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용히 듣고 새길 충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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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최근 우리사회가 당면한 몇 가지 현안들에 대해 김수환 추기경이 관훈클럽 토론회에서 밝힌 견해는 음미하고 참고할만한 시사와 방향제시가 있는 것으로 생각된다.
무엇보다 최근 갈등이 심화되고있는 이념문제에 대해 김 추기경은 급진학생들의 주장에 동의하지 않음을 거듭 확인하면서 이문제의 대처방안으로는 학생들의 좌경원인을 생각하고 신념을 갖고 민주화를 해 나가야할 것이라고 제시했다.
자동차를 급히 오른쪽으로 틀면 탄 사람의 몸은 왼쪽으로 쏠리는 것처럼 극우나 극좌는 서로가 서로를 부르는 관계인 만큼 폭력이나 대증 요법으로는 문제를 풀 수 없고 민주화를 통해 좋은 사회로 가고있음을 젊은이들이 느낄 수 있도록 해야한다고 지적했다.
바로 며칠 전에 본 학생들의 폭력적 시위나 이에 대응하여 일고 있는 급격한 기류 등 심각한 대립양상을 볼 때 추기경의 방향제시는 확실히 귀담아 들을 필요가 있다. 민주화가 촉진되면 체제가 딛고 서는 기반이 넓고 튼튼해져 안정과 힘을 강화할 수 있고, 비판세력의 입장에서 보더라도 자기들의 주장이 반영실현 됨으로써 극단적 행동의 명분이 줄어들게 된다. 이념문제를 놓고 요즘 괜히 신경전이나 벌이는 것 같은 정부나 정치권은 추기경의 이런 의견을 경청해야할 것이다.
가장 열쇠라고 볼 수 있는 6공화국 정부의 민주화추진에 대해 추기경은 일단 긍정적으로 보면서도 그 속도에 대해서는 불만을 표시하고 국민이 피부로 느낌 알맹이가 별로 없다고 지적했는데 정부로서는 더욱 귀담아 들어야 할 충고가 아닌가 한다.
여야가 사사건건 대립하고 있는 5공 비리나 광주문제의 해결에 있어서도 추기경은 비교적 명쾌하게 견해를 피력했다. 한쪽이 응징, 보복 차원에서 조사해서도 안되고, 다른 쪽이 은폐하려 해서도 안 된다는 것이다. 진실을 밝혀야 하고 진실은 당사자들이 스스로 밝히는 것이 가장 바람직하다는 의견이었다. 여야와 당사자가 이런 자세로 나가야 문제의 청산도, 궁극적으로 화해와 평화에도 이를 수 있음은 물론이다.
지역감정과 관련하여 평민·민주의 두 야당에 준 추기경의 충고는 양당이 정말 뼈아프게 듣고 새겨야할 대목이라고 생각된다.
지역감정문제는 정치인들이 스스로 만들어 놓은 게 아닌가, 그러면서도 해결방안이 없는 것은 마음을 비우지 않은 까닭이 아닌가, 정책차이가 없으면서도 지역 당으로 남아있는 두 당이 합친다면 문제해결에 큰 발전이 있지 않겠는가 하는 그의 지적은 양당의 분열과 지난 선거과정을 생각할 때 매우 공감이 가는 말이다.
현실의 부와 명예와 권력의 욕망이 없다고 믿어지기 때문에 김 추기경의 발언은 설득력과 공감의 폭이 크다고 본다. 그리고 그가 누구편도 아니며, 어느 진영에도 속하지 않다고 보기 때문에 그의 발언은 누구라도 조용히 듣고 새길 필요가 있다. 추기경과 같은 이런 입장의 인사들이 공동관심사에 관해 충고와 걱정을 좀더 적극적으로 할 필요가 있는 시기가 아닌가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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