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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리스토텔레스와 스티브 잡스 “걸어가며 토론하라”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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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85호 30면

천재는 태어나나, 만들어지나 

천재의 발상지를 찾아서

천재의 발상지를 찾아서

천재의 발상지를 찾아서
에릭 와이너 지음
노승영 옮김, 문학동네

‘외로운 천재’는 신화다 #걷기만 해도 창의성 60% 높아져 #천재는 특정 시대·도시에 집중돼 #부자는 천재 되기 어렵다 #현실에 만족 않는 중산층에 많아 #유전자보다 적당한 경쟁이 중요

천재에 대하여
대린 M 맥마흔 지음
추선영 옮김, 시공사

모든 부모는 ‘우리 딸·아들이 혹시 천재가 아닐까’하는 기대로 흥분하기 쉽다. 하지만 천재들은 아버지나 어머니를 일찍 여의고, 평생 골골하는 경우도 많다고 한다. 그런데도 천재의 부모가 되는 것은 충분히 보람 있는 일이다. 단 한 명의 창의성 있는 천재가 수만 명이 아니라 수천만 명에게 먹을거리를 마련하기 때문이다. 천재·창의성의 비밀을 풀어보려는 노력이 뜨거운 이유다.

천재·창의성의 비결은 유전자인가. 교육 등 환경인가. 아니면 ‘1만 시간의 법칙’이 상징하는 노력인가. 다른 모든 인간과 마찬가지로 천재는 시공(時空)의 산물이기에 역사나 지리의 관점에서 천재를 살필 수 있다.

『천재의 발상지를 찾아서』는 철학·과학·예술·문학·음악 등 분야에서 불멸의 업적을 남긴 천재들이 한곳에 무리를 지어 등장하는 경향이 있다고 주장한다. 외로움과 싸우며 창작에 정진하는 천재 이미지는 신화라는 것이다. 천재에게 필요한 것은 고독이 아니라 경쟁자들이 우글거리는 도시다. 저자는 “한 아이를 길러내는 데 한 마을이 필요하다면, 한 천재를 길러내는 데는 한 도시가 필요하다(If it takes a village to raise a child, it takes a city to raise a genius)”고 주장한다.

『천재의 발상지를 찾아서』의 저자 에릭 와이너는 뉴욕타임스(NYT)·내셔널퍼블릭라디오(NPR) 기자 출신이다. 그는 자신이 선정한 천재의 산실, 일곱 도시의 공통점과 차이점을 해학이 담긴 저널리즘 감각으로 해부한다.

라파엘로(1483~1520)의 ‘아테네 학당’(1509~1510). 고대의 대학자 54명을 한 자리에 모은 프레스코화다. 『천재의 발상지를 찾아서』의 저자인 에릭 와이너는 천재들은 한 장소에서 한꺼번에 등장한다고 주장한다. [사진 바티칸박물관]

라파엘로(1483~1520)의 ‘아테네 학당’(1509~1510). 고대의 대학자 54명을 한 자리에 모은 프레스코화다. 『천재의 발상지를 찾아서』의 저자인 에릭 와이너는 천재들은 한 장소에서 한꺼번에 등장한다고 주장한다. [사진 바티칸박물관]

저자는 현장으로 갔다. 소크라테스가 활동한 아테네, 남송(南宋, 1127~1279)의 도읍이었던 항저우, 메디치 가문의 후원으로 예술을 꽃피운 14세기 피렌체, 스코틀랜드 르네상스(15세기 말~17세기 초)의 중심지였던 에든버러, 1840~1920년 ‘벵골 르네상스’의 산실이 된 콜카타, 모차르트와 프로이트의 빈, 미래 과학기술 문명이 이미 시작된 실리콘밸리다.

‘축구의 신(神)’이 브라질·독일·이탈리아·아르헨티나를 선택했다면, ‘천재의 신’은 이들 도시를 선택했다. 이유가 뭘까. 저자의 분석 중에 재미있는 이야기는 이런 것들이다. 고대 그리스 아테네 사람들은 운동, 특히 걷기를 좋아했다. 소요학파(逍遙學派, 페리파토스학파)의 우두머리인 아리스토텔레스는 천천히 걸으며 제자들을 가르쳤고 또 제자들과 토론했다. 현대 과학은 걷기와 창의성의 관계를 규명했다. 스탠퍼드대 연구진은 2014년 걷기가 창의성을 60% 증진한다는 연구결과를 발표했다. 21세기 아테네로 볼 수 있는 실리콘밸리는 걸어가며 회의하는 ‘워킹미팅(walking meeting)’의 발상지다. 스티브 잡스(1955~2011)와 마크 저커버그가 대표적인 워킹미팅 예찬론자다.

아테네와 에든버러 사람들은 희석한 와인을 즐겼다. 시카고 일리노이대 연구자들은 2012년 음주운전 판정에 안 걸릴 정도의 술을 마신 피실험자들이 멀쩡한 피실험자들보다 창의성 테스트 점수가 더 높다는 것을 발견했다.

천재에 대하여

천재에 대하여

과유불급이다. 전력질주나 만취는 천재성·창의성에 도움이 안 된다. 천재성·창의성의 핵심 또한 중용이다. 돈도 적당히 가져야 한다. 대다수의 천재는 중산층 혹은 상위 중산층 출신이다. 지나치게 부유하면 현실에 안주할 가능성이 크다. 돈은 뜻있는 사람에게 받으면 된다. 피렌체에는 메디치 가문이라는 후원자가 있었고 실리콘밸리에는 에인절 투자자가 있다. 저자는 적당한 정치적·사회적 혼란·무질서도 천재의 탄생에 도움이 됐다고 지적한다.

천재성은 의도하지 않은 결과이기도 하다. 스코틀랜드 장로교는 ‘누구나 성경을 읽어야 한다’는 목표를 실현하기 위해 문해력을 확산했다. 예상치 못한 결과는 ‘스코틀랜드 르네상스’였다. 경제학·사회학·지질학·철학·과학기술의 ‘빅뱅’이 일어났다. 또 영국 식민 당국은 식민통치에 필요한 사무원을 양성하기 위해 콜카타에서 문맹 퇴치에 나섰다. 본래 의도는 콜카타를 ‘서기(書記)의 도시’로 만드는 것이었지만, 콜카타는 ‘시인들의 도시’가 됐다. 당시 콜카타는 런던에 이어 세계에서 두 번째로 많은 책이 출간되는 출판도시였다.

저자는 천재·창의성이 무질서(disorder)·다양성(diversity)·감식안(discernment)이라는 ‘3D’에 달렸다고 주장한다. 여기서 감식안은 좋은 아이디어와 나쁜 아이디어를 판별할 수 있는 능력이다.

와이너에 따르면 천재들의 황금시대는 몇 세대 못 간다. 반세기 정도에 그치는 경우가 많다. 왜? 한가지 변수는 식탐이다. 전성기 아테네는 음식이 신통치 않아 철학적 담론에 몰두했다. 방심하게 된 아테네 사람들은 미식을 즐겼다. (그때 TV가 있었다면 아테네의 방송들은 ‘먹방’ 프로를 허다하게 내보냈을 것이다.)

『천재에 대하여』의 저자는 대린 맥마흔 미국 다트머스대 석좌교수다. 이 책은 고대부터 현재까지 천재와 천재성의 역사를 추적했다. 맥마흔 교수에 따르면 천재의 출발점은 종교였다. 근대적 의미의 천재는 탈종교화가 심도 있게 진행된 18세기에 탄생했다. 저자에 따르면, 오늘날의 천재는 셀레브리티다. 21세기는 ‘누구나 천재가 될 수 있다’는 모토가 지배한다.

천재의 역사를 맥마흔 교수는 이렇게 정리한다. “서구 사회에서는 18세기까지 천재가 뛰어난 개인을 지칭하는 말이 아니었다. 모든 남성에게 붙어 있는 영적인 존재였다. 고대 로마인에게 천재는 인간의 출생과 인생을 보살피고 인간과 신(神) 사이의 소통을 매개하는 존재였다. 4세기 말 그리스도교가 로마의 국교가 된 뒤 게니우스(genius)는 그리스도교의 수호천사와 수호성인으로 대체됐다. 근대에 들어 천재 개념의 세속화가 시작됐다. 종교와 분리된, 탁월한 개인이라는 뜻으로 쓰이기 시작했다. 하지만 세속화는 완결되지 않았다. 현대인들도 막연하나마 천재란 신과 특별한 관계라고 생각하고 천재를 ‘숭배’한다. 천재는 세상에 숨겨진 신비, 현실의 진짜 모습을 보여주고 신성(神性)을 우리가 엿볼 수 있게 해줄 수 있는 사람들이다. 현대의 천재도 로마의 게니우스(genius)나 수호천사·수호성인처럼 우리의 ‘구원’을 돕는 존재다.”

어쩌면 21세기가 진정으로 바라는 천재는 일자리를 많이 만들 ‘공학 천재’다. 영어의 ‘공학(engineering)’은 ‘천재(genius)’와 어원이 같다. 이 문제에 대해 맥마흔 교수는 이렇게 말한다.

“프랑스어 ‘제니(genie)’는 공학과 천재 모두를 가리킨다. 어원은 선천적 재능 등을 의미하는 라틴어의 ‘인게니움(ingenium)’이다. 18세기부터 프랑스어의 제니(genie)나 영어의 지니어스(genius) 등은 독창성과 창의성을 추가로 내포하게 됐다. 공학은 천재의 특질인 독창성과 창의성을 요구한다. 공학과 천재의 관계는 서양 언어에서 보다 잘 드러난다고 볼 수 있다.”

『천재의 발상지를 찾아서』를 쓴 에릭 와이너와 『천재에 대하여』를 쓴 대린 M 맥마흔은 둘 다 베스트셀러 작가다. 흥미롭게도 둘 다 행복의 문제를 다뤘다. 와이너는 『행복의 지도』(2008), 맥마흔은 『행복의 역사』(2008)를 썼다.

김환영 지식전문기자 whanyu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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