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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원석의 앵그리2030]⑦소진된 인생, 경쟁 끝엔 허무…극단 선택하는 청춘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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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유? 그런 건 없었어. 결심을 딱히 한 것도 아니고. 문득 죽는 것도 나쁘지 않겠다 생각했을 뿐이지. 사실 정확한 기억이 없어. 정신 차려보니 병원이었고. 자살 같은 건 진짜 남 얘긴 줄 알았는데 내 얘기더라.”

서울 마포대교에 세워진 위로 동상. 김경록 기자

서울 마포대교에 세워진 위로 동상. 김경록 기자

얼마 전 술자리에서 몇 년 전 자살을 시도한 적 있다는 지인의 폭탄 발언이 있었습니다.  “지금은 괜찮아.” 그의 말에 어느 정도 진정됐지만, 여운은 깊게 남았습니다.

한국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중 자살률이 가장 높습니다. 2003년부터 2015년까지 13년째 1위를 지키고 있죠. 1년 동안 인구 10만명당 28.7명(2013년, 국제 비교를 위해 과거 데이터 사용)이 자살로 생을 마감합니다.

OECD 평균(12.1명)보다 2.4배가량 높고, 뒤를 잇는 헝가리(19.4명)·라트비아(18.1명)·일본(17.6명) 등과 격차도 상당합니다.

다행히 2010년 33.5명까지 치솟았다가 점차 감소하는 추세입니다. 2016년엔 전년 대비 0.9명 감소해 25.6명까지 줄었습니다. 심각한 사회 문제로 떠오른 노인 자살률도 점차 감소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유독 10~20대의 자살률만 전년보다 소폭 증가했습니다. 최근 5년 추이를 보면 노인층의 자살률은 크게 줄었는데 청년층은 큰 변화가 없습니다.

그래픽=차준홍 기자 cha.junhong@joongang.co.kr

그래픽=차준홍 기자 cha.junhong@joongang.co.kr

한국 10대~30대의 사망 원인인 1위는 자살입니다. 특히 20대는 전체 사망 원인에서 자살이 차지하는 비중이 43.8%에 달합니다. 운수사고(15.1%)·암(11.3%)을 월등히 앞서는데 20대에 사망하는 사람의 대략 둘 중 하나는 자살로 죽는다는 의미죠.

경찰청의 분석에 따르면 자살 동기로는 ‘정신과적 질병 문제’가 36.2%로 비중이 가장 컸습니다. ‘경제생활 문제(23.4%)’, ‘육체적 질병 문제(21.3%)’가 뒤를 이었죠. 정신과적 질병이라고 하면 대표적으로 우울증이 떠오릅니다.

최근 이 우울증 환자가 크게 늘고 있습니다. 우울증으로 진료를 받은 환자는 2013년 59만명에서 2017년 68만명으로 15%가량 늘었습니다.

특히 20대는 5만명에서 7만6000명으로 5년 사이 49.6%나 증가했습니다.

오혜영 이화여대 학생상담센터 교수에 따르면 대학생의 74.5%가 불안 증상에 대한 잠재위험군에 속합니다. 대학생 약 2600여명의 심리건강 및 대학생활 적응 실태를 조사한 결과인데 전체 응답자 중 43.2%가 우울 증상을 경험하고 있다고 답했습니다.

우울한 사람이 자살할 확률도 높은 건 사실입니다. 삼성서울·서울대·분당서울대병원 공동연구팀이 연구에 따르면 우울장애를 앓고 있는 사람이 그렇지 않은 사람보다 자살 위험이 2.38배 높았습니다.

자료:보건복지부

자료:보건복지부

청년들은 왜 우울해졌을까요? 우선 과도한 경쟁 끝에 찾아오는 허무함을 지적하는 목소리가 높습니다. 우울증 치료를 받는 김은형(29·가명)씨는 취업 후에 스트레스가 컸다고 했습니다.

“대학 내내 취업 걱정만 하며 살았어요. 그때부터 자꾸 사람들을 멀리하고 안으로 파고들기 시작한 거 같아요. 취업하고 나면 끝날 줄 알았는데 그것도 아니더라고요. 회사에서 가짜 웃음 짓는 게 한심하다는 생각도 들고요. 이미 다 소진된 인생 같아요.”

그래픽=차준홍 기자 cha.junhong@joongang.co.kr

그래픽=차준홍 기자 cha.junhong@joongang.co.kr

속마음 깊은 곳에 깔린 희망 없는 미래도 빼놓을 수 없습니다. 경제적 이유와 관계가 깊죠. 소득 정체에 자산 증식은 쉽지 않고, 양극화는 해결할 수 없는 수준에 이르렀습니다. 이건호(28)씨는 “좀 힘들어도 미래가 나을 것이란 확신이 있으면 희망의 꽃이 핀다”며 “지금은 꿈꾸기 어려운 시대”라고 말했습니다.

지난 3월 통계청이 발표한 ‘2017 사회지표’에 따르면 한국 국민 중 평생 노력할 경우 본인 세대에 사회경제적 지위가 상승할 가능성이 ‘높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23.1%에 불과합니다. 자식 세대에서의 계층 이동 가능성에 대해서도 ‘높다’는 응답은 30.6%밖에 안 됩니다.

대체 8년 사이 무슨 일이 있었는지 모르지만, 계층 이동 가능성이 높다는 응답은 첫 조사(2009년) 때와 비교해 각각 12.6%포인트(본인 세대), 17.8%포인트(자식 세대)나 떨어졌습니다.

그래픽=차준홍 기자 cha.junhong@joongang.co.kr

그래픽=차준홍 기자 cha.junhong@joongang.co.kr

부실한 사회안전망도 한몫합니다. ‘송파 세 모녀’를 떠올리지 않더라도 여전히 한국에선 ‘가난’이 자살의 이유 중 하나입니다. 1인당 국민소득 3만 달러를 논하는 지금도요. 적어도 먹고 살기 어려워 죽음을 택하는 일만은 막아야 할 텐데 그런 일이 적지 않습니다.

 자성의 목소리도 있습니다. 안윤호(34)씨는 청년층의 자기 부정을 말합니다.

“색깔을 드러내지 않으면서 집단 안에 조용히 머물길 원하죠. 다른 사람과는 참 친하고, 관심도 많은데 정작 자신과는 별로 가깝지 않아요. 자신을 부정하고, 자신이 처한 현실로부터 도피하길 원하죠. 현재가 싫으니 과거에 얽매여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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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인이 어떻든 상황을 반전시켜야 하는 건 분명합니다. 120년 전 『자살론』을 쓴 에밀 뒤르켐은 자살의 원인을 개인이 아닌 사회에서 찾았습니다. 이유가 개인에 있든 사회에 있든, 자살을 막는 게 개인의 몫이 아닌 것만은 분명합니다.

왜 아이들을 치열한 경쟁의 전장으로 내몰았는지, 꿈을 묻지 않고 꿈을 강요했는지, 비타민은 챙겨 먹이면서 왜 마음의 상처는 돌보지 않았는지 돌아봐야 합니다. ‘약해빠진 것들의 잘못된 선택’으로 치부하진 않았는지 곱씹어볼 필요가 있다는 뜻입니다.

아픈 사람은 아프다고 말을 해야 합니다. 전문가들은 “특히 마음의 상처는 공개를 두려워하지 않아야 치유할 수 있다”고 입을 모읍니다. 송인한 연세대 사회복지학과 교수는 이렇게 말합니다.

“우리는 절망에 전염되지 않도록 견디며 현실의 고통을 함께 극복하고 있다. 서로의 아픔에 무심하지 말자. 정도의 차이일 뿐 우리는 모두 자살 생존자다.”

제대로 도우려면 제대로 된 시스템이 필요합니다. 정부의 역할이 무엇보다 중요하죠. 현실은 씁쓸합니다. 13년째 ‘자살 1등국’의 멍에에도 실질적인 노력은 부족했습니다. 지난해까지 중앙부처에 자살을 담당하는 공무원은 단 2명뿐(자살만 전담한 것도 아닙니다)이었습니다.

2015년 4월 19일 신고를 받고 출동한 경찰이 자살을 하려던 사람의 손을 잡고 위로하고 있다. [사진=서울지방경찰청]

2015년 4월 19일 신고를 받고 출동한 경찰이 자살을 하려던 사람의 손을 잡고 위로하고 있다. [사진=서울지방경찰청]

그나마 올해 2월 보건복지부 내에 자살예방정책과가 신설됐고, 인원도 7명으로 늘었습니다. 숨통이 트인 정도지만 선진국과 비교하면 턱없이 작은 규모죠. 연간 자살 예방 예산도 고작 162억원입니다. 한해 7500억원을 자살 예방에 쏟아붓는 일본에 비하면 부끄러운 수준입니다.

지금도 하루 평균 36명이 스스로 목숨을 끊고 있습니다. 그중 5분의 1은 청년이고요. 국민의 생명은 꼭 대형 사고가 터져야만 지키는 게 아닙니다. 건강한 사회는 결코 아픈 사람을 혼자 두지 않습니다.
세종=장원석 기자 jang.wonseok@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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