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세계는 아직도 테러 강박증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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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8면

9.11 테러가 11일로 2주기를 맞는다. 9.11 테러는 인류가 새로운 세기에 대한 희망을 갖고 출발한 21세기 벽두에 발생한 대형 테러였다. 특히 냉전을 승리로 종식시킨 후 자유와 민주.시장경제 체제를 앞세운 미국이 '팍스 아메리카나'를 외친 상황에서 그 심장부에 테러가 가해졌다는 측면에서 엄청난 충격과 파장을 몰고 왔다.

9.11 테러 이후 세계는 대형 변화를 겪고 있다. 이러한 변화가 현재 세계를 어디로 끌고 갈 것인지는 아직 확실치 않다. 테러에 대한 중압감에 눌려 인류가 지금까지 쌓아온 문화와 문명의 축적을 무시하고 안전을 위해 서로의 성(城) 쌓기에 몰두할 경우 테러에 대한 표면적 승리와 달리 내면적으로는 패배자가 될 수도 있다.

9.11 테러 이후 세계가 겪고 있는 가장 큰 문제는 전 세계로 확대된 '테러 강박증'이다. 어느 곳도 테러에서 자유롭지 못하다는 강박증과 이에 대한 대응은 예기치 않은 희생을 초래했다.

이러한 희생물들은 눈에 보이는 것만이 아니라 지난 수세기 동안 인류가 각고의 노력과 희생 끝에 이룩해 왔던 인권과 자유, 종교와 인종에 대한 관용.신뢰 등도 포함돼 있다. 여기에다 대테러 전쟁의 장기화와 이라크 전쟁을 놓고 미국이 일방주의적으로 흐르면서 미국과 세계는 그 누구도 원하지 않은 동맹국 간의 분열과 갈등, 유엔의 무력화 등을 목도하고 있다.

이 때문에 이러한 분위기를 반전시키지 못한다면 세계는 테러 전쟁의 패배자가 될 수밖에 없다. 눈에 보이는 상대에 대한 '일시적이고도 손쉬운 물리적 승리'대신 '눈에 보이지 않는 인류의 보편적 가치'를 지키지 못하고 파괴하는 실패를 저지를 수도 있는 것이다.

이런 점에서 미국이 9.11 테러 2주년을 앞두고 유엔에 대해 협조의 손을 내미는 현상은 비록 미흡한 부분이 많지만 바람직스러운 변화며 국제사회가 다시 화합으로 갈 수 있는 기회다. 무슨 목적의 테러든 이는 인류 공동의 적이다. 테러는 인류가 쌓아온 평화의 가치에 대한 도발이기 때문이다. 이는 반드시 실패할 수밖에 없다는 사실도 다시 한번 상기시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