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 삼성화재배 월드바둑마스터스] 믿는 구석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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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11면

<결승 1국> ●탕웨이싱 9단 ○구쯔하오 9단

8보(86~103)=좌하귀에서 시작해 끝을 모르고 이어지던, 길고 복잡했던 전쟁은 잠시 휴전을 맞이했다. 선수(先手)를 잡은 백은 우하귀로 손을 돌렸다. 86, 88로 우하를 다진 다음, 90으로 곤마인 하변 흑을 슬쩍 위협해본다. 아직 살아있는 돌이 아닌데 어떻게 살릴 것인지, 상대의 반응을 묻는 수다.

기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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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탕웨이싱 9단의 반응이 의외다. 분명 하변 흑이 위태로워 보이는데도, 탕웨이싱 9단은 하변을 쓱 한 번 쳐다보더니 심드렁하게 반상의 다른 곳을 훑는다. 그의 눈길이 머문 곳은 엉뚱하게도 좌상. 91은 동문서답과도 같은 수다. 적의 손길이 머리 위에 드리웠는데도, 하변 흑이 사는 데는 아무런 지장이 없다는 뜻인 걸까.

구쯔하오 9단은 작정한 듯 92로 칼을 빼 들었다. 상대의 집 모양을 없애는 치명적인 수다. 이제는 흑도 반응하지 않을 수가 없다. 97, 99로 부랴부랴 응급조치에 나섰다. 그렇지만, 하변 흑이 완전히 살아있는 모양은 아니다. 아마추어가 보기엔 흑의 수순이 위태롭기 짝이 없다.

참고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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흑이 이토록 배짱을 부리는 이유는 무엇일까. 만약 구쯔하오 9단이 '참고도'처럼 백1로 잡으러 오면, 흑2, 4로 '패'를 만드는 방법이 있다. 교묘한 탈출 수단이다. 흑은 자체 팻감이 많아서 쉽게 죽지 않는다. 여기까지 수읽기가 미친 구쯔하오 9단도 바로 결행하지 못한 채 다른 곳으로 손을 돌렸다.

정아람 기자 aa@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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