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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풀뿌리 가계부]가평군의장 해외출장 3번 더 간 비결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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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가평군의회 의장은 2015년 2월 캄보디아, 4월 싱가포르∙인도네시아, 8월 미국으로 출장을 다녀왔다. 물론 경비는 세금으로 댔다. 하지만 가평군이 공개한 2015년 ‘의원 국외출장비 사용내역’에는 이런 내용이 없다. 의원 출장비 예산을 쓰지 않고, 의장협의회 회비에서 비용을 지출했기 때문이다. 문제는 이 회비를 의회가 세금으로 내줬다는 것이다.

기초의원은 내가 사는 곳의 조례를 만들고 예산을 정하는 이들이다. 하지만 유권자들은 이들의 살림과 씀씀이가 어떤지 잘 모른다. 그래서 중앙일보가 6·13 지방선거를 앞두고 전국 기초의회 226곳의 4년 치 가계부(예·결산서)를 들여다봤다. 출장비∙옷값∙배지값에 이어 네 번째는 의장협의회 회비다.

[풀뿌리 가계부] 시리즈

기초의장들은 자주 모인다. 전국 226곳 기초의장이 모두 가입된 전국시군자치구의장협의회(이하 전국의장협의회)가 있고, 특별시∙광역시∙도별 모임이 따로 있다. 도 안에서도 남부∙북부∙동부∙서부 같은 권역별 모임도 있다. 기초의장 1명당 통상 2~5곳의 의장협의회에 가입하고, 각 협의회 부담금을 세금으로 납부해 왔다. 협의회 한 곳당 연간 120만~500만원 정도다.

각종 의장 모임 가입해 연 3회씩 해외 출장

문제는 다수의 협의회가 이렇게 거둔 돈의 상당액을 의장들의 ‘관광성’ 해외연수에 쓴다는 점이다. 여러 곳의 협의회에 중복으로 가입한 경우 이런 출장을 여러 번 갈 수 있다. 가평군의장과 구리시의장은 이번 임기(2015~2018년) 동안 각종 의장협의회 해외출장을 매년 3회씩 갔다.

국민권익위원회는 지난 2016년 전국 기초의장협의회 임의부담금 사용 실태를 조사한 뒤 “의장들이 임의로 만든 모임에 기초의회가 세금으로 회비를 내는데 모임 회비 쓰임새가 투명하지 않다. 의장들의 친목 도모형 해외연수 비용과 조의금ㆍ축의금 등에 지출이 많다”고 지적했다. 기초의회들에 시정 권고도 내렸다. 지방자치법에 따라 설립된 전국의장협의회 외에 지역별 의장협의회는 법적 근거가 없는 단체니, 세금으로 회비를 내면 안 된다는 것이다.

권익위 권고에도 여전히 회비 내고, 해외 가고

하지만 중앙일보가 226개 기초단체의 2017년∙2018년 예산서를 전수 확인한 결과 지난해 144곳, 올해 91곳의 기초의회가 여전히 지역별 의장협의회 부담금을 낼 예산을 편성했다.

가평군은 지난해와 올해 지역별 의장협의회에 총 720만원을 냈다. 가평군의회 담당자는 “경기북부의장협의회에 360만원, 경기동부협의회에 360만원을 냈다”고 밝혔다. 권익위 권고 전후로 달라진 것이 없는 셈이다.

가평군뿐이 아니다. 지난해 총 11곳의 지역별 의장협의회가 예년과 동일하게 국외 연수를 다녀왔다(출처:국외출장연수정보시스템, 각 기초단체 ‘공무원 국외출장 내역’ 종합).

기초의장들의 국외 연수에 쓰이는 세금은 또 있다. 의장협의회 국외연수에는 의장 1인당 1~3명의 의회사무과 공무원이 동행한다. ‘의장 수행’ 명목이다. 이들의 출장비는 각 의회사무과 예산 중 ‘공무원 국외여비’에서 지출된다.

행안부 지침도 이미 바뀌었는데 

행정안전부는 지난해 7월 ‘지방자치단체 예산편성 운영기준’을 일부 개정했다. 의장단협의체 부담금에 대해 법적 근거가 있는 전국의장협의회 부담금만 예산에서 납부할 수 있도록 명시했다.

기초의장들은 이에 대해 행안부에 기준 재개정을 요구하고 있다. 지역별 의장협의회 부담금도 의회 예산에서 낼 수 있도록 명문화해달라는 거다. 전국의장협 사무국 관계자는 “전국 226명 기초의장이 모두 모이는 것은 불가능하고, 지역별로 논의ㆍ협력할 안건이 있기 때문에, 지역별 의장협의회도 법정 단체로 인정해달라는 것이 회원들의 요구”라고 말했다.

지자체 예산 운영기준에는 "의원의 국외출장비는 다른 예산 항목에서 지출할 수 없다"고 했다. 의원 1인당 연간 사용할 수 있는 국외출장비 예산이 정해져 있고, 이 돈으로 간 출장 내역은 공개해야 한다. 하지만 의장협의회에서 가는 해외출장은 표면상 협의회가 출장비를 지원하는 것으로 되어있기 때문에 이러한 감시와 제약을 안 받는다.

경기의장협의회 사무국 관계자는 이에 대해 "국외 연수를 가지 않는 지역 협의회도 있고 출장 때문에 부담금을 걷으려는 것이 아니다"며 "부담금을 받아 운영하던 방식을 갑자기 바꾸는 것이 어렵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또 "권익위 권고 이후로 불투명하고 무분별한 지출은 없다"며 "모든 지출에 영수증을 첨부하고 계좌이체 내역 등을 기록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디지털 스페셜 '탈탈 털어보자, 우리 동네 의회 살림' 에서 내가 사는 시·군·구 의회 씀씀이 내역을 한 눈에 볼 수 있습니다. 링크(https://www.joongang.co.kr/digitalspecial/298)를 클릭하거나, 주소창에 링크를 붙여넣어 주세요. 

[풀뿌리 가계부] 시리즈

심서현 기자 shshim@joongang.co.kr,
자료 조사=유채영 인턴
디자인=임해든, 김한울 인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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