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각제, 여권내부에 강한 공감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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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내각책임제의 불씨가 쉬 꺼지지 않고 있다.
청와대 쪽의 불쾌감 표시로 처음 내각제 발언을 했던 윤길중 대표위원이 「사견」으로 한발 후퇴하긴 했지만 계속 논의의 필요성을 역설하고 있고 더욱이 여권내부의 실력자(?)인 김윤환 총무가 사정을 번연히 알면서도 동경에서 다시 윤 대표의 내각제·연정론을 뒷받침하는 일지와의 회견을 했기 때문이다. 윤 대표는 7일 밤 귀국회견에서도 내각제가 「개인소신」이라고 하면서도 여전히 추진의사를 포기하지 않았다.
더욱이 김 총무의 후속발언은 여러 가지 추측을 낳기에 충분하다. 말하자면 이번 내각제 파문이 △고도의 정치적 계산과 함께 여권전체가 참여한 사전각본에 의해 연출된 작품이거나 △윤 대표·김 총무를 중심으로 한 여권 내 일부 개헌 추진세력의 계획된 파동일 가능성으로까지 이어지고 있다.
특히 김 총무의 동경회견과 거의 같은 시각 뉴욕에선 공화당의 김종필 총재 팀이 내각제 발언을 재차 터뜨리며 『연정에 응할 용의가 있다』(최재구 부총재)고 화답한 사실까지를 종합해 보면 추측은 더욱 엉뚱한 방향으로 비약될 수도 있다.
사전 각본설에 대해서는 당·정 및 발언 당사자들이 극구 부인하고 있어 현재로선 알 길이 없지만 김 총무의 발언으로 여권의 상당수는 연정과 내각제의 필요성을 깊이 인식하고 염두에 두고있다는 사실이 분명해졌다 하겠다.
윤 대표 발언에 대해 당의 강력한 제동이 있음을 알텐데도 김 총무가 문제발언을 되풀이한 속내엔 윤 대표의 발언이 자칫 해프닝으로 끝나버리지 않도록 한번 더 확인, 강조해 둠으로써 그 여운을 깊게 남겨둘 필요성 때문이 아닌가 추측되기도 한다.
어쨌거나 여권의 상당수가 그 필요성을 절감하고 있음이 이번 파동으로 확인됐다.
당의 부인도 내각제 자체에 대한 거부가 아니라 『거론할 시기가 아니다』는 엉거주춤한 선이며, 당직자들의 원망도 내각제 자체를 지목하고 있는 게 아니라 오히려 윤 대표의 발언으로 자칫 내각제 추진을 그르칠 수 있다는 염려에서 비롯되고있는 인상마저 풍길 정도다.
정부·여당 내엔 4·26 총선 후 세 차례의 임시국회 등 3개월 여 여소야대 정국을 시험 운영한 결과 『이대로는 곤란하다』는 회의적 시각이 팽배돼 있는 게 사실이다.
야전에서 몸으로 맞부닥쳐야 하는 윤 대표·김 총무로선 그 어려움을 더욱 뼈저리게 실감했을 수 있다.
이러한 상황인식과 함께 『판이 새로 짜여져야 한다』는 이야기들이 여권의 인사들 가운데 공공연히 흘러나오고 있으며 실제 핵심 당정회의에서도 국면 타개책과 함께 올림픽 이후 중간평가 대책이 거론됨에 따라 그 방안으론 연정·내각제 등의 논의가 뒤따른 것으로 알려졌다.
윤 대표가 내각제를 중간평가와 연계시켜 언급한 사실도 바로 이러한 분석이 가능하기 때문에 가볍게 보여지지 않는 것이다.
실제 여권내부에서 그 동안 검토된 것은 △내각제 개헌을 놓고 중간평가를 하자거나 △재신임 투표와 동시에 국회해산을 하며 총선 재 실시 때 당론을 내각제개헌으로 하자는 등의 정국운영방안들이 나돌기도 했다. 물론 연정도 그중 한 방안으로 포함돼있다.
연정은 이번 윤 대표의 발언처럼 내각제 개헌을 위한 방편으로 고려되기도 하고 김 총무 발언처럼 정국운영의 모델로서 검토되기도 했다.
문제는 내각제 개헌의 경우 △「직선제=민주화」란 관념이 국민들의 머리 속에 깊이 박혀있고 △개헌은 곧 헌정파행이란 인식이 깔려있으며 △개헌을 집권당에서 먼저 거론하면 자칫 정권 연장수단으로 오해될 소지가 많다는 점등에서 정부. 여당으로선 먼저 발설하기가 매우 조심스럽게 돼있다는데 있다.
내각제와 연정발언이 야당 측의 반발, 타이밍에 대한 당내 비판 등으로 본격 거론은 어려울지 모르나 여권 저변에 그 같은 물결이 도도히 흐르는 한 다시 모습을 드러낼 수밖에 없는 것이다.
본격 거론될 시기는 정국상황과 매우 밀접한 관계가 있겠지만 빠르면 올림픽 직후 또는 연말·연시가 될 것으로 보여진다. <허남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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