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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년중앙]"먹거리에 새로운 가치 더해 통일 이후까지 보는 농업 시작했죠"

중앙일보

입력

박요셉 요벨팜 대표

박요셉 요벨팜 대표

“사람을 살리고 땅을 살리는 농부입니다.” 스스로를 이렇게 설명하는 청년농부 박요셉 요벨팜 대표(38)는 함경북도 출신입니다. 그는 열아홉 살 때 중국으로 탈북해 베트남·캄보디아를 거쳐 스물네 살에 한국으로 건너왔어요. 2000년 6월 15일 중국 땅에서 가슴 졸이며 남북 정상회담(김대중-김정일)을 지켜봤던 그는 통일이 된 한반도를 그리며 자신만의 꿈을 키워왔고, 2018년 4월 27일 남북 지도자(문재인-김정은)의 만남에 남다른 감회를 느꼈습니다.

북한서 나와 중국·베트남·캄보디아 거쳐 한국에
요셉씨는 고등학생이던 열여섯 살부터 ‘사업’을 시작했어요. 아이템은 고향의 특산물인 송이버섯이었죠. 제철인 2~3주만 캘 수 있는 송이버섯을 산에서 캐오는 이들에게 10~20㎏ 정도 사서 기차로 2시간 거리인 국경지대에서 중국 바이어에게 팔았어요. 이 과정을 여러 번 반복하면 1년은 거뜬히 먹고 살 정도의 수입을 벌기도 했어요.

“제가 살던 함경도 쪽은 동유럽국가의 사회주의 체제가 붕괴되기 시작한 1990년대 초반부터 국가의 식량공급 시스템이 끊겼습니다. 1994년 김일성 사망 후 궁핍함이 더 심해졌고 홍수 피해까지 겹쳐 인명 피해도 컸습니다. 북한의 1990년대 중반을 ‘고난의 행군’ 시기라고 표현할 정도였으니까요. 그러다 보니 물물교환 시장이 더욱 활성화됐죠. 사람들은 집에 있는 모든 물건을 시장에 내다 팔았습니다.”

북한에서의 어린 시절 사진. 함경북도에서 송이버섯을 내다 팔아 생활비를 마련했다.

북한에서의 어린 시절 사진. 함경북도에서 송이버섯을 내다 팔아 생활비를 마련했다.

*‘장마당 세대’의 비즈니스 감각과 도전정신, 호기심으로 똘똘 뭉친 그는 1999년 중국으로 탈북했어요. 더 큰 세상에서 성공하겠다고 다짐했지만 중국 생활은 쉽지 않았죠. 그의 인생에서 가장 어렵고 힘든 시기였어요. 언어도 익숙하지 않았고 불법체류자 신분이다 보니 할 수 있는 일이 별로 없었습니다. 조선족 농장에서 급여도 못 받으며 목동으로 일했고, 못 사는 나라 출신이라는 이유로 핍박도 많이 받았어요. 밑바닥 생활을 전전하며 매일 술에 의존하는 피폐한 삶을 살았죠.

“문득 ‘내가 이런 삶을 살려고 북한에서 나온 건 아닌데’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당시 책을 읽으며 기록했던 수첩 속에 ‘생선을 싼 종이에는 비린내가 나고, 꽃을 싼 종이에는 향기가 난다’ 글귀를 읽고는 자신이 무척 한심했습니다. 그래서 일이 끝나고 난 후 PC방에 가서 인터넷으로 많은 정보를 찾아봤어요. 탈북한 사람들 뉴스를 보면서 한국에 가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됐습니다.”

자유를 갈망하며 시민으로서 권리를 누리고 싶다는 바람이 가슴 속에 차올랐어요. 결국 2003년 한 선교단체의 도움을 받아 베트남·캄보디아를 경유해 2004년 한국행에 성공했습니다. 하지만 한국땅은 중국보다도 낯설었죠. 한국에 정착하기 위해 가구 배달, 호프집 알바, 물류회사 창고 정리 등 몸으로 할 수 있는 일들을 가리지 않고 했어요. 하지만 지식이 없으면 평생 막노동밖에 못하겠다는 생각이 들어 대학에 가기로 결심했죠. 북한이탈청소년들의 대안학교 여명학교에서 입시를 준비해 재외국민전형(새터민전형)으로 2006년 건국대 수의학과에 입학했어요.

요셉(오른쪽)씨가 지난 2002년 중국 위해시의 한 호텔에서 객실 매니저로 일하던 시절 동료와 함께 포즈를 취했다.

요셉(오른쪽)씨가 지난 2002년 중국 위해시의 한 호텔에서 객실 매니저로 일하던 시절 동료와 함께 포즈를 취했다.

그는 탈북 과정에서 목숨이 왔다 갔다 하는 상황에서도, 또 한국에 들어와서도 가장 힘들었던 건 모든 의사결정을 혼자 해야 하는 것이었다고 말합니다.하지만 지금의 그를 있게 한 발판이 되기도 했죠.

“지금은 의사결정을 굉장히 빨리하는 편입니다. 그런데 한국의 청년들은 결혼 후에도 부모의 그늘 아래 있을 정도로 의사결정을 잘 못 하는 것 같아요. 어려서부터 자기 의사대로 판단하는 습관은 진로를 찾아가는 데 있어서도 매우 중요한 키워드라고 생각합니다. 죽고 사는 문제가 아닌 이상 자신의 인생에 대한 의사결정은 스스로 해야 하지 않을까요.”

수의사 대신 새터민 돕는 농업 스타트업 대표로
6년간의 수의학 공부를 마친 그는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이 수의사가 아니라는 판단을 내렸어요. “수의사 대신 사람을 살리는 일을 하고 싶었습니다. 특히 나와 비슷한 처지의 새터민 친구들을 돕는 일을 하고 싶었습니다. 새터민의 자립을 위해서는 농업 분야가 잘 맞을 것 같았어요.”

수의대 재학 시절의 박요셉씨.

수의대 재학 시절의 박요셉씨.

그렇다면 ‘어떤 농업을 해야 할까’에 대한 고민이 시작됐습니다. 새터민들에게 힐링이 되고, 한국 사회에도 새로운 가치를 제공하고, 통일이 됐을 때도 지속가능한 모델을 찾아야 했어요. 통일된 한반도를 준비하기 위해 필요한 것은 유기농업을 넘어선 순환농업, 즉 생태순환농업이라는 결론에 이르렀습니다.

“저는 항상 통일됐을 때 어떤 나라가 되면 좋을까를 상상합니다. 스위스처럼 중립국이면서 농업·관광·금융도 발전된 그런 나라를 꿈꿉니다. 특히 농업 분야에서 우리가 아시아 지역에 가치 있는 제안을 하기 위해서는 항생제나 화학 비료, 살충제 같은 것을 써서는 안 됩니다.”

그는 이에 대한 해답을 북한에서 찾아야 한다고 말했어요. 미국 시사지 '타임'이 2016년 7월 ‘아시아에서 가장 올가닉(organic·청정한) 한 지역’으로 북한을 꼽은 기사를 예로 들었죠. 북한 땅은 수십 년간 화학물질에 오염되지 않았고 한국에선 사라진 토종 종자를 그대로 보존하고 있어요.

박요셉씨는 요벨팜 이전에 ㈜요벨을 설립하고 기업은행 사내 카페 2곳을 운영하기도 했다. '스페이스 요벨'이라고 이름 붙인 사내 카페 앞에서 함께 일하던 새터민 친구들과 함께.

박요셉씨는 요벨팜 이전에 ㈜요벨을 설립하고 기업은행 사내 카페 2곳을 운영하기도 했다. '스페이스 요벨'이라고 이름 붙인 사내 카페 앞에서 함께 일하던 새터민 친구들과 함께.

“우리는 흔히 나사(NASA)의 위성지도를 보며 ‘불 꺼진 암흑의 땅, 북한’이라고 부정적으로 말합니다. 그런데 거꾸로 생각해보면 밤에 불을 끄고 잠을 자는 것이 건강하고 정상적인 사회가 아닌가 생각합니다. 통일이 됐을 때 일본이나 중국에 팔 수 있는 건강한 농산물들을 길러낼 땅이 바로 북한이 아닐까요.”

박 대표는 2017년 8월 농업회사법인 요벨팜을 설립하고 국내 유일한 생태순환축산업 지역인 강원도 평창에서 첫 실험에 착수했습니다. 6개월간 돈사 496㎡(150평)를 빌려서 유기농사료를 먹인 돼지 30마리를 키웠어요. 일반돼지보다 생산비는 3배가 들었지만 팔 때는 1.5배만 받고 팔다 보니 수지가 맞지 않았죠. 유기농 돼지고기 소비자가 0.02%밖에 안 된다는 사실도 걸림돌이었어요.

요벨팜이 벤치마킹하고 있는 미국 조지아주의 화이트오크 농장의 모습. 요셉씨는 지난 3월 생태순환축산법으로 돼지를 사육하는 법을 배우기 위해 이곳을 방문했다.

요벨팜이 벤치마킹하고 있는 미국 조지아주의 화이트오크 농장의 모습. 요셉씨는 지난 3월 생태순환축산법으로 돼지를 사육하는 법을 배우기 위해 이곳을 방문했다.

최근엔 지인이 무상 제공한 경기도 포천으로 농장을 이전해 농법은 생태순환을 고집하되 사료는 일반사료를 먹여서 생산비를 낮추는 실험에 들어갔습니다. 적정한 수의 돼지와 닭을 건강하게 키워서 가치를 높여볼 생각이에요. 또 청년농부의 감각을 더해 브랜딩·이미지메이킹·가공·판매·소비자교육까지 가능한 팜 투 테이블(Farm-to-Table)형 레스토랑까지 확대할 계획이죠.

“일단 돼지 50마리, 닭 200~300마리 정도를 키울 계획입니다. 그동안의 노하우에다 새롭게 레스토랑 모델까지 넣어 공동체를 만들고 싶습니다. 팜웨딩도 할 수 있고 새터민 친구들의 귀농훈련센터로도 활용하고 싶습니다. 요벨팜은 먹거리에 대한 새로운 가치를 제시하고 이런 가치를 실험해보는 작은 공동체가 되고자 합니다.”

* ‘장마당 세대’: 1980년대 중반부터 1990년대 후반 무렵 태어난 북한의 청년 세대를 부르는 말이다. 장마당은 90년대 중반부터 후반까지 최악의 기근에 시달린 ‘고난의 행군’ 이후 등장한 북한의 시장이다. 북한인권단체 링크(Liberty in North Korea)가 탈북 청년 10여 명을 인터뷰한 다큐멘터리 ‘장마당 세대(The Jangmadang Generation)’의 제목이기도 하다.

㈜요벨 임직원들과 함께.

㈜요벨 임직원들과 함께.

글=김은혜 꿈트리 에디터

※’자기주도진로’ 인터뷰는 교육부와 한국직업능력개발원이 발행하는 자유학기제 웹진 ‘꿈트리(dreamtree.or.kr)’의 주요 콘텐트 중 하나입니다. 무엇이 되겠다(what to be)는 결과 지향적인 진로가 아니라, 어떻게 살아가겠다(how to live)는 과정 중심의 진로 개척 사례를 소개하는 코너입니다. 틀에 박힌 진로가 아닌, 스스로 길을 개척해 나가는 진로 사례를 소개하고자 합니다. 현재의 성공 여부보다 자신이 좋아하는 일에서 행복을 찾고, 남들이 뭐라 하든 스스로의 길을 뚜벅뚜벅 걸어가는 멋진 사람들의 이야기를 통해 ‘나의 길’을 점검해 보시기 희망합니다. 꿈트리 ‘자기주도진로’ 인터뷰는 소년중앙과 협업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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