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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해지자’가 모토 … 독신 축의금·반려동물 수당 주고 성 소수자 뽑는다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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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84호 14면

[홍병기의 경제 리포트] 이색 복지 실험, 우미령 러쉬코리아 대표 

우미령 대표는 ’직원 모두에게 혜택을 주는 균등한 복지 실현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신인섭 기자]

우미령 대표는 ’직원 모두에게 혜택을 주는 균등한 복지 실현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신인섭 기자]

독신을 선언했더니 축의금을 주고, 반려동물을 키우면 수당을 주는 ‘이상한’ 회사. ‘더티 스프레이’‘채러티 팟’ 등 수제 화장품·목욕용품으로 유명한 영국 브랜드 ‘러쉬’의 한국법인인 (주)러쉬코리아는 독특한 기업복지제도를 운용한다. 독신 직원에게 회사에서 결혼 때와 똑같은 축의금과 휴가를 주고, 가족이 없는 직원이 기르는 반려동물에 가족수당(월 5만원)을 지급한다. 기르던 반려 동물이 죽으면 하루 유급휴가를 준다. 너무 앞서가는 제도가 아니냐는 지적에 이 회사 우미령 대표(44)는 “‘우리 모두 이상해지자’란 게 우리 회사의 모토”라고 다소 엉뚱한 대답을 내놨다. “도발적이고 다른 생각이라 해도 서로 다 받아들이는 분위기를 만들자는 뜻에서 이런 제도가 나왔다”는 것이다. 그가 밝히는 새로운 기업 복지에 대한 소신이다.

도발적이고 생각 다른 사람 포용 #부모·아이 중심서 균등한 복지로 #공채 선발 때 막내 직원들이 면접 #판매 수익 일부 기부하는 윤리경영 #65%가 여직원, 간부 7명 중 5명 여성 #일과 가정 양립할수 있는 제도 도입

영국 본사에서 재미있는 사례로 소개

반려동물 수당을 준다는 발상이 파격적이다.
“매년 복지제도를 점검해보니 해마다 독신 직원들이 늘어나고 있지만 아쉬운 점이 많았다. 한 명의 직원도 빠짐없이 다 같이 복지를 누리면 좋겠다는 생각에 지난해 6월부터 새로운 제도로 도입하게 됐다.”
왜 이런 제도를 도입했나.
“나도 자식을 키우는 워킹 맘이다.(우 대표는 3남 1녀의 4자녀를 둔 다둥이 엄마다.) 지금까지 각종 복지 제도는 부모나 아이 중심으로만 맞춰져 있었다. 나 역시 수혜자였지만 여기서 벗어나 그 외의 구성원들에게도 혜택을 주기 위한 것이다. 독신주의를 고무하려는 게 아니라 균등한 복지 실현의 일환으로 봐달라.”
사내에서의 반응은 어땠나.
“사람 중심의 회사를 표방하다 보니 다양한 사람들이 모여있었다. 독신이나 반려동물과의 유대감에 대해 공감을 표하는 직원들이 많다 보니 자연스레 서로 소외되지 않고 재미있게 일하자는 뜻으로 받아들이더라. 영국 본사에서도 재미있는 발상의 대표 사례로 소개되기까지 했다. 기업이 추구하는 가치를 로컬 특유의 스토리로 잘 풀어냈다는 평가까지 받았다.”
앞으로 어떻게 운영해나갈 계획인가.
“모든 직원이 행복한 혜택을 누릴 수 있도록 성 소수자들에게까지 대상을 확대할 방침이다. 이 모두 ‘러쉬’라는 기업의 핵심가치인 인권·동물·환경이 어우러진 사회의 ‘선순환’을 실현하기 위한 노력이다.”

학력·경력 안 보고 성실한 사람 뽑아

신입 사원 채용 방식도 눈길을 끈다. 기업문화가 독특하다.
(이 회사에선 공채직원 선발 때 부서 막내 직원들이 면접을 본다. 채용 서류에 학력·경력은 기재하지 않고 100초짜리 자기소개 영상만 받았다. ‘퀴어문화축제’ 현장에서 ‘핑크 이력서’를 받아 성 소수자에게도 취업의 문호를 개방했다.)

“우리 회사의 모토인 ‘이상(異常)해지자’를 이상하게 보는 사람이 정말 이상한 사람이다. 평범함을 넘어서 도발적이고 다른 생각을 가진 사람도 포용하자는 뜻이다. 앞으로는 사람이 답이다. 누가 시켜서 억지로 하는 게 아니라 스스로 일할 수 있는 분위기가 우선이지 않을까. 그런 뜻에서 우리는 직원을 ‘해피 피플’이라 부른다. 행복한 사람이 행복한 제품을 만들기 마련이다.”

말단 직원들이 자기 맘대로 뽑은 신입 사원이라면 실력 검증이 쉽지 않았을 텐데.
“지원자들의 긴장감을 풀어주기 위해 면접 전에 가장 먼저 웃음 치료를 받게 했다. 면접도 의자 1개가 모자란 회의실에 모아놓고 나머지 의자를 누가 밖에서 들고 오는가를 지켜보는 등의 다양한 방식으로 인성을 평가했다. 그랬더니 나중에 현장에서의 업무 성과가 그런 평가와 맞아 떨어지더라. 우리 신입 직원들의 인사 서류는 주민등록 등본 외엔 없다. 화려한 학력·경력보다 일할 의지와 성실함이 우선이기 때문이다.”

4자녀 둔 워킹맘, 16년째 CEO 맡아

뜻은 좋지만 이런 식의 복지와 기업문화가 과연 우리 경영 여건에 맞을까.
“이 모든 것을 기존 이론과 질서를 새롭게 해석하는 시도라 말하고 싶다. 사람 중심의 복지와 기업문화는 실제로 판매 수익의 일부를 탈북자·위안부 할머니·돌고래 보호 기금으로 기부하는 윤리 경영으로 이어지고 있다. ‘매일 조금씩 될 때까지’라는 생각으로 사람이 중심이 되어 만들어낸 경험들을 이뤄내다 보니 발전과 변화가 서서히 자리 잡아갔다.”
러쉬코리아 대표를 어떻게 맡게 됐나.
“대학(동덕여대 건강관리학과) 졸업 후 홀로 웨딩용품 업체를 차렸다가 경험 부족으로 2년 만에 망했다. 이후 친구와 동업으로 청소용역회사를 차렸다. 산타클로스처럼 밤에 사무실에 찾아와 깨끗하게 정리·청소해준다는 뜻에서 ‘산타클린’이란 상호를 내걸었다. 하지만 용역 인력 수급에 실패해 밤새 직접 청소만 실컷 하다가 결국 다시 문을 닫았다. 러쉬가 한국에 지사를 개설한다는 소식을 접하고 그동안의 활동을 담은 서류를 영국 본사로 무작정 보냈다. 그 후 11개월 동안 계속 문을 두드리며 기다린 끝에 대표이사로 낙점됐다. 내 경력을 면밀히 심사해보더니 제품 제조에서 세일즈까지 맡을 수 있는 경영 능력이 있음을 결국 인정해 선임했다는 이야기를 나중에 들었다.”

이 회사는 지난해 매출이 전년보다 32% 늘어난 658억원으로 52억원의 순익을 냈다. 우 대표는 이런 성과를 바탕으로 2002년 이후 16년째 CEO를 맡고 있다. 이 회사는 양성 평등에도 앞장선다. 본사 정 직원 134명 중의 65%가 여직원이며, 부장급 이상 간부 7명 중 5명이 여성이다. 일과 가정을 양립할 수 있는 다양한 제도를 도입해 2017년 여성가족부로부터 가족친화인증기업으로 선정됐다.

홍병기 선임기자 klaatu@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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