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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조건 착한 사람’만 뽑는 … 경남 하동 ‘어쭈구리 야구단’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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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환영의 책과 사람] (10) 《어쭈구리 야구단》의 저자 석민재 시인

창단 신화는…
고물상 친구들… 막연히 야구를 동경했는데
어느 날 우연히 야구 방망이가 고물상에 들어왔다

사업 실패, 아픈 마음 달래려고 창단했으나…
이제는 경남 사회인야구의 영원한 우승 후보
사회인야구로 영호남 화합에도 일조

약점도 있다…  
‘무조건 착한 사람’ 뽑다 보니
‘멘탈이 좀 약하다’는 분석도

《어쭈구리 야구단》 저자는…
20대에 자식 3명 낳고 42세에 등단한 시인
이 책이 독자님들께 ‘선한 영향력’ 되길 희망

‘어쭈구리 야구단’은 2010년에 결성된 사회인야구단이다. 경상남도 하동에 있다.
‘어쭈구리 야구단’(단장 박정희, 감독 박정배)의 모태는, 고물상 주인 여영모(초대 단장)와 고물상을 아지트로 삼아 종종 뭉쳤던 여영모 초대 단장의 친구들이다.

현재 단원 수는 50여명, 평균 나이는 42세. 창단 5년 만에 2015년 경남도 생활체육대회축전에서 우승했다. 그 이후에는 우승, 준우승, 3위 예약한 강팀.

일상 언어생활에서는 흔히 쓰는 말이지만, ‘어쭈구리’의 어원에 대해 논란도 많다. 일단 사전에 안 나온다.

조항범 충북대 국어국문학과 교수는 “‘어쭈구리’의 ‘어쭈’는 ‘아주’가 ‘아쭈’를 거쳐 나온 어형이고, ‘구리’는 ‘그리(그렇게)’가 변한 어형으로 추정된다.”(새국어생활 제14권 제4호, 2004년 겨울)고 말한다.

또 조항범 교수는 어쭈구리의 어원이 ‘어주구리(漁走九里, 능력이 안 되는 사람이 능력 밖의 일을 하려고 할 때 쓰는 말)”이라는, 인터넷에 흔히 나오는 주장에 대해 부정적이다.

누군가 장난삼아 만든 사자성어일 수도 있다. 하지만 ‘어주구리(漁走九里)’는 우리 속담 “말 갈 데 소 간다”를 연상시킨다. “남이 할 수 있는 일이면 나도 할 수 있다”는 이 속담은 우리에게 희망을 준다.

‘어쭈구리 야구단’은 우리네 소박한 꿈을 현실로 만든 성공 사례다.
물고기도 9리를 갈 수 있다! ‘9리’는 야구의 9회를 상징하지 않을까. 인생도 야구도 9회 말 2아웃부터 아닐까?

책 표지

책 표지

어쭈구리 야구단, 석민재 지음, 이현민, 김은지 그림, 북레시피

‘어쭈구리 야구단’은 영호남 화합의 아이콘이기도 하다. 하동 말은 전라도 말과 가깝다. 이 야구단은 영호남 사회인야구대회 개최의 주역이다.

‘무조건 착해야 한다’를 ‘어쭈구리 정신’ ‘어쭈구리 인(人)’의 핵심으로 삼는 이 야구단 단원들은 장애인 야구 교실을 열었고 섬진강 변 환경정화를 열심히 하며, 지역 어르신들께 음식 대접을 하기 위해 호주머니를 턴다.

‘착한 사람’을 단원 가입 조건으로 내세우다 보니, 부작용도 있다. “우리 구단은 멘탈 부분이 가장 약하다”는 분석도 있다.

하동 최초의 사회인야구단인 ‘어쭈구리 야구단’의 단원 50여명 중 44명을 인터뷰해 《어쭈구리 야구단》을 쓴 석민재는 시인이다. 그래서 책의 문체가 독특하다.

석민재 시인은 이 책 프롤로그에서 “저마다 ‘인생극장’이 아닌 삶이 어디 있고, ‘소설 한 권’ 분량 이상의 인생사를 간직하지 않은 사람이 어디 있을까.”라고 말했다. 그 인생극장으로 들어가려고 석민재 시인을 인터뷰했다. 다음이 인터뷰를 편집하고 요약한 결과.

- 이 책을 쓸 때 가장 힘들었던 점은?

“술을 안 드시면 말씀을 잘 안 하셔서… 그게 좀 힘들었다. 또 지난 기억이라 기억을 잘 못 하시는데 기억력 좋은 분들께서 항상 옆에서 도와주셔서 큰 도움이 됐다.”

- ‘어쭈구리 야구단’이라는 이름의 시작은?  
“처음 이름은 ‘뽈 갖고 놀자’를 줄인 ‘뽈자’였다. 고물상에서 놀다가 우리도 근사한 이름 지어보자 해서 나온 이름이 ‘어쭈구리 야구단’이다.”

- 창단 주역인 고물상 주인 여영모 선생님과 그 친구분들은 원래 야구를 좋아하셨는지.  
“막연한 동경은 있었던 것 같다. 축구 말고 야구를 하고 싶은데… 그러다가 마침 고물상에서 방망이 하나를 주운 게 계기가 돼서… 친구들끼리 던지고 놀고 하다가 만들어졌다.”

- 왜 사회인야구단을 생각하게 됐을까?
“환경이었던 것 같다. 실패를 경험한 사람들이 아픈 마음 달래려고 모여서 야구를 하게 됐다.”

- 석민재 작가님은 어떻게 어쭈구리 야구단과 인연을 맺게 됐는지.  
“저는 지금 아들이 고등학교 1학년인데… 아들이 초등학생일 때 캐치볼 하는 삼촌들 모습을 보고는… 아들이 친구들 데리고 야구장에 갔던 게 인연이었다. 그러다가 사진 찍어주고, 기록하는 분이 없어서 옆에서 사진 찍고 기록해 주다가… 또 좋은 일이 있을 때 지역신문에 기사를 쓰다 보니 이렇게 책까지 낼 수 있었다.”

- 책에 나오는 ‘어쭈구리 정신’은?  
“‘무조건 착하면 된다’로 시작한다. 처음엔 야구하는 것보다 야구장 만드는데 시간을 거의 보낸 사람들이었다. 그 정신이면 우리가 끝까지 어쭈구리 야구를 지켜갈 수 있고 후배한테 물려줄 수 있을 거다… 우리가 어려운 일을 전부 이겨낸 것처럼… 그 마음 하나만 가지면 어디서든 뭐든 다 할 수 있을 것 같다.”

- ‘무조건 착해야 한다’는 가입 조건의 부작용은?  
“해야 할 말도 서로 못하고, 말을 들으면 상처를 좀 많이 받는 편이다. 그런 마음 배려가 정말 좋은데 야구장에서 게임을 할 때에는 미스와 에러를 내게 되는 일이 많다. 공을 막 서로 양보한다.”

- 혈액형에 따른 성격 분류는 비과학적이지만… 단원들이 A형이 많다고 책에 나와 있다.
“어느 날 감독님이 ‘왜 이렇게 소심하지 우리 경기가? A형 손들어보라’ 하니깐 거의 3분의 2가 A형이었다.”

석민재 저자

석민재 저자

- 이 책에는 ‘인생도 야구도 9회 말 투아웃부터’라는 메시지가 담긴 것 같다.  
“그냥 좋은 기운들이 모여서… 하자, 하자! ‘하지 말자’ 보다는 ‘한 번 해보자’했던 그 마음이 끝까지 가게 된 것 같다. 중간에 턱도 없이 깨지면 어쩔 수 없지만,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하다 보면 뭐 역전하지 않을까?”

- 책 프롤로그를 보면 “저마다 ‘인생극장’이 아닌 삶이 어디 있고, ‘소설 한 권’ 분량 이상의 인생사를 간직하지 않는 사람이 어디 있을까”라고 나온다. 석민재 작가님도 인생극장이나 소설 한 권 분량의 하실 이야기가 있으신지.  
“제가 처음에 어쭈구리 이야기를 책으로 쓴다니까 ‘할 게 뭐가 있어… 다 똑같지…. 우리도 다 인생극장이거든’ 하면서 글 쓰시는 분들이 옆에서 놀렸다. 하지만 ‘다 똑같은’ 게 아니라 ‘정말 다른 이야기’도 많았다.
저도… 어린 나이에 결혼해 20대에 아이 세 명 낳고 시할머니 계시는 시골에서 결혼생활을 했다. 효가 지극하지는 못했지만 그래도 올해가 결혼 21년 차인데… 저도 소설책 두 권 안 될까? 다 그런 사연들을 소중하게 누군가가 귀를 열고 들어준다는 게 좋은 것 같다.”

석민재 작가(왼쪽), 차석환 투수((오른쪽)

석민재 작가(왼쪽), 차석환 투수((오른쪽)

- 시인으로 등단하셨고 상도 여러 번 받으셨는데.  
“42살 때였다. 시를 쓸 수 있을 거라고 생각도 안 해보고, 다시 공부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도 안 했는데… 근데 글을 계속 쓰고 있다 보니까 이런 꿈도 이루게 된 것 같다.”

- 시인이 쓴 야구단 이야기이기에 문체가 아주 독특하다는 느낌을 받았다. 마지막으로 독자들에게 해주고 싶은 말씀이 있다면?  
“하동에… 저는 고향 하동을 너무 좋아하기 때문에… 사회인야구단, 어쭈구리 야구단이 있다는 것을 기억해 주시고 관심 많이 가져주셨으면 좋겠다. 그리고 항상 포기하지 않고… 선한 영향력… 선한 영향력이라는 그 말을 제가 정말 좋아하는데… 제가 마음가짐 하나로 주변 사람들에게 선한 영향력을 끼칠 수 있는 그런 사람이 되었으면 좋겠다. 그리고 이 책이 독자님들께 그런 책이 되었으면 좋겠다. 감사합니다.”

김환영 지식전문기자 whanyu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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