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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수원, 원전 예정부지 땅 사달라" 천지원전 주민들 소송 각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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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지원전이 지어질 계획이었던 영덕군 영덕읍 석리 마을. 백경서 기자

천지원전이 지어질 계획이었던 영덕군 영덕읍 석리 마을. 백경서 기자

경북 영덕군 천지원자력발전소 자리의 땅 주인들이 한국수력원자력을 상대로 "계획대로 땅을 사달라"며 낸 소송이 각하됐다. 소송 대상이 아니란 것이다. 이곳은 정부의 탈원전 정책으로 지난해 7월 발전소 건설이 무산됐다.

대구지법 제1행정부(한재봉 부장판사)는 2일 오전 10시 천지원전 건설 예정 지역 땅 주인 38명이 낸 소송(부작위 위법 확인의 소)의 선고공판에서 "땅 매수는 사법상 계약으로 대등한 당사자 지위에서 하는 것이기에 행정 소송 대상이 아니다"며 소송을 각하했다. 땅 주인들과 한수원의 계약 관계이기에 행정 소송 대상이 아니며 처분도 불가하다는 것이다.

한수원 측에서 보상협의회를 구성해 보상절차를 마무리 지어 달라는 땅 주인들의 요구에 대해서도 법원은 "토지보상법에 따라 토지소유자가 보상협의회 구성을 신청할 수 있는 권리는 없다"고 말했다.

다만 법원은 정부가 탈원전 정책에 따라 바뀐 사업에 대해서 적절한 조치를 취해야 한다고 했다. 한 부장판사는 "소송 부적합 판정을 내렸지만, 원전 예정구역으로 묶어놓고 수년간 재산권 행사를 못하게 하면 과연 농부들과 지주들이 정부정책에 대해 얼마나 신뢰할 수 있겠느냐"며 "정부가 사업예정구역을 지정했으면 빨리 사업을 진행하던지, 아니면 탈원전 정책에 따라 예정구역을 취소하던지 해야 한다"고 했다.

대구 수성구 대구지방법원 전경. 대구=김정석기자

대구 수성구 대구지방법원 전경. 대구=김정석기자

천지원전은 영덕군 영덕읍 석리 일대 324만여㎡ 부지에 2027년께 완공될 예정이었다. 2012년 9월 원전 예정구역으로 고시되면서 땅 주인들은 전원개발촉진법에 따라 재산권을 마음대로 행사할 수 없었다. 2015년 11월에 보상공고가 난 뒤 한수원은 2016년 7월부터 12월까지 전체 부지 중 18.95%(61만여㎡)를 매입했다.

하지만 문재인 정부가 들어선 뒤 탈원전 정책이 추진되자 문제가 불거졌다. 지난해 7월 초 산업통상자원부는 땅 주인들에게 신규 원전 건설 백지화에 대한 내용이 담긴 공문을 보내 더는 땅을 매입하지 않겠다는 의사 전달했다. 이에 땅 주인들은 "원전이 들어선다고 지난 5년간 재산권을 행사하지 못했는데 정부 정책이 바뀌면서 하루아침에 땅을 사지 못하겠다니 말이 되지 않는다"며 한수원을 상대로 토지 매입 소송을 걸었다. 원전 사업 예정지의 땅 매입을 주민들이 직접 요구한 소송으로는 첫 사례다.

경북 경주시 양북면 한국수력원자력 본사 전경. [중앙 포토]

경북 경주시 양북면 한국수력원자력 본사 전경. [중앙 포토]

 땅 주인들은 항소할 계획이다. 소송에 참여한 조혜선 천지원전총지주연합회 회장은 "문 대통령 탈원전 공약의 각본대로 법원이 판결을 내렸다"며 "정부 정책에 따라 한수원이 입장을 바꾼 건데 행정 재판 대상이 아니라는 것도 납득하기 어렵다"고 했다. 또 그는 "정권이 바뀌면서 정책이 바뀌니 숨죽이고 지켜보다가 국민에게 모든 피해를 전가한 꼴"이라고 주장했다.

반면 그동안 이번 소송에 대해 "천지원전 부지에 대한 토지 매입을 잠시 멈춘 것뿐"이라고 언급해 왔던 한수원 측은 소송결과를 토대로 이미 매입한 토지의 활용 방안을 고민할 것으로 보인다. 한수원 관계자는 "제8차전력수급기본계획에 따라 신규원전 건설이 중단됐으니, 땅 주인들이 요구하는 매입은 어려울 듯하고 이미 매입한 토지를 어떻게 처리할지도 논의해 봐야 할 것 같다"고 말했다.

또 원전 예정구역을 취소하거나 변경할 것인지에 대해서 한수원 측은 "합리적 절차와 방안을 정부와 협의 중"이라며 "결과에 따라 적절한 조치를 취하겠다"고 했다.

대구=백경서 기자 baek.kyungseo@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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