깊은 고민에 빠진 김명수 대법원장…서울고법 “검찰 고발 부적절”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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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명수 대법원장이 5일 오후 서울 서초구 대법원에서 열린 국민과함께하는 사법발전위원회 참석하고 있다. 김경록 기자

김명수 대법원장이 5일 오후 서울 서초구 대법원에서 열린 국민과함께하는 사법발전위원회 참석하고 있다. 김경록 기자

양승태 사법부 시절 법원행정처의 ‘재판 거래’ 의혹과 관련해 서울고등법원 부장판사들은 검찰에 고발장을 내는 것이 부적절하다고 결론내렸다.

5일 법원 등에 따르면 서울고법 부장판사회의는 이날 회의에서 “대법원장, 법원행정처, 전국법원장회의, 전국법관대표회의 등 사법행정을 담당하거나 자문하는 기구가 형사고발, 수사의뢰, 수사촉구 등을 할 경우 향후 관련 재판을 담당하게 될 법관에게 압박을 주거나 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의결했다.

“성역없는 수사가 필요하다”며 검찰 수사를 요구한 단독ㆍ배석 판사들과는 확연히 결을 달리한 입장이다.

회의 끝에 서울고법 부장판사들은 “조사 결과 드러난 사법행정권의 부적절한 행사가 사법부의 신뢰를 훼손하고 국민에게 혼란과 실망을 안겼으며, 묵묵히 재판을 수행하는 다수 법관의 자긍심에 커다란 상처를 줬다”고 지적했다. 이어 “사법부 구성원으로서 책임을 통감한다”며 “특별조사단이 수개월간 조사한 결과를 무겁게 받아들이고 존중한다”고 말했다.

아울러 이들은 “사법행정권의 남용이 발생하지 않도록 실효적인 대책이 마련될 필요가 있고, 1년 넘게 지속되는 사법부 구성원 사이의 갈등을 치유하고 통합하기 위한 조치가 시급하다”고 말했다. 이번 사태를 둘러싼 내홍부터 수습하는 게 우선이라는 입장을 표명한 셈이다.

이어 이들은 의혹 관련자들에 대한 형사 조치에 대해선 신중한 입장을 드러냈다. 이들은 “대법원장이나 법원행정처, 전국 법원장회의, 전국 법관대표회의 등 사법행정을 담당하거나 자문하는 기구가 형사고발, 수사의뢰, 수사촉구 등을 할 경우 향후 관련 재판을 담당하게 될 법관에게 압박을 주거나 영향을 미침으로써 법관과 재판의 독립이 침해될 수 있음을 깊이 우려한다”고 밝혔다.

법원 일각의 주장처럼 검찰 수사를 통해 책임을 따지기보다는 갈등을 마무리하고 후속대책을 논의해야 한다는 취지다.

서울중앙지법의 ‘중추’ 역할을 하는 부장판사들도 이날 형사 조치 필요성에 대한 언급 없이 “책임을 통감한다”는 선에서 입장을 밝혔다. 이들은 전날부터 이날까지 이어진 3차 회의를 통해 “사법행정권 남용 및 재판독립 저해 행위에 대해 사법부 구성원으로서 참담함을 느끼며 책임을 통감한다”는 의견을 채택했다. 그러나 실질적으로는 ‘수사 촉구’ 여부를 논의하는 자리가 부담스러웠는지 회의 참석자 수가 의결정족수에 미달해 의결을 하지 못했다. 이에 대해 일부러 회의를 피하지 않았겠느냐는 분석도 적지 않다.

고참ㆍ중견 법관을 중심으로 신중한 대처를 주문하는 목소리가 이어지면서 법원 안팎의 의견을 수렴해 ‘결단’을 내려야 하는 김명수 대법원장은 고민에 빠지게 됐다.

한영혜 기자 han.younghye@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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