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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갑 때 제자 168명 그린피 쏜 최고령 골프 레슨 프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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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오래] 민국홍의 19번 홀 버디(5)

'양찬국의 노장불패 2.0'에 출연한 양찬국 프로. [중앙포토]

'양찬국의 노장불패 2.0'에 출연한 양찬국 프로. [중앙포토]

‘노장 불패’의 골프레슨프로 양찬국(69)이 최근 시니어 골퍼들의 열화같은 요청으로 골프방송에 불려 나갔다. 최고령의 레슨 프로이지만 골프장의 헤드 프로로 골프장 운영을 비롯해 방송 활동과 주니어 골퍼 지도 등 인생의 최고 황금기를 구가하고 있다.

그는 골프를 위해 영혼을 거래한 현대판 ‘파우스트’다. 골프에 미쳐 파묻혀 살고 있으며 골프에 의해 인생구원을 받는 너무나 범상한 인물이다. 그는 15년째 72홀을 보유한 스카이72 골프 앤드 리조트의 헤드 프로로 활동하고 있다. JTBC 골프방송에서 3년간 노장 불패라는 레슨프로로 명성을 얻더니 최근에는 다른 골프방송에 출연해 인기를 누렸다.

칠순을 1년 앞둔 고령의 그가 요즘 잘나가는 젊은 골프레슨프로와 비교해 조금도 떨어지지 않는 활약상을 보인다. 5000여명의 제자를 둔 ‘양 사부’다. 초고령 사회에 접어든 한국에서 은퇴를 했거나 준비하는 베이비부머의 한 사람으로 그가 어떤 삶을 영위하고 추구하기에 레슨 분야 최고수의 한 명으로 인정받고 존경을 받는지 참으로 궁금했다.

양프로가 노장불패 프로그램에서 시니어골퍼를 위한 골프 레슨을 하고 있다. [중앙포토]

양프로가 노장불패 프로그램에서 시니어골퍼를 위한 골프 레슨을 하고 있다. [중앙포토]

게다가 동년배에서는 보기 드문 한자 실력을 자랑하고 유치원 시절부터 모든 은사를 기억하는 명석한 두뇌의 소유자이며 일명 ‘거꾸로 퍼터’를 발명한 기술자로 이름을 날린 인물이다. 2009년 환갑 때 제자 168명을 불러 스카이 72 골프장에서 그린피 2300만원을 전액 자기가 부담하면서 같이 라운드한 기인이기도 하다.

고졸 가방끈에 한 때 '건달', 월남전서 총상입어

나는 2005년 여자프로골프협회 전무를 하던 시절부터 그에 대한 이야기를 들어왔다. 그는 모든 게 ‘기승전(起承轉) 골프’로 귀결되는 스토리를 가진 인물이긴 하지만 ‘구라’ ‘건달’ 같은 인상을 지울 수 없었다. 평생 한량이나 백수로 지내면서 골프에 미쳤다가 재수가 좋거나 집안이 좋아 스카이72 헤드 프로가 된 줄 알았다.

그도 자기가 어렸을 때 ‘달건이’로 지낸 게 오늘날의 ‘양 사부’로 만들었다고 고백한다. 요컨대 건달로 동네깡패 비슷한 것을 했다고 한다. 그는 명문 대전고등학교에 다니다가 싸움질로 결국 퇴학을 당해 강경 상고를 졸업했다. 가방끈은 그것이 전부다. 태권도가 6단인 그는 고등학교를 졸업하자마자 사람을 팬 죄로 감옥에 갈 뻔했으나 자원입대해 월남전에 참전해 총상을 입고 상이용사가 된다.

선친의 권유로 입문한 골프 4개월 만에 싱글 

제대 후 처음에는 총상의 후유증으로 다리를 절뚝거렸다. 당시 충남지역 방첩대장(현 기무사 지역대장)이던 선친이 이를 극복하라며 골프를 권유했는데 이게 골프인생의 시작이다. 입문한 지 4개월 17일 만에 79의 싱글 스코어를 기록했다. 어려서부터 체계적인 교육을 받았더라면 유명한 프로 골퍼가 됐을 것 같은 느낌이다. 사회생활 시작하면서 3년간의 동아일보 광고국 영업사원을 한 것 빼놓고는 골프 자체가 평생 취미이자 직업이 됐다.

그가 유명 레슨프로가 된 데는 1980년 미국으로 도망치게 되는 기구한 사연이 숨어있다. 1972년 월남전에서 기무사 요원을 하면서 당시 연대장이던 전두환 전 대통령에 대해 ‘장군으로 승진하면 안 될 인물’이라는 보고서를 올렸는데, 그 내용이 존안 파일에 담기게 됐고 1980년 이것이 발각되는 바람에 한국에 살 수 없었다고 한다. 미국 샌프란시스코에 정착한 그는 방송국에서 일주일에 5일 하는 골프 관련 프로그램을 진행하면서 유명 레슨프로가 된다.

양프로가 필드에서 제자를 지도하고 있는 모습. [사진 민국홍]

양프로가 필드에서 제자를 지도하고 있는 모습. [사진 민국홍]

그 당시 아내가 식당을 하면서 생계를 유지하는데 자기만 밤낮 내기 골프에만 빠져 살 수는 없어 뭔가를 해야 했다. 밥 토스키, 팀 서머빌 교수 등한테 골프 레슨을 사사하고 잭 니클라우스, 벤 호건, 박영민 교수 등의 골프이론서를 독학하면서 골프이론에 대해 탄탄한 지식을 쌓았다. 84년쯤엔가는 골프 플레이 기량 면에서도 투어프로 선수에 근접할 정도가 됐다. USGTF 티칭프로 자격도 땄다. 훗날 한국에 돌아와서는 KPGA티칭프로 자격도 획득했다.

그는 타고난 언변가다. 이론도 밝은 데다 프로선수 뺨치는 실전형 골프 실력을 자랑하다 보니 미국 서부에서 삼성전자 등 실리콘 밸리의 한국기업의 주재원에게는 알아주는 레슨 선생으로 통했다. 그의 레슨은 신기하게도 귀에 쏙쏙 들어온다. 팔목을 꺾는 코킹을 푸는 동작에 대해서는 “고스톱 칠 때 똥 쌍피를 때리는 것과 같다”고 말하고 임팩트 동작에 대해서는 “골프공 옆구리에 못을 박듯 치면 된다”고 가르친다.

그는 유명한 레슨프로로서 입지를 굳히지만 일상은 내기 골프의 연속이었다. 한타 당 5000달러를 걸기도 했다. 그러다 보니 가정은 돌보지 않았고 부부 사이가 깨지게 되면서 다시 한국으로 돌아오게 됐다.

2003년 귀국 후 스카이72 헤드프로로 일해  

양찬국 스카이72 헤드프로가 자신의 골프 인생사를 담담하게 털어놓고있다. [사진 민국홍]

양찬국 스카이72 헤드프로가 자신의 골프 인생사를 담담하게 털어놓고있다. [사진 민국홍]

2003년 지금 스카이 72의 김영재 대표이사와 인연을 맺게 되었고 헤드 프로로 일하는 한편 이곳의 연습장 드림 레인지에서 10명의 제자를 15년째 가르치고 있다. 미국 LPGA의 이미향 선수가 1호 제자다.

장수의 비결은 간단하다. 1년에 10개월간 하루도 빠짐없이 새벽 라운드를 하면서 캐디 교육을 하고 코스점검을 한다. 낮에는 캐디, 코스관리, 경기운영팀 간 갈등이나 분쟁을 조정한다. 골프장 내에서는 늘 블루투스 이어폰을 끼고 산다. 대외적으로도 LPGA 대회 등 골프에 관한 한 스카이 72를 대표해 나선다.

샛별을 보고 나와 달을 보고 숙소로 돌아갈 때까지 모든 게 골프다. 그는 골프장의 인사, 회계, 마케팅 분야는 쳐다보지도 않는다. 자기가 잘 아는 골프 레슨, 골프 룰, 골프장 운영 등에만 전념한다. 이 분야에는 김영재 대표의 눈과 혀를 대신한다는 각오로 일한다고 한다. 1~2월 2개월은 태국에서 전지훈련 캠프를 연다. 레슨비 받지 않고 제자들에게 서비스한다. 참으로 양심적이다.

자신이 가장 잘할 수 있는 것에 목숨을 걸고 하니 누구보다 잘하지 않을 수 없다. 그는 일과 생활의 밸런스가 없다. 골프가 일이고 애인이며 가족이고 취미다. 술 담배 하지 않고 혼자 사는 그가 행복한 이유다. 정신 나이 20세, 신체 나이 50이라고 자랑하는 그도 내년이면 70이다. 이번에도 자기 부담으로 제자 300명을 초대해 칠순 잔치를 한다고 한다. 멋있다는 생각과 함께 존경심이 저절로 우러나온다.

민국홍 KPGA 코리안투어 경기위원·중앙일보 객원기자 minklpga@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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