다렸다는 듯 호응했다. 김동연만 ‘왕따당했다’는 말이 나왔다. 부동산 종합대책 등 민감한 경제 정책을 실세 청와대 참모·장관들이 직접 발표하는 일도 잦았다. 예전에는 경제부총리가 하던 일들이다. 대통령 주재 회의 때 “김동연이 질책을 받았다”는 말도 간간이 흘러나왔다.

이유 없는 결과는 없다. 애초 김동연은 이 정부와 잘 맞지 않는 사람이다. 그는 박근혜 정부에서 장관을 지냈다. 시장 경제와 규제 개혁 전도사로 뛰었다. 건전 재정에 매달려온 예산통이기도 하다. 특별히 정권 창출에 기여한 것도 없다. 게다가 대통령이 “개혁에는 적합하지 않다”는 관료 출신이다. 18개 부처 장관 중 관료 출신은 그가 유일하다.

그렇다고 그가 정권과 다른 목소리를 내온 것은 아니다. 그는 1년 내내 “유연하다”는 평을 들었다. 달리 말하면 이 정부 경제 철학에 잘 맞춰왔다는 의미다. 그러니 석연찮다. 김동연 패싱이 사실이라면 왜 하필 지금일까. 익명을 원한 정부 관계자는 “남북 화해 무드와 경제협력을 앞두고 깐깐한 경제부총리의 존재가 불편할 수 있다”고 말했다. 정통 경제 관료들은 ‘퍼주기 경협’에 본능적으로 거부감을 갖게 마련이다. 지난주 일부 언론은 “남북 경협 컨트롤타워를 장하성 정책실장이 맡게 됐다”고 보도했다. 청와대는 즉각 “아직 논의한 바 없다”며 “(결정된다면) 경제부총리가 컨트롤타워가 될 것”이라고 부인했다. 뒤에 말을 바꾸긴 했지만 청와대가 이틀 전 “앞으로 경제팀 회의를 장 실장이 주도해 한다”고 발표해 논란이 남았던 때다.

당장 다음주면 북한 비핵화의 청구서가 날아올 가능성이 크다. 청구서의 상당 부분은 남북 경협이란 이름으로 포장되기 쉽다. 정확한 계산과 빈틈없는 집행이 필수다. 자칫 ‘퍼주기 경협’으로 흐르면 70년 우리 경제의 적공(積功)이 한순간에 무너질 수 있다. 이념·정파적 인물을 경협 사령탑에 앉히는 건 정권 차원에서도 부담이다. 불필요한 논란만 부를 수 있다. 지금은 ‘산타 대통령’을 대신해 브레이크를 밟아줄 깐깐한 경제 사령탑이 필요한 때다.

이정재 중앙일보 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