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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취재일기

4차산업혁명에서 존재감 잃어가는 한국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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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9면

손해용 기자 중앙일보 경제부장
손해용 산업부 기자

손해용 산업부 기자

4차산업 혁명의 신기술로 꼽히는 ‘블록체인’과 ‘양자통신’. 정보통신기술진흥센터(IITP)가 산·학·연 전문가 124명을 설문조사해 한국의 기술 경쟁력을 평가한 결과는 참담하다. 블록체인의 기술 수준은 미국의 76.4%로 2.4년의 기술 격차를 보였다. 유럽(96%)·일본(84.8%)·중국(78.9%) 등에 모두 뒤졌다. 광자(빛 입자)를 암호 전달에 이용해 해킹을 막고, 속도·정확성을 높인 양자통신의 경우 73%로 미국과 격차가 무려 4년에 달했다. 중국과 미국의 격차(2년)보다 훨씬 크다. 한국은 네트워크, 전파·위성, 이동통신 등 다른 정보통신기술(ICT) 10대 기술 수준에서도 경쟁국 중 최하위에 머물렀다.

세계적으로 ICT 산업은 하드웨어에서 서비스·소프트웨어로 무게 중심을 옮겨가는 중이다. 우버·유튜브가 좋은 예다. 전문가들은 이런 기업이 탄생하게 된 배경으로 “규제 장벽이 낮은 생태계에서 시작한 덕분”(구태언 테크앤로 변호사), “기업 친화적인 환경에서 경쟁력을 확보”(권태신 한국경제연구원장) 등을 꼽았다.

[일러스트=김회룡 기자]

[일러스트=김회룡 기자]

하지만 이는 딴 나라 얘기다. 한국에선 인터넷전문은행을 키운다고 했지만, 꼭 필요한 은행자본과 산업자본의 분리(은산분리)란 족쇄는 풀리지 않았다. 빅데이터 산업 역시 ‘개인정보 보호법’에 갇혀 출구를 찾지 못하고 있다. 대한상공회의소에 따르면 신산업 분야 700여 기업 두 곳 중 한 곳(47.5%)은 규제로 사업 차질을 빚었다.

여기에 가파른 최저임금 인상, 강제 정규직화 등 기업의 발목을 잡는 반(反)시장 정책은 쉴새 없이 쏟아져 나온다. 당장 중소 ICT업계에선 “하루 20시간 이상 일해도 성공할까 말까인데, 주 52시간 근로제를 지킨다면 어떻게 큰 기업으로 성장하겠느냐”는 반발의 목소리가 높다.

지난 23일 마크 저커버그 페이스북 창업자를 비롯한 세계 ICT 거물들을 불러 ‘테크 포 굿’ 행사를 연 프랑스 에마뉘엘 마크롱 대통령의 행보는 눈여겨볼 점이 많다. 이 자리에서 마크롱은 인공지능(AI) 등 4차산업 혁명 관련 분야에서 마이크로소프트·구글 등의 투자 및 채용 계획을 받아냈다. 그가 펼친 노동규제 완화와 혁신기업 창업 지원 등의 정책이 힘이 됐다는 게 외신의 평가다.

정부가 경제 성장 전략으로 내세운 게 ‘혁신 성장’이다. 하지만 이에 필요한 규제 완화는 속도가 더디고, 기업 옥죄기에만 열을 올리고 있다. 프랑스와는 반대다. 이대로라면 4차산업 혁명은 미국·중국의 무대가 될 게 뻔하다.

손해용 산업부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