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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3년 전 ‘저고리시스터즈’ 아시나요

중앙선데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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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84호 32면

책 속으로

걸그룹의 조상들

걸그룹의 조상들

걸그룹의 조상들
최규성 지음, 안나푸르나

역대 한국 걸그룹 305개팀 조사 #윤복희·김성녀·인순이·장필순 … #새롭게 읽는 20세기 대중음악사

윤복희·김성녀·인순이·장필순·소찬휘…. 얼핏 봤을 때는 전혀 공통점이 없을 것만 같은 이름들이다. 나이, 활동 시기는 물론 장르도 판이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들에게는 ‘걸그룹 출신’이라는 연결고리가 있다. 이들의 활약을 연결해 보면 한국 대중음악사에서 걸그룹이 어떻게 계보를 이어왔는지 볼 수 있다.

윤복희는 1960년 동네 친구 송영란과 함께한 ‘투스쿼럴스’를 시작으로 64년에는 4인조 ‘코리언 키튼즈’로 변신, 동남아 순회공연을 다녔다. 김성녀 국립창극단 예술감독은 동생 김성애 명창과 함께 71년 신민요 듀엣 ‘비둘기시스터즈’로 활동했다. 인순이는 78년 트리오 ‘희자매’, 장필순은 84년 포크 듀엣 ‘소리두울’로 데뷔했고, 소찬휘는 88년 5인조 걸밴드 ‘이브’의 리드기타로 이름을 알렸다.

그룹 이름만 봐도 트렌드가 한눈에 보인다. 미8군을 중심으로 음악 시장이 형성된 60년대에는 영어 이름이, 76년 국어순화운동 전개 이후에는 자매 그룹을 주축으로 한글 이름이 널리 쓰였다는 것을 알 수 있다. 2009년 데뷔한 7인조 걸그룹 ‘레인보우’는 이미 73년 4인조 걸그룹이 사용했던 이름이다.

1960년대 미8군 무대를 주름잡던 극단인 ‘20세기 쇼단’에 소속돼 활동했던 ‘올스타’밴드. [사진 안나푸르나]

1960년대 미8군 무대를 주름잡던 극단인 ‘20세기 쇼단’에 소속돼 활동했던 ‘올스타’밴드. [사진 안나푸르나]

한국대중가요연구소 대표인 저자는 “요즘 젊은 세대들이 90년대 후반 등장한 S.E.S.나 핑클을 걸그룹의 원조 혹은 조상이라 생각하는 현실이 안타까웠다”고 집필 의도를 밝혔다. 1935년 저고리시스터를 시작으로 대중에게 춤과 노래로 즐거움을 선사하던 수백여 팀의 노고가 제대로 평가받지 못하는 것에 대한 아쉬움이 방대한 작업을 시작하는 동력이 된 셈이다. 2012년 인천 부평아트센터 제안으로 진행했던 동명의 전시 역시 촉진제 역할을 했다.

78년 데뷔한 트리오 ‘희자매’의 앨범 자켓.

78년 데뷔한 트리오 ‘희자매’의 앨범 자켓.

6년의 추가 조사 끝에 전시 당시 150팀이었던 걸그룹 목록은 305팀으로 두배 가량 늘어났다. 소장하고 있던 수천 권의 노래책과 수만 장의 음반을 샅샅이 뒤져 흔적을 찾아 나갔다. KBS 어린이 합창단 시절부터 일간지 대중음악 담당 기자로 재직하며 모은 자료들이 위력을 발휘했다. 64년 송영란과 정난용으로 구성된 ‘김치시스터즈’나 72년 최초로 유럽에 진출한 5인조 걸밴드 ‘코리언블랙아이즈’ 등 음악사에서 사라진 이름을 발견해낸 것도 그 치밀함과 꼼꼼함 덕분이다.

백과사전류의 책은 큰 감흥을 주지 못하기 마련이다. 수많은 사실이 연대기식으로 나열돼 정보의 경중을 한눈에 보여주지 못하는 탓이다. 하지만 『걸그룹의 조상들』은 다르다. 그 발자국을 좇다 보면 데뷔 1년 만에 가수왕에 등극한 걸그룹은 69년 ‘펄시스터즈’ 이후 30년 만에 ‘핑클’이 처음이라거나 66년에 이미 ‘점블시스터즈’의 유닛 개념을 구상하는 등 현재 상황에 비추어 종횡으로 읽는 경험을 할 수 있다. 9인조 걸밴드 ‘블루리본’ 드러머 출신인 고 명정강 선생의 증언을 통해 62년 한국 최초 걸밴드가 어떻게 탄생하고 해체했는지, 기타리스트 신중현과는 어떻게 만나 결혼하게 됐는지 등을 읽는 재미도 쏠쏠하다.

2000년대 걸그룹에 대한 정보는 과감히 생략했다. 인터넷 검색으로도 손쉽게 알 수 있다는 이유에서다. 현재 서울 롯데갤러리 영등포점에서 관련 전시를 진행 중인 저자는 “영국에서 ‘한국 대중음악 100년’ 전시도 논의 중이다. 팝의 본고장에서는 K팝이 역사도 없이 갑자기 튀어나온 별종 취급을 하는 경우가 많은데 인식을 바꾸는 계기가 됐으면 좋겠다”고 밝혔다.

민경원 기자 storymi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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