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북 연석회담은 안 된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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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71년과 84년에 이어 제3기 남북대화 시대가 임박해오고 있다. 그 동안 남북의회 사이에 협의돼온 의회회담을 위한 예비회담이 오는 17일 판문점에서 열릴 전망이다. 처음 북한은 예비회담 없이 바로 본 회담을 열자고 주장했으나 회의진행상 예비회담을 해야한다는 우리 국회의 의견을 받아 들였다. 우리국회 또한 북한의 제의를 긍정적으로 받아들이기로 함으로써 17일의 예비회담성립엔 큰 어려움이 없을 것 같다.
그러나 이번 북한의 서신에는 석연치 않은 점들이 있다. 즉 본 회담 형태에 대해 우리측의 대표회담형식을 거부하고 계속 연석회의를 고집하고 있는 것을 비롯해 장소와 일정을 일방적으로 지정하고 있다는 점이다.
북한은 예비회담 일자를 8월 17일로 함으로써 우리 정부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추진되고 있는 남북 학생회담의 추이를 보고 유리한 분위기 속에서 예비회담을 이끌어가려는 속셈인 것 같다.
예비회담 장소도 과거의 경우처럼 중립국 감독위 회의실을 피하고 북한측 건물인 통일 각에서 하자고 제의함으로써 통일문제에 관해 평양이 주도한다는 인상을 주려했다.
이 같은 의도는 연석회담형식의 제 2차 의회회담을 8월 26일 평양에서 열자고 한데서 더욱 극명하게 나타났다. 9월 9일은 북한의 정권수립이 공포된「9·9절」40주년이다. 북한은 각국 사절을 평양에 불러 대규모 축제를 벌인다. 그로부터 1주일 뒤엔 서울에서 올림픽이 개최된다. 따라서 세계의 주목이 한반도에 쏠리고 세계인이 한반도에 모여드는 때를 이용하여 통일을 위한 남북회담을 평양에서 가짐으로써 북한의 이니셔티브를 과시하려 하는 것이다.
그러나 우리 국회는 통일과 대화라는 대의를 중시하여 하찮은 절차문제엔 크게 구애되지 않고 대도를 걸어갈 방침이다. 더구나 본 회담에 관한 일정이나 형식 ,장소 등은 예비회담의 토의대상이기 때문에 일단 예비회담에 응할 자세다.
문제는 회의능률상 회담형식이 소홀히 취급돼선 안 된다는 것이다. 다중이 모여 토론과 박수로 진행되는 군중 집회식 연석회의는 아무런 효과가 없다. 따라서 우리국회는 대표회담형식을 양보해서는 안 된다.
남북한을 막론하고 의회는 영토내의 모든 주민을 골고루 대표하는 사람들로 구성돼 있다. 북한의「최고인민회의」는 북한내의 모든 지역·정당 및 사회단체의 대표자들로 구성돼 있다. 우리 국회도 국민과 정당 및 각 사회단체의 지지 하에 뽑힌 의원들로 구성돼 있다. 따라서 북한이 주장하는 정당·사회단체 대표를 의회회담에 참석시켜 연석회의로 하자는 것은 불필요할 뿐 아니라 오히려 능률을 저해할 뿐이다.
문제는 우리 내부에도 있다. 우리사회는 지금 통일문제를. 둘러싸고 내적 분열과 갈등을 벌이고 있다. 학생과 재야는 정부의 권위를 부인하려 든다. 정치적으로도 국회특위 활동을 둘러싸고 대립돼 있다. 올림픽이라는 대규모 국제행사는 눈앞에 다가왔다. 더구나 우리의 건국 4O주년이 되는 8월 15일을 기해 학생들은 남북학생회담을 위해 판문점으로 가겠다고 한다.
정부는「6·10회담」때와 같이 이를 원천 봉쇄할 방침이다. 또 한차례의 대규모 소란이 불을 보듯 뻔하다.
올림픽 행사 속에서 대화시대, 개방시대를 맞게된 우리에겐 통일된 질서가 아쉽다. 자유로운 분위기 속에서 활발히 토론하고 행동하되 그것은「국민적 합의」와「정책의 일원화」라는 하나의 질서로 가는 과정이어야 한다. 지금이 바로 그런 질서로 가야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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