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용갑 장관의 발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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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과격파 대학생들의 좌경화운동에 대한 심각한 우려를 기조로 한 김용갑 총무처장관의 발언이 비상한 관심의 대상이 되는 것은 당연한일이다.
가뜩이나 내각제 개헌이다, 연정이다 하는 말이 나오고 올림픽 후에 어떤 정치적 변화가 있을 것처럼 분위기가 뒤숭숭한 터에 평소 시국이나 정치문제와는 거리가 멀던 총무처 장관이 진의를 종잡기 어렵게 고도의 정치문제를 강도 있게 언급했으니 비상한 관심이 쏠리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김 장관의 발언은 대체로 이대로 가다가는 ①올림픽 후에 자유민주주의체제를 수호하느냐, 좌경화를 허용하느냐를 국민의 선택에 물어봐야 한다 ②이를 말리지 못한다면 좌경화를 허용할 수밖에 없으므로 올림픽 후 정부가 중대결단을 내리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③일부 야당이 학생들을 부추기고 있다 ④대통령의 .국회 해산권이 필요하다는 내용 등으로 요약된다.
우리는 국무위원인 총무처장관이 정치문제에 대해 소신을 밝히는 것은 이상한 일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그의 이런 발언이 사견인지, 정부내의 지배적인 견해의 대변인지 불분명하고, 그의 주장에는 선뜻 납득이 어려운 대목도 있으므로 그런 의문점에 대해서는 본인과 정부대변인 또는 총리나 청와대측의 해명이 있어야할 것으로 생각된다.
우선 그의 말대로 좌경문제가 오늘날 심각한 것은 사실이지만 좌경과 자유민주주의체제를 동렬에 놓고 국민의 선택을 묻는다는 발상은 수긍하기 어렵다. 그것은 물어 볼 필요도 없는 일이기 때문이다. 좌경문제가 비록 심각하지만 그것은 수적으로는 아직 극소수에 불과하고 그들이 오늘날 민주화다, 통일이다 하여 온갖 명분을 내걸면서 대단히 활성적으로 움직임으로써 위험성이 날로 커지고 있지만 우리사회의 자유민주주의 체제에 대한 신념이나 힘, 국민의 저력 등에 비춰보면 여전히 미미한 세력이라고 해야할 것이다.
따라서 이들의 각종 범법행위에는 공권력에 의한 법 집행의 대응으로 아직 충분하다고 보며 이들이 확산시키고 있는 좌경이념에 대해서는 민주화와 우리체제의 문제점을 개혁해 나가는 노력으로 대응하는 것이 옳다고 본다. 그런 점에서 김 장관이 말한 「중대결단」이라는 것이 뭣을 뜻하는지 궁금하지 않을 수 없다.
그리고 여소야대의 현실에서 대통령이 국회 해산권을 가질 필요가 있다는 주장도 심정적으로는 그 발상을 이해할 수 있지만 이 현실 역시 국민이 선택한 결과라는 점을 지적하고 싶고, 무엇보다 헌정체제의 개변문제가 현실의 필요가 나올 때마다 손쉽게 거론되는 것은 바람직하지 못하다고 생각된다.
김 장관의 발언이 나온 배경은 잘 알기 어려우나 최근 과격파 학생들의 일련의 움직임, 야당들의 태도 등 시국상황에 대해 여권내부에서 강한 불만과 심각한 우려가 있었음을 볼 때 그런 기류를 대변한 것이 아닌가 짐작된다. 따라서 그의 발언이 비록 「국무위원으로서의 소신」이란 형식이지만 그 문제의식은 여권 내에 깊은 뿌리와 넓은 기반을 갖고있는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정부가 그런 문제의식을 언제 어떤 방법으로 정책화, 가시화 할는지 여부가 주목되는 것이다.
여권이 좌경문제를 심각하게 다루는 것은 당연하지만 반드시 유의해야 할 일은 좌경의 범위를 엄격하게 해석하여 당연히 있어야 할 민주화나 개혁의 노력과는 엄밀히 구분해야 한다는 점이다. 그리고 체제 전복을 노리는 좌경세력에는 단호히 대처하되 그 방법 역시 국민의 지지를 받을 수 있는 합리적, 합법적 방법이 돼야 하리라고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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