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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시 호랑이·부화 못하는 알…근친교배, 동물교류로 막는다

중앙일보

입력

전북 전주동물원에서 2016년 국제 멸종위기종 1급인 시베리아 호랑이 쌍둥이가 암컷 수호(10살)와 수컷 호강(13살) 사이에서 태어났다. 전주 동물원에서는 조상세대의 근친교배로 인한 장애로 사시를 앓고 있던 부모로부터 태어난 딸 역시 사시를 가지고 태어난 적이 있다. [사진 전주동물원]

전북 전주동물원에서 2016년 국제 멸종위기종 1급인 시베리아 호랑이 쌍둥이가 암컷 수호(10살)와 수컷 호강(13살) 사이에서 태어났다. 전주 동물원에서는 조상세대의 근친교배로 인한 장애로 사시를 앓고 있던 부모로부터 태어난 딸 역시 사시를 가지고 태어난 적이 있다. [사진 전주동물원]

대구 중구 달성동 달성공원 동물원에서 최근 황부리황새 커플이 11개의 알을 낳았다. 하지만 단 1개의 알만 부화에 성공했다. 나머지는 무정란이었거나 알을 쪼개고 나와야 하는 새끼의 부리 힘이 약해 세상 밖으로 나오지 못했다. 부화에 성공한 1개의 새끼마저도 어미가 먹이를 과하게 주는 바람에 미꾸라지가 목에 걸려 일찍 죽었다고 했다.

대구 달성공원 동물원 물새장. 대구=백경서 기자

대구 달성공원 동물원 물새장. 대구=백경서 기자

배광용 달성공원관리사무소 사육팀장은 "조류 중에서도 물새의 경우 가족들이 한 우리 안에서 같이 사는데 부모와 자식 간에 근친교배가 일어나면서 기형 등 생긴 것으로 추정한다"며 "이외에도 다리가 꺾이거나 날개가 처지고 개체가 작은 기형이 나오고 있다"고 설명했다. 현재 1653㎡(500평) 규모의 달성공원 물새장에는 9종의 물새 60여 마리가 살고 있다.

달성공원 동물원에는 포유류·조류·어류 등 700여 마리 79종의 동물이 있다. 달성공원관리사무소 측에서는 근친교배로 인한 기형이 꾸준히 발생하자 문제점을 인식하고 포유류의 경우 근친교배를 하지 못하도록 합사를 시키지 않고 있다고 했다.

한 어미 호랑이에게서 태어난 호랑이 세 마리도 발정기엔 만나지 못한다. 암컷 1마리, 수컷 2마리의 호랑이는 형제 관계라서다. 포유류의 경우 근친교배 시 기형을 가지고 태어나면 사소한 공격을 받았을 때도 쉽게 다치거나 죽음에 이를 수 있다.

실제 1999년 서울동물원에서 근친교배로 태어난 '뒹굴이'의 눈은 사시였고 걸음걸이가 불편했다. 뒹굴이는 18살 때 번식기에 예민해져 있는 암컷에게 공격당해 꼬리 전체에 부상을 입고 전신패혈증으로 결국 세상을 떠났다.

국립백두대간수목원에 따르면 국내에 있는 호랑이 50여 마리 대부분이 시베리아 호랑이로 추정된다. 만약 이들끼리 교배할 경우 근친교배가 될 확률이 높다. 2005년 서울대공원 동물연구실 종(種)보전팀이 국내서 처음으로 1983년 이후 폐사한 호랑이와 현재 살아 있는 호랑이 등 59마리의 유전자를 분석해 가계도를 작성한 결과, 살아 있는 호랑이 중 절반이 근친교배로 태어난 것으로 나타났다고 밝혔다. 이 수치는 미국의 13배에 달한다.

국립백두대간수목원 호랑이. 국립백두대간 수목원에서는 근친교배를 막기 위해 앞으로 해외에서 호랑이를 들여와 교배할 계획을 밝혔다. [사진 국립백두대간수목원]

국립백두대간수목원 호랑이. 국립백두대간 수목원에서는 근친교배를 막기 위해 앞으로 해외에서 호랑이를 들여와 교배할 계획을 밝혔다. [사진 국립백두대간수목원]

이에 4개 지자체가 운영하는 동물원에서는 근친교배의 심각성을 인지하고 동물 복지와 근친교배 방지, 종 보전을 위한 첫 발걸음을 뗐다. 대구·광주·전주·청주 등 지역 동물원이 지난달 29일 협약을 맺어 동물을 교환하기로 한 것이다. 이번 협약 체결로 달성공원 동물원의 캐나다 기러기 1쌍과 청주동물원 에조불곰 2두(♀)와 흑고니 1쌍을 교환하기로 했다.

대구 달성공원 에조불곰. [중앙포토]

대구 달성공원 에조불곰. [중앙포토]

윤성웅 달성공원관리사무소장은 "사실 달성공원 동물원의 경우 유적지인 달성토성 내에 있어 함부로 우리를 고치거나 추가로 짓기 어려워 그동안 근친교배를 막기 힘들었다. 협약을 맺으면서 예산 부담 없이 동물을 교환할 수 있게 돼 근친교배 방지 외에도 학술적 교류가 활발해질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동물원끼리의 야생동물 교환에 더해 혈통을 분석하고 관리하는 시스템이 필요하다고 목소리를 모은다.

서울대 수의과대 야생동물의학 연성찬 교수는 "우선 국내 동물원에 있는 암수 야생동물의 혈액, DNA 분석으로 근친 여부를 밝혀야 한다"며 "이후에 꾸준한 혈통 관리 시스템을 구축해 체계적으로 근친교배를 막아야 한다"고 말했다.

대구=백경서 기자 baek.kyungseo@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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