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폭발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2면

『오, 아메리카….』
지난 봄 뉴욕 방문길에 43번가 지하철에서 혼자 이렇게 중얼거린 일이 있었다. 환호성이 아니다. 비닐거적을 펴고 누워있는 거지들이 수도 없었다. 뉴욕시에는 이런 사람들이 6만내지 8만명이나 있다고 한다.
수도 워싱턴에서도 진눈깨비가 펄펄 내리는 날인데 큰 길가 맨홀 위에서 천막을 치고 밤을 보내는 무리들이 적지 않았다. 홈리스, 집없는 사람들이었다. 그 나라의 주택사정이 어떻다는 얘기가 아니다.
이 거지들은 바로 미국의 단면을 보여주는 한 상징적 존재같았다. 의욕상실, 무기력, 마약중독, 알콜중독, 폭력, 가정파탄은 지금 그 나라의 가장 큰 사회문제로 대두되고 있다. 마약은 중·고등학교에 까지 번지고 있다는 쇼킹한 얘기도 있었다.
미국에선 지난86년 우주탐험 챌린저호가 추락할때 이미 아메리카의 몰락과 쇠진를 예언하는 사람들이 있었다. 최근 「폴·케네디」교수(예일대)의 『대국의 흥망』이라는 저서가 그 사회에서 각광을 받는 것은 우연이 아니다. 뉴욕 타임스지의 북 리뷰 색인을 보면 미국의 쇠퇴를 다룬 저서들이 86년 이후 무려 40여권이나 나왔다.
이들의 원인분석은 대체로 초년대 월남에서의 좌절, 인플레의 확산, 80년대의 무역적자와 재정적자등이 지적되고 있었다. 지금은 그 규모가 2천억달러(재정적자), 1천6백억달러(무역적자)에 달한다. 미국의 위대성과 부강과 저력을 믿고 있던 국민들에겐 더 없는 환멸과 비애를 주고있다.
최근 미국의 학술기관, 민간기업, 노동조합이 설립한 미국의 「경쟁력평가회」(회장「존· 양」휼렛-패커드사장)는 보다 놀라운 보고서를 내놓았다. 미국의 평균적인 노동자 생활수준은 과거 15년 사이에 독일의 절반, 일본의 7분의1, 선진7개국의 4분의1로 떨어졌다는 것이다.
엊그제 네바다주의 라스베이가스계곡에 있는 한 화학제조공장에서 가스누출에 의한 대폭발사고가 있었다. 다행히 인명손상은 크지않았지만 한 순간의 사고로 7천3백만달러의 피해가 있었다고 한다. 한 용접기술자의 실수였다.
불가항력의 사고라기보다는 미국의 나사가 풀린데서 가스가 새어나온 것은 아닐까. 86년 챌린저호가 폭발할 때도 무책임과 안일과 부주의가 원인으로 지적됐었다.
『오, 아메리카.』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