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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北, 제네바 합의 서명하자마자 핵 능력 개발 착수했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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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0면

올리 하이노넨 전 국제원자력기구(IAEA) 사무차장이 지난 4일 워싱턴 민주주의수호재단 사무실에서 중앙일보와 인터뷰하고 있다.정효식 특파원

올리 하이노넨 전 국제원자력기구(IAEA) 사무차장이 지난 4일 워싱턴 민주주의수호재단 사무실에서 중앙일보와 인터뷰하고 있다.정효식 특파원

“북한은 1994년 제네바 기본합의에 서명하자마자 두 가지 중대 위반을 했다. 우라늄 농축을 시작했고 영변 핵시설에서 플루토늄을 반출해 별도 시설에서 가공한 뒤 현재와 같은 핵 능력을 개발했다.”

제네바합의부터 6자 회담까지 사찰 총책임자였던 올리 하이노넨(72) 전 국제원자력기구(IAEA) 사무차장은 중앙일보와 인터뷰에서 이 같이 말했다.

북핵 사찰 책임자 올리 하이노넨 전 IAEA 차장 #"합의 자체 심각한 결함, 북 영변 외 접근 불허, #비밀 시설서 우라늄 농축, 플루토늄 개발 진행, #북핵 완전한 신고, 강압적 사찰 합의 포함돼야"

하이노넨 전 차장은 “제네바 합의는 사찰ㆍ검증면에선 형편없는 합의였다”며 “북한이 허용하는 곳, 영변 핵시설 이외엔 아무 곳도 접근할 수 없었고 어디에 무슨 시설을 운영하는지 신고 의무도 없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북·미정상회담에선 북한의 모든 핵 활동에 대한 자진신고(declaration)와 언제, 어디든 접근할 수 있는 ‘강압 사찰(intrusive inspection)’을 보장받는게 가장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그는 “신고와 강압 사찰이 보장된다면 북한이 속임수를 쓴다 해도 검증이 가능하다”면서 “다만 북한의 비핵화는 역대 최대 규모여서 수년의 시간과 수억달러 이상의 비용이 들 것”이라고 전망했다.

핀란드출신 방사화학 전문가인 하이노넨 박사는 1983년부터 27년간 IAEA에서 안전조치와 사찰을 담당했다. 이란 핵사찰에도 참여했고 파키스탄 압둘 카디르(AQ) 칸 박사의 국제 핵확산 네트워크를 규명하는데도 공헌했다. 인터뷰는 지난 4일 하이노넨 박사가 특별고문으로 있는 워싱턴 민주주의수호재단(FDD) 사무실에서 이뤄졌다. 아래는 주요 문답.

2007년 6월 올리 하이노넨 국제원자력기구(IAEA) 사무차장이 6자 회담 합의에 따라 사찰단 복귀 협상을 위해 평양을 방문하고 있다.[AP=연합뉴스]

2007년 6월 올리 하이노넨 국제원자력기구(IAEA) 사무차장이 6자 회담 합의에 따라 사찰단 복귀 협상을 위해 평양을 방문하고 있다.[AP=연합뉴스]

북핵 최대 미스터리가 2003년 제네바 합의를 붕괴시킨 비밀 우라늄 농축 핵개발인데 진실이 뭔가.

“IAEA가 북한의 우라늄 농축 프로그램을 문제 제기했던 건 미국보다 10년 앞선 1992년 5월이었다. 한스 블릭스 당시 사무총장이 북한 최학근 원자력공업상이 빈에 왔을 때 “80년대 후반부터 진공펌프같은 실험장비를 구매했는데 우라늄 농축을 검토중이냐”고 물었다. 최 공업상은 “검토를 해봤는 데 우리 기술력을 뛰어넘어 관련 시설은 없다”고 부인했다. 그리고 나서 북한 영변 핵시설에서 생산한 플루토늄 미신고때문에 1차 핵위기가 왔고, 1994년 제네바 기본합의가 체결됐다. 그런데 기본합의에 큰 결함이 있었다. 합의 이행이 끝난 최종 단계에서 검증이 가능하고 시작 단계에선 동결된 특정 시설 모니터링만 할 수 있는 것이다. 북핵 개발 역사와 관련된 시설 접근권도 보장되지 않았다. 그래서 10년, 20년뒤가 될지 모를 '검증 계획서'와 함께 '핵 활동관련 정보보존 청구서'를 작성했는데 우라늄 농축관련 단락을 포함시켰다. 재미있는 사실은 94년이 파키스탄의 칸 박사와 협력을 시작한 첫 해였다는 점이다.”    

당시로선 북한이 폐연료봉 재처리를 통한 플로토늄 핵개발을 추진했던 게 아니냐.

“언제나 정보는 완벽하지 못한 데다 늦다. 정보기관들이 AQ 칸의 국제네트워크의 전모를 밝힌 건 2002년이었다. 클린턴 행정부는 기본합의를 끌고 나가고 싶었기 때문에 이 문제를 크게 제기할 생각이 없었다. 부시 행정부가 들어서면서 심각하게 보기 시작했고 칸 네트워크에 이란, 리비아와 함께 북한도 들어 있다는 걸 알게 돼 같은해 10월 제임스 켈리 차관보가 북한을 방문해 공식 제기한 거다. 배신으로부터 배운 역사의 지혜인 셈이다.”

올리 하이노넨 당시 국제원자력기구(IAEA) 사무차장이 2007년 6월 대북 사찰단 복귀 협상을 마친 후 베이징 공항에서 취재진에 둘려쌓여 있는 모습.[AP=연합뉴스]

올리 하이노넨 당시 국제원자력기구(IAEA) 사무차장이 2007년 6월 대북 사찰단 복귀 협상을 마친 후 베이징 공항에서 취재진에 둘려쌓여 있는 모습.[AP=연합뉴스]

IAEA는 94년부터 폐연료봉 저장소 등 동결 시설 모니터링을 위해 상주했는데 우라늄 농축을 왜 감지하지 못했나.

“말했듯이 IAEA 사찰관은 북한이 허용하지 않은, 영변이외 어떤 핵시설도 갈 수 없었다. 지금까지도 별도 농축 시설이 어디 있는지 공개되지 않았을 뿐 아니라 아무도 모른다. 다만, 나는 유럽의 장비 판매상들을 접촉해 97~98년 북한이 준산업적 규모로 원심분리기 5000대 이상을 만들 수 있는 마레이징 강철과 고강도 알루미늄을 대량 구매한 사실을 파악했다. 당시 칸 박사가 북한을 오가며 파키스탄 P-2형 원심분리기 설계 및 농축 기술을 이전한 거였다.”  

북한은 2010년 11월 미국 핵전문가 지그프리드 해커 박사를 초청해 육안으로 농축시설을 공개할 때까지 18년을 숨긴건가.

“그렇다. 90년대까진 기술적 난관을 극복하는 비밀 실험 단계였고, AQ 칸의 도움으로 극복한 뒤 2000년대 중반부터 본격적으로 고농축 우라늄 생산에 들어갔다. 우리가 6자회담 합의로 2007년 다시 복귀해 북한에 우라늄 농축에 대해 물었을 때 “아무것도 얘기하고 싶지 않다”며 답변을 거부했다.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결의안 위반이지만 핵확산금지조약(NPT)를 탈퇴한 상태였으니 설명할 의무가 없다는 거였다. 해커 박사는 2009년 우리가 다시 추방당한 후 북한이 영변 단지내에 새로 신축한 농축시설을 참관한 거다.”  

올리 하이노넨 전 국제원자력기구(IAEA) 사무차장이 지난 4일 워싱턴 민주주의수호재단 사무실에서 중앙일보와 인터뷰하고 있다.[정효식 특파원]

올리 하이노넨 전 국제원자력기구(IAEA) 사무차장이 지난 4일 워싱턴 민주주의수호재단 사무실에서 중앙일보와 인터뷰하고 있다.[정효식 특파원]

당신은 현장사찰 최고 책임자였는데 어떻게 이를 막을 수 없었나.

“우리는 동결된 영변의 플루토늄 재처리시설 이외 접근권이 없었다. 오직 북한이 허용한 시설만 접근이 가능했다. 이게 제네바 기본합의의 가장 큰 실책이었다. 합의는 형편없이 체결됐다. 기본합의를 서명하자마자 북한은 우라늄 농축은 물론 플루토늄을 탄두화하는 가공기술(Plutonium Metallurgy)을 발전시켰다. 이를 외부 별도 시설이나 영변 단지내 비밀 시설에서 진행했을 텐데 이를 막을 길이 없었다. 6자 회담때도 마찬가지였다. 2007년 우리가 복귀했을 때도 영변 이외에 다른 곳을 갈 수 없었다."

북한은 제네바 합의로 동결된 플루토늄 핵탄두 개발도 계속했다는 건가. 

"합의의 시작이 IAEA가 신고한 것보다 훨씬 많은 양의 플루토늄을 생산한 걸 적발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북한은 미신고 플루토늄을 끝까지 인정하지 않고 특별사찰도 거부했고, 결국 아무 해명도 못한 채 2003년 1월 기본합의는 붕괴됐다. 북한은 그 사이 93년부터 2003년까지 플루토늄을 동결된 시설 밖으로 가져가 개발을 계속했다. 그게 합의 붕괴 3년만에 그렇게 빨리 2006년 10월 첫 핵실험을 할 수 있었던 이유다. 그들이 기본합의 시설 밖에서 합의를 위반해 계속 연구를 진행했기 때문이다.”

북한의 2003년 1월 제네바합의 공식 탈퇴이후 동결됐던 영변 핵시설에서 철거한 철제 봉인들.[IAEA]

북한의 2003년 1월 제네바합의 공식 탈퇴이후 동결됐던 영변 핵시설에서 철거한 철제 봉인들.[IAEA]

플루토늄과 고농축 우라늄 핵무기의 비율은 어느 정도로 보나.

“정확한 정보는 북한만이 알고 있다. 다만 워싱턴소재 과학국제안보연구소(ISIS)는 2011년까지 북한의 무기급 우라늄과 플루토늄 생산량을 근거로 각각 최대 11개, 12개 등 23기의 핵무기를 만들 수 있으며, 2016년에는 두 종류를 합쳐서 48개 핵무기를 만들 수 있다고 추산했다.”

결국 트럼프 대통령은 이런 북한의 속임수와 위반을 막으려면 무슨 약속을 받아야 하나.

“먼저 무엇이 비핵화인지 합의부터 해야 한다. '한반도에서 어떤 우라늄 농축도 플로토늄 생산을 위한 재처리도 하지 않는다'와 '핵탄두는 물론 운반할 수 있는 미사일과 다른 운반수단을 모두 없앤다'에 합의하고 그 다음은 어떻게 폐기할지 합의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선 북한이 어떤 핵 시설과 물질을 보유하고 있는지 완전한 신고가 필요하다. 북한 핵 프로그램의 전모를 알 수 있는 정보를 제공받는게 정상회담에서 합의해야할 가장 중요한 일이라고 생각한다.이후 사찰과 검증은 정상회담뿐 아니라 후속회담에서 구체적인 사항으로 다뤄야할 문제다.”

북한이 핵무기 및 시설ㆍ물질 목록을 신고해도 속일 수 있지 않나.

“물론 거짓말을 할 수 있다. 하지만 일단 북한이 자진 신고에서 큰 거짓말을 하면 매우 빨리 들통이 날 것이고 작은 거짓말도 시간이 지나면 드러나게 돼 있다. 북한도 우리가 어떤 정보를 갖고 있는지 모른다. 북한이 가진 게 무엇인지 전모를 파악해야 무엇을 금지할지 구체적으로 막을 수 있기 때문에 첫 단추인 신고가 큰 변화를 만들 거다. 그 다음으로는 북한내 어떤 시설이든, 언제든 접근권이 보장돼야 한다. 여기에는 장소뿐 아니라 관련된 모든 정보와 과학자 및 엔지니어에 대한 접근권이 포함된다. 콘돌리자 라이스 전 국무장관이 ‘불시 사찰’을 얘기했는데, 짧은 통보 후에 어느 곳이든 사찰할 수 있는 ‘강압적 사찰’이면 충분하다. 예전의 북한은 이마저 군사시설 등 이유를 대며 모두 거부했다.”

1994년 3월 15일 당시 국제원자력기구(IAEA)의 북한 핵 사찰팀장이었던 올리 하이노넨 사찰과장이 사찰을 마치고 베이징에 도착해 기자들의 질문공세를 받고 있다. [베이징 AFP=연합뉴스]

1994년 3월 15일 당시 국제원자력기구(IAEA)의 북한 핵 사찰팀장이었던 올리 하이노넨 사찰과장이 사찰을 마치고 베이징에 도착해 기자들의 질문공세를 받고 있다. [베이징 AFP=연합뉴스]

풍계리 핵실험장 이외에 다른 실험장이 있을 수 있다고 보나.

“재미있는 질문이다. 북한이 만약 풍계리 폐쇄가 보다 의미있는 조치라고 하려면 유일한 핵실험장이라고 이야기해야 한다. 북한이 풍계리 실험장 폐쇄에 외국 기자들의 참관을 허용한다고 했는 데 잠시 문을 닫는게 아니라 불능화, 폐기로 다시 사용할 수 없도록 만들어야 한다. 지하 비밀 우리늄 농축 시설이나 핵무기고 등 우리가 모르는 과거 및 현재 핵 활동 시설에 대한 전모를 파악할 필요가 있다. 2008년 6월에도 기자들을 불러 놓고 영변 단지 냉각탑을 폭파했는 데 그건 우스꽝스런 순간이었다. 사실 북한은 강물을 연결해 냉각하는 시설을 이미 갖고 있어 냉각탑이 필요없다는 걸 이미 알면서 쇼를 한거다. 북한이 시리아에 건설을 지원한 원자로에도 냉각탑은 없었다.”  

대형 시설 폐기를 검증하는 건 쉬워도 소형 플루토늄 피트(핵탄두 코어용 금속체)까지 검증하는 건 불가능하다는 지적도 있다.

“나는 그런 주장은 현대 검증 기술을 제대로 이해못했다고 생각한다. 우리는 엄청난 분석 수단을 갖고 있다. 남아프리카공화국이 6개의 완성 핵무기와 1개의 미완성 핵무기를 자진 폐기한 후 93년 검증을 요청했을 때 IAEA는 과거 20년간 우라늄 생산 기록과 핵무기 생산과 발전 원료 등 사용처, 누가, 어떤 장비로, 어떤 실험을 했고, 어떤 나라가 지원했는지 모두 검증했다. 남아공이 신고한 기록과 일치하지 않으면 차이를 해명하라고 요구했다. 이같은 일관성 검증이 북한에서 이뤄질 것과 똑같은 방식이다. 북한과 남아공의 차이는 북한의 핵개발 규모가 훨씬 크다는 점이다. 남아공의 경우 자진 폐기후 검증에만 2년 가량 걸렸다. 북한은 수년이 걸리고 수억달러 이상의 비용이 들 수 있다.”

올리 하이노넨 전 국제원자력기구(IAEA) 사무차장이 지난 4일 워싱턴 민주주의수호재단 사무실에서 중앙일보와 인터뷰하고 있다.정효식 특파원

올리 하이노넨 전 국제원자력기구(IAEA) 사무차장이 지난 4일 워싱턴 민주주의수호재단 사무실에서 중앙일보와 인터뷰하고 있다.정효식 특파원

북한 비핵화를 위해 유엔산하 특별기구를 만들어야 한다고 주장했는데.

“IAEA가 핵과 관련 있긴 해도 핵무기는 IAEA의 전문분야가 아니다. 그래서 IAEA의 핵 활동 사찰 및 검증 파트와 함께 핵ㆍ미사일 폐기를 다룰 무기 전문가들로 빈이나 뉴욕 유엔본부 산하에 특별기구를 만들 필요가 있다. 핵 물질 반출도 간단한 문제가 아니다. 옛소련 해체이후 카자흐스탄과 우크라이나, 벨라루시에서 무기급 우라늄을 반출하는데 수년이 걸렸다. 플루토늄은 다루기가 훨씬 어려우며, 미국을 포함한 핵강국들만 할 수가 있다. 하지만 북한 비핵화 과정에서 핵무기 설계도와 같은 민감한 정보나 핵물질이 이웃 한국이나 일본같은 비핵국가들에 확산되는 걸 막기 위해서라도 개별 국가보다는 유엔 특별기구에서 담당하는 것이 낫다.”

워싱턴=정효식 특파원 jjpol@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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