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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아공, 놀이공원에 숨겼다…북핵 악마의 디테일은 HEU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악마의 디테일'이 숨어있는 고농축우라늄(HEU)…북ㆍ미 수싸움 예고 

북한의 WMD 시설 제거 훈련인 '워리어 스트라이크 7'훈련에서 미군이 갱도 소탕훈련을 실시했다. 미군 소형 로봇이 북한 미사일 탄두부로 보이는 물체를 탐색하고 있다. [사진 주한미군]

북한의 WMD 시설 제거 훈련인 '워리어 스트라이크 7'훈련에서 미군이 갱도 소탕훈련을 실시했다. 미군 소형 로봇이 북한 미사일 탄두부로 보이는 물체를 탐색하고 있다. [사진 주한미군]

미국과 북한이 북한 비핵화에 합의해도 향후 비핵화의 판을 깰 수 있는 ‘악마의 디테일’은 고농축우라늄(HEU)이라는 지적이 잇따르고 있다. 비핵화는 큰 틀에서 보면 현존 핵무기의 해체, 핵폭탄을 만드는 원료(핵물질)의 제거, 핵무기를 원거리에 떨어뜨리는 운반 수단 및 기술(장거리탄도미사일)의 제거 등이다. 이중 가장 찾아내기 어려운 게 핵폭탄의 원료인 HEU다.

익명을 요구한 정부 소식통은 3일 현존 핵무기의 해체와 관련해 “북한은 핵탄두를 옛 소련과 중국처럼 쿠데타를 우려해 중앙에서 통제한다”며 “평양 인근에 핵탄두를 보관하는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또 다른 소식통은 “탄도미사일 등 핵탄두 운반 수단은 한ㆍ미 정보당국이 상당한 정보를 갖고 있어 북한이 감추기가 쉽지 않다”고 말했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왼쪽 두번째)이 지난해 8월 전략군사령부를 시찰하면서 김락겸 전략군사령관으로부터 '괌 포위사격' 방안에 대한 보고를 받고있다. [사진 조선중앙통신=연합뉴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왼쪽 두번째)이 지난해 8월 전략군사령부를 시찰하면서 김락겸 전략군사령관으로부터 '괌 포위사격' 방안에 대한 보고를 받고있다. [사진 조선중앙통신=연합뉴스]

관건은 핵탄두의 주재료인 핵물질이다. 핵물질은 플루토늄과 HEU다. 한ㆍ미 정보당국은 북한이 HEU 758㎏과 플루토늄 54㎏을 보유하는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이는 최대 60개 핵탄두를 만들 수 있는 분량이다.<중앙일보 2017년 2월 9일자 1,3면> 그런데 플루토늄의 경우 추정치와 실제 보유량과의 오차가 클 가능성은 적다. 안진수 전 한국원자력통제기술원 책임기술원은 “플루토늄 재처리 시설은 대형이라 외부로 노출될 수밖에 없다”며 “이 시설의 가동 현황을 파악하면 생산량 근사치를 구할 수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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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면 HEU는 다르다. HEU는 원심분리기라는 알루미늄이나 마레이징강(니켈을 함유한 강철 합금) 통만 있으면 가능하다. HEU는 그 통 안에서 우라늄을 고속으로 돌려 농축시키는 원심분리기를 잇따라 연결해서 얻는다. 그래서 농축은 재처리와 달리 공간을 적게 차지한다. HEU를 찾아내는게 얼마나 어려운지를 보여주는 사례가 남아프리카공화국이다. 국제원자력기구(IAEA)가 1993년 비핵화를 선언한 남아공을 사찰했을 때 놀이공원 내 간이 건물의 작은 지하 공간에서 숨겨진 원심분리기를 발견했다. 북한 역시 원심분리기를 예상치 못했던 장소에 분산해서 숨겨뒀을 가능성이 크다. 이때문에 당국의 HEU 추정량은 정확도가 플루토늄보다 떨어진다는 지적이 많다.

제인스 제공 자료 및 기타 종합 [그래픽=김주원 기자 zoom@joongang.co.k]

제인스 제공 자료 및 기타 종합 [그래픽=김주원 기자 zoom@joongang.co.k]

북한은 2010년 11월 미국의 핵 전문가인 시그프리드 해커 박사에게 영변에서 2000개 가량의 원심분리기가 작동하고 있는 우라늄농축시설을 공개했다. 이 시설은 한ㆍ미 정보당국이 뒤늦게 파악한 곳이다. 영국의 군사정보 매체인 제인스는 2015년 북한이 영변에 또 다른 우라늄농축시설을 가동 중인 것으로 보인다고 밝혔다. 제인스가 중앙일보에 제공한 북한의 핵시설 목록에 따르면 평북 태천·박천에도 지하 우라늄농축시설이 있다. 미국의 과학국제안보연구소(ISIS)는 평북 구성시 방현비행장 인근 지하에도 우라늄농축시설이 존재할 가능성이 있다고 주장했다.

지난 2015년 북한은 영변 우라늄 농축시설을 두 배로 확장했다. 환풍구에서 나온 열기로 눈이 녹은 모습(2월, 사진 아래)이 이전(1월)보다 커진 흔적이 보인다. [사진 Jane’s Intelligence Review and ⓒCNES 2015: Distribution Airbus DS/IHS: 1639943]

지난 2015년 북한은 영변 우라늄 농축시설을 두 배로 확장했다. 환풍구에서 나온 열기로 눈이 녹은 모습(2월, 사진 아래)이 이전(1월)보다 커진 흔적이 보인다. [사진 Jane’s Intelligence Review and ⓒCNES 2015: Distribution Airbus DS/IHS: 1639943]

안 전 연구원은 “우라늄농축시설의 위치를 파악해도 정확한 생산량을 알기 힘들다”며 “생산 공정에 따라 편차가 크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남아공은 성실히 신고했는데도 문서상 HEU의 양과 IAEA가 실제로 발견한 양이 달랐다. 북한이 일부 HEU를 보험용으로 빼돌릴 가능성이 제기되는 배경이다. 이때문에 “북한의 비핵화는 가장 어려운 비핵화다. 지금까지 비핵화 사례 중 유사한 게 없다”(안준호 전 IAEA 사찰관)는 우려가 나온다.

북한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지난해 9월 핵무기연구소를 현지지도하고 있다. [사진 조선중앙통신=연합뉴스]

북한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지난해 9월 핵무기연구소를 현지지도하고 있다. [사진 조선중앙통신=연합뉴스]

신범철 아산정책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HEU를 두고 북한과 미국이 수 싸움을 벌일 수 있다”며 “결국 북한의 진정성과 미국의 정보력이 승부를 결정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일각에선 미국이 순수 핵 시설 이외 북한의 전략군사령부(핵무기 운용), 핵무기연구소(핵탄두 소형화 연구), 화학재료연구소(미사일 재진입체 연구)에 대한 사찰을 요구할 수도 있다고 본다. 이곳에서 HEU 등 핵물질 정보를 얻을 수 있어서다. 미국은 300명으로 추산되는 북한의 핵심 핵개발 인력에 대한 조사도 요구할 가능성이 있다. 정부 소식통은 “미국은 옛 소련인 우크라이나를 비핵화하면서 핵심 인력을 직접 조사했다”며 “김격식 전략사령관 등이 대상에 포함될 수 있다”고 말했다.

이철재 기자, 박용한 군사안보연구소 연구위원 seajay@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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