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81세 '불량 영감'이 전하는 유쾌하게 늙어가기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18면

[더,오래] 한순의 인생후반 필독서(9) 

『유쾌하게 나이 드는 법』이 있는가 하면『불량하게 나이 드는 법』도 있다. 책 한 권이 온통 여자 이야기와 술집 이야기로 채워져 있다. 끌리지 않는가?

이 책을 처음 만났을 때 아버지에게 종아리 맞던 날이 생각났다. 크리스마스이브였는데 자정을 넘긴 12시 1분쯤 들어간 것에 대한 체벌이었다. 종아리를 때리는 아버지도, 맞고 있는 나도 뭔가 시원하게 납득할 수 없는 부분이 있다는 것을 둘 다 느끼고 있었다.

아버지는 그동안 그렇게 가정교육을 해왔으니 규칙에 의한 체벌이었고, 나는 종아리를 맞아야 오늘이 지나간다는 상투적 감상이 내재해 있었다. 당시는 정부 비서실에 근무할 때였는데, 다음 날 나는 할 수 없이 바지를 입고 출근했다.

81세의 불량 영감이 쓴 『불량하게 나이 드는 법』

 세키 간테이,『불량하게 나이 드는 법』, 2009, 나무생각

세키 간테이,『불량하게 나이 드는 법』, 2009, 나무생각

세상은 어두운 곳과 밝은 곳이 있기에 존재하지만, 사람들은 성공과 열매에 집중해 이야기한다. 그렇게 재미없게 시들시들 살다가 죽기도 한다. 『불량하게 나이 드는 법』은 출간 당시 81세였던 노인이 쓴 불량하게 사는 법에 관한 이야기다.

"노인은 행동을 잘해서 욕심을 줄이고 세상과 젊은 사람들에게 방해가 되지 않도록 살아가는 게 도리다…. 그럴 생각은 추호도 없소이다. 그보다는 이런 노친네도 있다는 걸 몸으로 보여 주고 싶다는 생각이 약간 있을지도 모릅니다."

일본 작가 아리시야마 씨는 저자 세키 간테이를 ‘간테이 영감은 기운만 넘치는 게 아니라 ‘색골’인 데다가 ‘못 말리는 불량 노친네’’라고 표현했다. 이 말을 들은 간테이는 그의 표현에서 따스한 시선이 느껴진다며 “색골인 것도, 불량 영감인 것도 인정하겠는데 아직 노친네라고 불리는 것은 왠지 마음에 들지 않습니다”라며 “이런 말을 듣는 것은 여전히 생명이 번득이고 있다는 말과 같고, 색기라는 것은 살아가는 데 위축되거나 지치면 발휘할 수 없는 것”이라고 말하고 있다.

원색적인 제목 몇 구절을 소개해 보겠다. ‘불량하게 사는 거야 간단한 일이라오’ ‘버스를 가득 채울 정도의 여자 친구가 있습니다’ ‘수행을 거쳐 ‘불량’에 도달했습니다’ ‘우정도 연애도 색기가 있는 곳에서 탄생합니다’ ‘깨달은 척하면 못씁니다’ ‘인생에 타성이 생기면 끝장입니다’ 등이다.

‘나는 벗기는 것이 특기입니다’ 챕터에는 “불교란 한마디로 말하자면 ‘벗기는 재주’ 같은 것입니다. 자아, 집착, 욕심 등등. 인간의 마음속에는 늘 그런 것들이 진을 치고 있습니다. 그것을 지키려고 하다가 다른 사람과 충돌하기도 하고 결국에는 녹초가 되도록 지쳐버리지요. 마음을 비우는 일은 자아를 죽이고 집착을 버리고 욕심에서 멀어지려는 행위입니다. 바로 일본의 국민작가 미야자와 겐지처럼 무심하게 어린애처럼 웃을 수 있는 경지일 것입니다”라고 말한다.

이 책을 읽어가다 보면 그의 ‘불량’이란 말에 생명력과 내공이 번득임을 발견할 수 있다. 불량이란 ‘시들지 않는 삶’을 말한다.

불량이란 시들지 않는 삶 

이 책에 소개된 일화 하나를 소개하겠다.

"어떤 사람이 료칸 스님에게 방탕한 생활에 빠진 아들이 있으니 좋은 설교로 사람을 만들어 달라고 부탁해 그 집에 갔습니다. 그런데 그 고승은 설교하는 걸 싫어했기 때문에 아무 말도 하지 않고 날짜만 보내고 말았습니다. 그리고 마지막 날 현관 입구에 앉아 있던 고승이 방탕한 아들에게 자신의 짚신 끈을 매달라고 부탁했습니다.

그런데 쪼그리고 앉아 고승의 신발을 묶고 있던 방탕한 아들의 목덜미에 뜨거운 것이 뚝뚝 떨어졌습니다. 이상한 생각에 고개를 들어보니 고승이 눈에 눈물을 가득 담은 채 그를 내려다보고 있었다고 합니다. 고승의 모습을 본 방탕한 아들은 백 마디 말보다 더한 것을 얻었을 겁니다. 그것도 귀가 아니라 마음으로 말이죠."

고승의 짚신 끈을 묶던 방탕한 아들은 그의 눈물로 백 마디 말보다 더한 것을 얻었을 것이다. [중앙포토]

고승의 짚신 끈을 묶던 방탕한 아들은 그의 눈물로 백 마디 말보다 더한 것을 얻었을 것이다. [중앙포토]

저자 세키 간테이는 조각가다. 고등소학교 졸업 후 국숫집에서 견습사원으로 근무하다 17세에 사와다 세이코의 문하생이 됐다. 불상을 조각하고 봉납하며 그의 철학은 진화하고 생명력을 갖게 된 것으로 보인다.

나이가 들어간다는 생각이 드는 사람들, 이제는 점잖게 있어야 하겠다는 생각을 가진 분들께 이 책을 권한다. 우리는 매일 때가 낀다. 생존을 유지하기 위한 때(갑옷)이다. 그러나 이때 때문에 출렁이는 생명력을 잃는다면 이보다 억울한 일은 없을 것이다.

한순 도서출판 나무생각 대표 tree3339@hanmail.net

관련기사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