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단 패혈증' 강남 피부과서 세균 확인…"프로포폴 준비 중 오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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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단 패혈증 감염이 발생한 서울 강남구의 한 피부과 의원 앞에 과학수사 차량이 나와 있다. [연합뉴스]

집단 패혈증 감염이 발생한 서울 강남구의 한 피부과 의원 앞에 과학수사 차량이 나와 있다. [연합뉴스]

환자 20명이 집단 패혈증 증세를 보인 서울 강남구 피부과 의원의 프로포폴 주사제가 오염된 사실이 확인됐다. 환자 혈액과 프로포폴, 주사기 바늘에서 '판토에아 아글로메란스균'이 검출됐다. 프로포폴의 보관, 투약 준비 과정서 균이 들어갔을 가능성이 커졌다. 질병관리본부(이하 질본)는 16일 이러한 내용의 역학조사 중간 결과를 발표했다.

질본에 따르면 지난 7일 시술 후 이상 증세를 보인 환자 20명 중 5명의 혈액과 지난 4일 주사기에 나눠 놓은 프로포폴, 실제로 프로포폴을 투여한 주삿바늘에서 동일한 유전자형의 판토에아 아글로메란스균이 나왔다. 이 균은 식물ㆍ흙 등에서 발견되는 세균으로 독성이 약한 편이다. 이 균에 감염되면 세균성 관절염 등이 주로 발생한다. 하지만 이번처럼 혈액에 직접 균이 들어가면 패혈증을 일으킬 수 있다. 국내에선 드물지만 환자 소독제 등이 오염된 바 있다.

엄중식 가천대 길병원 감염내과 교수는 "균 자체의 독성이 약한 데다 환자들이 비교적 건강한 편이라서 치명적인 결과를 피했다. 하지만 면역력이 약한 신생아나 노인이 감염됐다면 상태가 더 나빴을 수 있다"고 말했다.

환자에서 검출된 판토에아 아글로메란스균. [사진 질병관리본부]

환자에서 검출된 판토에아 아글로메란스균. [사진 질병관리본부]

서울시와 강남구보건소는 혹시 모를 추가 감염 여부를 확인하기 위해 1~7일 해당 피부과 의원을 방문한 160명의 상태를 확인했다. 하지만 패혈증 의심 환자로 추가 분류된 사람은 아직 나오지 않았다.

질본은 정확한 원인을 파악하려면 시간이 좀 더 걸릴 것으로 내다봤다. 프로포폴 제조와 보관, 사용 과정 중 어디에서 문제가 있었는지 더 분석해야 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피부과 의원에서 주사제를 보관하고 나누다가 세균에 오염됐을 가능성이 매우 큰 것으로 판단한다.

이재갑 강남성심병원 감염내과 교수는 "주사제 준비 과정에서 오염이 됐거나 실수가 있었을 것이다. 신발을 신고 오가는 상황에서 흙으로 균이 들어왔을 수 있다"면서 "프로포폴을 상온에 오랫동안 보관했기 때문에 균이 잘 자랐을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다.

한편 환자 20명 중 14명은 상태가 호전돼 퇴원했다. 6명은 아직 병원에 입원 중이며, 이 중 한 명은 중환자실에 머무르고 있다.
정종훈 기자 sakehoo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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