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의미없는 물감칠이라던 추상화가 어떻게 예술이 됐을까?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더,오래] 송민의 탈출, 미술 왕초보(4)

서울 강남 신사동 K옥션 전시장에서 한 관람객이 김환기의 1973년 작품 ‘고요(Tranquility) 5-IV-73 #310’를 보고 있다. 이 작품은 K옥션 경매에서 국내 최고가 기록을 깼다. [사진 K옥션]

서울 강남 신사동 K옥션 전시장에서 한 관람객이 김환기의 1973년 작품 ‘고요(Tranquility) 5-IV-73 #310’를 보고 있다. 이 작품은 K옥션 경매에서 국내 최고가 기록을 깼다. [사진 K옥션]

지난해 김환기의 판화를 전시할 때다. 갤러리 근처에 사는 미국인 마크는 뉴욕에 살 때부터 김환기를 좋아했다며 전시회를 반가워했다. 푸른 별을 연상시키는 그의 작품에 대중은 잘 공감한다. 하지만 다른 추상화를 전시하면 작품설명에 바빠진다. 이해하기 어려워하기 때문이다.

작가들은 한국의 추상화인 단색화의 열풍에 대해 자주 얘기한다. 판매한 작품 중 그리 많지 않은 추상화가 머리에 휙 지나간다.

경복궁 앞 국립현대미술관은 영어로 ‘National Museum of Modern and Contemporary Art’라고 부른다. 현대미술은 1860년대부터 현재에 이르는 예술 작품을 뜻한다. 1970년대 이후는 동시대 미술(contemporary)이라 부른다. 모던이니 컨템포러리니 참 많이 듣는 단어가 되었지만 대부분 사람은 알쏭달쏭하다.

‘점·선·면’이란 추상미술 이론의 창시자가 칸딘스키다.  비평가들은 그의 그림을 보고 의미 없는 물감칠이라고 했다. 오늘날 관객의 반응도 크게 다르지 않다. 추상화만이 아니라 현대미술의 정의는 ‘딱 보고 이해하기 어려운 미술’이 아닐까 싶다.

감탄사가 나오지 않으면 현대미술  

사람들은 멋진 자연을 보면 그림 같다고 감탄한다. 아름다운 풍경을 사실적으로 그린 그림을 감상한 경험이 있어서다. 풍경화를 봤을 때처럼 감탄사가 나오지 않으면 현대미술이다.

현대미술의 시작인 ‘인상주의’는 당대에는 욕 좀 먹었다. 사실대로 그리지 않고 얼굴에 여러 색으로 마음대로 그려서다. 진통 끝에 점차 주류가 됐다. 특히 미국에서 인기를 끌더니, 좀 더 사실에서 벗어나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인 비평가도 생겼다.

미국의 클레멘트 그린버그다. 그는 50년간 예술인 것과 아닌 것에 대해 가차 없이 선을 그었다. 오로지 추상화만을 칭찬했다. 한국에 많이 알려진 마크 로스코는 그린버그의 지지를 받는 행운아였다. 그의 추상화 전시회가 한국에서 있을 때면, 추상화 작품에 대한 문의가 많아진다.

앤디워홀의 '브릴로 상자(비누상자)'. [사진 송민]

앤디워홀의 '브릴로 상자(비누상자)'. [사진 송민]

미술사에 가장 크게 영향을 미친 사건 중 하나는 세계대전이었다. 물질 대신 정신적인 것을 새롭게 보자는 얘기가 나온 시점이다. 대표적으로 1917년에 뒤샹은 뉴욕에서 소변기를 전시했다. ‘샘’이라는 제목으로 예술이라고 주장했다. 그리고 앤디 워홀은 슈퍼마켓 진열처럼 비누 상자를 똑같이 만들더니 높게 쌓아놓고 예술이라 주장했다.

예술의 정의에 대한 논란은 커졌다. 이들은 잠깐 지나가는 반항적인 예술가에 그치지 않았다. 2004년 영국에선 최고의 현대 예술가가 누구인지 물었다. 대중은 뒤샹과 앤디 워홀을 꼽았다.

앤디 워홀의 비누 상자 전시로 충격을 받은 예술철학자가 아서 단토다. 그는 '주제와 해석만 있으면 모든 것은 예술이 될 수 있다'고 단칼에 정리해버렸다. 화장실의 변기는 사물이고, 전시장에서 ‘샘’이라는 주제에 ‘해석’이 부여되면 예술작품이 되는 세상이 된 것이다.

주제와 해석만 있으면 예술 

예술철학자 아서단토. 그는 '주제와 해석만 있으면 모든 것은 예술이 될 수 있다'고 정리했다. [중앙포토]

예술철학자 아서단토. 그는 '주제와 해석만 있으면 모든 것은 예술이 될 수 있다'고 정리했다. [중앙포토]

이 글을 읽고 어리둥절하거나 불쾌하다면 지극히 정상이다. 위로가 될지 모르겠으나 현대미술은 아름다움을 추구하지 않는다. 대신 ‘지적인 충격’을 주는 특징 때문에 쾌감보다는 어리둥절하게 느끼는 게 정상이다. 볼 게 별로 없는데 설명한 글은 왜 그리 긴지 놀란다. ‘작품은 빈곤하고 철학은 넘치는’ 것이 원래 현대미술의 특징이란다.

1960년대 꿋꿋하게 구상화를 그리던 프랜시스 베이컨을 시작으로 구상화가 등장한다. 아는 구상화 작가의 얘기가 생각난다. 그는 1970년대에 대학 시절을 보냈다. 당시 국내는 추상화 열풍이 대단했다. 그 열기로 온통 학교는 추상화만을 그렸다.

이는 세계적인 분위기였다. 구상화를 그리고 싶은 그에겐 힘들었을 때였다. 그린버그가 추상화만이 진정한 예술이라 우겨서 그랬을 거다. 그러나 유행에서 벗어나더라도 버틸 필요가 있다. 그는 구상화의 길을 갔고 6월에 구상화로 개인전을 한다.

요즘엔 ‘모던’이란 글자를 백화점이나 광고 문구 등에서 많이 만난다. 현대미술이 생활 속으로 많이 들어왔다. 한 작가는 제자가 전업 작가를 기피하고, 산업디자인 등 다른 진로를 더 찾는다고 전했다.

익숙하지 않으면 늘 예술이 아니라고 우긴 게 미술의 역사이다. 내가 생각하는 미술사는 미술 기법이 해방되어 온 역사다. 진정한 미술이 아니라고 밀려났던 모든 그림이 후대엔 예술의 영역으로 들어왔다. 모든 미술은 평등하고 자유를 누릴 권리가 있다. 햇살이 좋은 계절, 예술을 마음껏 느껴보자.

송민 갤러리32 대표 gallery32@naver.com

관련기사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