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비자에 특정 요금제 가입 강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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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6면

휴대전화 대리점들이 판매점들에 보낸 문건들. 부가서비스 판촉을 촉구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사례 1=SK텔레콤의 한 서울지역 대리점이 최근 일선 판매점에 내려보낸 '4월 정책강조'란 문건. 이 문건엔 '보상 기변 시 데이터 요금제 필수. 차감(差減) 있음' 등의 문구가 명시돼 있다. 쓰던 휴대전화를 새것으로 바꿀 때 고객이 '데이터 요금제'에 가입하지 않으면 대리점이 판매점에 지급하는 판매수수료에서 일정액을 깎겠다는 뜻이다.

#사례 2=한 KTF 대리점이 작성한 '4월 단가표'. '신규.보상 가입 시 범국민 데이터 유치 필수. 미유치 시 건당 5000원 차감'이라는 내용이 담겨 있다. 반대로 '무료 15시간 이상 요금제'를 유치하면 1만원을 추가로 준다고 돼 있다.

#사례 3=LG텔레콤 대리점이 만든 문서에는 '다이어트, 홈플레이, 일반 9000요금제 유치 시 1만원 차감'이라는 문구가 들어 있다. '스페셜 요금제'를 유치하면 2만원을 별도 지급한다는 내용도 있다.

◆ 소비자만 덤터기=이들 문건은 소비자들이 휴대전화를 바꾸거나 구입할 때 불필요한 부가서비스를 사실상 강요당하고 있음을 보여준는 것이다. 이들 부가서비스는 모두 선택사항으로 의무적으로 가입할 필요는 없다. 가입 시 부가서비스 사용에 따라 일정액을 지급해야 한다.

판매점을 운영하는 장모(36)씨는 18일 "부가서비스 유치 실적이 부진하면 판매수수료를 깎는 것은 물론 심지어 대리점에서 휴대전화 개통을 안 해 주는 경우도 있다"며 "소비자에게 부가서비스를 권유하거나 몰래 끼워파는 게 사실"이라고 말했다.

휴대전화 유통은 '이동통신사→대리점→판매점'으로 이뤄진다. 따라서 일선 판매점들은 대리점의 요구에 따라 이동통신사의 부가서비스나 특정 요금제 가입에 열을 올리지 않을 수 없는 입장이다.

대리점들도 할 말이 있다. 대리점도 통신사의 눈치를 봐야 한다는 것이다. 서울 종로구의 모 통신사 대리점 업주는 "통신사에서 부가서비스나 특정 요금제 유치 실적이 나쁠 경우 인기 휴대전화 모델을 적게 배정하는 등 불이익을 주기 때문에 판매점에 부가서비스 가입 등을 독촉하지 않을 수 없다"고 털어놨다. 서울 양천구의 통신사 대리점 업주도 "특정 서비스나 요금제 유치를 목표량 이상 채울 경우 통신사로부터 추가 지원금을 받는다"고 전했다.

이에 대해 한 이동통신사 관계자는 "부가 서비스 유치 실적이 좋은 대리점에 인센티브를 주는 것은 사실이지만 실적이 부진하다고 단말기를 차등 지급하는 일은 없다"고 해명했다. 이 관계자는 "일부 대리점에서 인센티브를 노리고 고객들에게 부가서비스를 강요하는 행위는 생길 수 있다고 본다"고 덧붙였다.

◆ 복잡한 휴대전화 유통 구조=통신사는 대리점까지만 관리하고, 대리점은 여러 판매점을 거느리고 있다. 대리점은 특정 통신사와 일대일 계약 관계지만 판매점은 모든 업체의 제품을 다 취급한다. 판매점은 단순히 판매를 위탁받은 것에 불과해 대리점으로부터 받는 판매수수료가 수입의 전부다. 대리점의 입김이 클 수밖에 없다. 부가서비스나 특정 요금제는 통신사의 수입과 관련된 것이지 그 자체로는 판매점과 아무 상관이 없다. 하지만 대리점이 부가서비스 유치실적과 판매수수료를 연계하고 있어 결국 그만큼 소비자들의 피해가 발생하고 있다.

권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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