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지가 말한 페미니즘과 휴머니즘 그리고 영향력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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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간스포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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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수 겸 배우 수지가 유명 유튜버 양예원의 성폭력 피해 호소 청와대 국민청원에 동참한 배경을 설명했다. 일각에서 페미니즘 운운하자 직접 입을 연 것으로 보인다.

수지는 18일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 올라온 ‘합정 불법 누드 촬영’ 글에 동의를 표한 화면을 캡처해 자신의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 공개했다. 양예원이 3년 전 한 스튜디오에서 모델로 촬영하던 중 성추행을 당하고 이후 신체 노출 사진이 유포됐다며 피해를 호소하는 글이었다.

이후 일부 네티즌은 경찰이 조사 중인 사건에 대해 여성의 주장만 듣고 피해자 편을 든 것은 섣부른 행동이었다고 지적했으며 페미니스트가 아니냐고 비판하기도 했다.

수지는 이를 의식한 듯 이날 “그분이 여자여서가 아니다. 페미니즘의 문제가 아니다. 사람 대 사람으로 ‘끼어들었다’. 휴머니즘에 대한 나의 섣부른 끼어듦이었다”고 밝혔다.

그는 “기사에 달린 댓글들이 충격적이었다”며 “사건의 본질을 흐리는 듯한 댓글들을 보고 마음이 좋지 않았다”고 했다. 그러나 할 수 있는 것은 수사가 강하게 이루어졌으면 좋겠다는 청원에 동의하고, 이 사건을 알 수 있게 퍼트려달라는 일뿐이었다며 SNS에 글을 올린 이유를 설명했다.

수지는 또 섣부른 판단이었다는 일부 지적에 대해서도 “맞다. 영향력을 알면서 어떠한 결과도 나오지 않은 사건에 마땅히 한쪽으로 치우쳐질 수 있는 행동이었다”고 인정하면서도 “더 많은 사람의 관심을 통해 좀 더 정확한 해결 방안이 나왔으면 하는 마음에서, 저렇게 지나가게는 두고 싶지 않았다”고 밝혔다.

수지의 영향력은 실제로 발휘됐다. 수지가 공개적으로 해당 청원에 동참하기 전, 청원에 동의한 이는 1만여 명이었다. 수지가 참여한 이후 동의자가 급증해 18일 오후 8시 현재 15만명을 넘어섰다.

청와대는 30일 동안 20만명 이상이 동의한 청원에 대해서는 공식 답변을 내놓도록 규정하고 있다. 해당 청원 마감일은 6월 16일이다.

서울 마포경찰서는 고소인인 유튜버 양예원과 동료 이소윤을 조사하고 있으며 19일쯤 피고소인 조사에 착수할 예정이다.

다음은 수지가 SNS에 올린 글 전문.

5월 17일 새벽 4시 즈음 어쩌다 인스타그램 둘러보기에 올라온 글을 보게 됐다.

어떤 배우의 꿈을 가지고 있던 ‘여자 사람’이 3년 전 일자리를 찾다가 원치 않는 촬영을 하게 됐고 성추행을 당했고, 나중에는 그 사진들이 음란사이트에 유출되어 죽고 싶었다고.

정확히 어떤 촬영인지 완벽하게 설명을 해주지 않았다고 했고, 뭣도 모른 채 무턱대고 계약서에 사인을 해버렸는데, 막상 촬영장을 가보니 자신이 생각한 정도의 수위가 아니었고, 말이 달랐다는,
촬영장 사람들의 험악한 분위기에, 공포감에 싫다는 말도, 도망도 치지 못했다는.

그 디테일한 글을 읽는 게 너무 힘든 동시에 이 충격적인 사건이 이 용기 있는 고백이 기사 한 줄 나지 않았다는 게 너무 안타까웠다.(그 새벽 당시에는)

만약 이 글이 사실이라면 더 많은 사람들이 알아야할 것 같았고 수사를 했으면 좋겠고 앞으로 이런 피해가 생기지 않았으면 바랐다.
하지만 검색을 해도 이 사건은 어디에도 나오지 않았고 사실인지조차 확인 할 수 없었다.
뭐지 싶었다.
인스타그램에 글이 한 두개만 올라와 있었다.

새벽에 친구한테 이런 사건이 있는데 사람들이 모르는 것 같다. 어떻게 해야할지 모르겠다고 문자를 보내놓은 뒤 일단 잠에 들었다.

일어나 찾아보니 정말 다행히도 인터넷에는 이 사건들의 뉴스가 메인에 올라와있었다. 실시간 검색에도.

이제 수사를 시작했다고 하니 다행이다 생각하며 어떻게든 이 사건이 잘 마무리가 되길 바랐다.

다른 일들을 하며 틈틈이 기사를 찾아봤는데 그 기사에 달린 댓글들이 충격적이었다.

물론 아직 수사중이다. 맞다. 아무것도 나온게 없다.
어디까지나 일방적인 주장일 뿐이고 아직 누구의 잘못을 논하기엔 양측의 입장을 뒷받침할 증거가 아무것도 안나왔으며 어떤 부분이 부풀려졌고 어떤 부분이 삭제되었고 누구의 말이 사실이고 어디까지가 진실인지 알 수가 없다.
내가 선뜻 새벽에 어떠한 결정을 내리지 못한 것도 이 때문이었다.
하지만 사건의 본질을 흐리는 듯한 댓글들을 보고 마음이 좋지 않았다.

내가 할 수 있는게 뭐가 있을까.
아직 수사가 끝나지도 않은 이 사건에 내가 도움을 줄 수 있는건 아무것도 없었다.

하지만 그런 사진들이 유출되어버린 그 여자사람에게만큼은 그 용기있는 고백에라도 힘을 보태주고 싶었다.
몰카, 불법 사진유출에 대한 수사가 좀 더 강하게 이루어졌으면 좋겠다는 청원이 있다는 댓글을 보고 사이트에 가서 동의를 했다.

이 사건을 많이들 알 수 있게 널리 퍼트려달라는, 그것만큼은 작게나마 할 수 있었다.

섣불리 특정 청원에 끼어든 것 아니냐는 지적을 해주셨다.
맞다. 영향력을 알면서 어떠한 결과도 나오지 않은 사건에 마땅히 한쪽으로 치우쳐질 수 있는 행동이었다.

하지만 어찌됐든 둘 중 한 쪽은 이 일이 더 확산되어 제대로 된 결론을 내리길 바란다고 생각했다.
둘 중 어느쪽이든 피해자는 있을 거니까.

더 많은 사람들의 관심을 통해 좀 더 정확한 해결방안이 나왔으면 하는 마음에서, 저렇게 지나가게는 두고 싶지 않았다.

그 분이 여자여서가 아니다.
페미니즘의 문제가 아니다.
사람 대 사람으로 ‘끼어들었다’.
휴머니즘에 대한 나의 섣부른 끼어듦이었다.

이가영 기자 lee.gayoung1@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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