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스로 밝히는 결단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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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구인제를 둘러싸고 대통령이 거부권을 행사하고 이에 맞서 야당이 규탄대회를 벼르는 오늘의 정국상황이 실은 전대통령에 대한 직접조사여부를 초점으로 하고있음은 누구나 아는 일이다.
야당들이 굳이 구인제를 주장하는 것은 전대통령을 국회증언대에 꼭 세우겠다는 것이고 여당이 거부권까지 동원하며 이를 반대하는 것은 그런 일은 결코 막아야겠다는 의지의 표시다.
이처럼 문제의 열쇠는 바로 전대통령에게 있다. 그가 하기에 따라서는 강경국면으로 흐르는 정국대치상황도 손쉽게 풀릴 수 있고 정국의 전체상황이 한 단계 진전되는 계기도 나올수 있다.
또 전대통령으로서는 자신과 일 가에 대한 각종 의혹과 유언비어가 있는 것이 사실인 이 상 밝히고 해명할 1차적 책임을 느껴야 마땅하다. 더우기 자기문제가 오늘날 정국악화의 중심원인이 되고있고 앞으로도 상당기간 그럴 수밖에 없는 상황임을 생각한다면 침묵으로 사태의 악화를 방치한다는 것은 국정의 최고책임을 졌던 입장으로서의 취할 도리도 아닌 것으로 생각된다.
그런 점에서 전대통령과 정부·여당간에 전대통령이 자기문제를 스스로 푸는 방안을 마련하는 것은 올바른 선택이라고 할 수 있다. 그 동안 제기된 각종 의혹과 유언비어에 대해 사실대로 진상을 밝히고 해명함으로써 국민과 야당을 납득시킬 수 있다면 구인제로 인한 비생산적인 정쟁도 쉽게 해소될 것이다. 그리고 가령 재산문제 등에 있어 의혹을 씻기 어려운 대목이 있을 경우 자진헌납 등의 의사표시로 문제를 풀어 나갈 수도 있을 것이다.
이처럼 전대통령이 스스로 의혹해명과 재산공개를 한다면 굳이 전 국가원수를 국회증언대로 끌어내기 위한 구인제가 필요 없는 상황이 올 수도 있다.
전대통령이 당당하고 의연하게 자기의 모든 것을 남김없이 밝히고 떳떳한 처신을 다짐하는 이상 국민이나 야당도 굳이 구인제를 두자고 우기지는 않을 것이다. 오히려 전대통령이 허심탄회하게 자신을 공개하고 한 점 의혹의 여지도 남기지 않을수록 전 국가원수를 아끼고 예우해야 한다는 여론도 일어날수 있다.
그래서 전 대통령의 문제가 더 이상 정치쟁점이 되지 않을 경우 정국은 보다 미래지향적인 보람있는 문제로 한 단계 진전의 계기를 잡을 수도 있을 것이다.
사실 따지고 보면 대통령을 지낸 사람이면 퇴임후의 생활이나 돈걱정 같은 것은 하지 않아도 좋다고 본다. 지극히 청빈해 버스를 타고 다니는 전 국가원수를 국민이 볼 수 있다면 그 역시 아름다운 일일수 있고, 정 생활까지 곤궁한 전 국가원수가 있다면 국민이 성금을 보내든가, 보고만 있지는 않을 것이다.
또 전대통령이라고 해서 재산이 없으란 법도 없다. 어느 경우든 떳떳하게 유유히 퇴임 후 생활을 즐길 수 있는 사회가 되는 것이 중요하다.
우리는 구인제에 대한 대통령의거부권행사를 계기로 전대통령이 스스로를 밝히는 결단을 내려 오늘날 자기로 인해 얽힌 매듭을 스스로 풀어주기를 바라고자 한다.
그리고 그 결단은 빠를수록 좋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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