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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일본 ‘우익 사령탑’ 일본회의,헌법의 날 직전 공개한 영상의 정체는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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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우익의 대본영’으로 불리는 일본회의가 숙원사업인 평화헌법 개정을 위해 고삐를 죄기 시작했다.

헌법기념일 앞두고 '창립 20년' 영상 공개 #"야스쿠니 참배 늘렸고,외국인 참정권 막아" # 황당한 자화자찬,개헌 추동력 확보 포석 #사회 분위기는 싸늘한데 그들만의 잔치 #아베 "개헌은 정치인의 책무"미련 못버려 #아사히 여론조사 "아베정권에선 안돼 58%" #닛케이 "책 안 팔리고, 헌법 교육도 시들"

일본의 ‘헌법기념일’인 5월3일을 앞두고서다. 각종 스캔들로 아베 내각이 휘청되면서 일본회의 역시 한동안 기를 펴지 못했지만, 헌법기념일을 앞두고 개헌 무드에 불을 붙이려는 움직임을 개시했다.

일본회의는 지난달 30일과 1일 홈페이지를 통해 지난해 11월 27일 열렸던 ‘일본회의ㆍ일본회의 국회의원간담회 설립 20주년 기념대회’의 영상을 공개했다.

사실상의 ‘개헌 출정식’으로 진행됐던 기념대회의 모습을 편집해 공개하면서 헌법기념일을 앞두고 개헌에 대한 의지를 안팎에 재차 천명한 셈이다.

‘일본 우익의 사령탑’,‘우익 대본영’으로 불리는 일본회의는 전국 47개 도도부현(都道府県·일본의 광역 행정조직)마다 본부를, 무려 3000개가 넘는 기초지자체에 지부를 둔 우익들의 점 조직이다.

‘일본회의 국회의원 간담회’에 소속된 200명이 넘는 국회의원들은 일본회의의 우익적 시각과 정책을 정치권에 퍼나르고 있다. 아베 신조(安倍晋三) 총리의 강력한 지지 기반이기도 하다.

일본회의의 정체를 다룬 서적,'일본회의의 정체'.[중앙포토]

일본회의의 정체를 다룬 서적,'일본회의의 정체'.[중앙포토]

지난해 11월 약 2000명이 모인 가운데 도쿄 시내의 호텔에서 열린 20주년 기념대회는 한마디로 ‘우익들의 축제’나 다름없었다.

16분으로 편집된 영상에 따르면 행사 초반부엔 일본회의의 20년을 되돌아보는 DVD가 상영됐다.

 “역대 총리들의 야스쿠니(靖國)신사 참배가 정착되도록 요구하는 활동을 계속해왔고…(종전 60주년이던)2005년엔 대대적인 참배운동을 벌여 사상 최대의 참배객인 20만5000여명이 야스쿠니에 넘쳐났다. 종전 70주년(2015년)엔 특히 젊은층들에 야스쿠니 정신을 알리는 운동을 펼쳤다. 민주당 정권때 추진됐던 부부별성(부부가 다른 성을 쓰는 것)관련 법안과 외국인의 지방선거 참정권 법안을 철회시켰다… 국민운동을 통해 2004년엔 59년만에 교육기본법 개정을 성사시켰고, 2013년엔 본격적인 헌법개정 운동에 착수해 지금까지 이어오고 있다.이제 새로운 무대가 열렸다. 중의원 참의원 양원에서 개헌에 찬성하는 의원이 3분의 2를 넘었다. 국회발의와 국민투표를 위한 전국적 운동이 추진된다. 청년의 목소리,여성의 목소리,국민의 목소리를 모아 개헌운동을 전진시키자~.”

이어 참석자들의 다짐이 이어졌다.
^다나카 쓰네키요 일본회의 부회장="헌법개정이 새로운 무대에,출발점에 섰다"
^다쿠보 다다에 일본회의 공동회장="(개헌 찬성 국회의원)3분의 2는 하늘이 준 것"
^후루야 게이지 일본회의 국회의원간담회 회장="(헌법개정에 대한 책임감 등으로)몸이 떨린다"
^시모무라 하쿠분 자민당 의원="국가를 한 발 전진시켜 일본다운 헌법을 만들자"

이어 우파 논객인 사쿠라이 요시코(櫻井よしこ)가 “우리에겐 경제력도 있고, 군사력도 있고, 정보력도 있지만, 현실을 보는 눈이 없다. 우리를 둘러싼 국제정세는 우리를 기다려주지 않는다”며 개헌을 주장하자 장내엔 박수가 연거퍼 쏟아졌다.

동영상 공개로 분위기를 띄운 일본회의는 헌법기념일 당일인 3일엔 대규모 개헌 포럼을 개최할 예정이다.

일본회의가 지난 2014년 출범시킨 '아름다운 일본의 헌법을 만드는 국민회의'등이 주도하는 포럼이다.

지난해 아베 총리는 이 포럼에 보내는 영상 메시지를 통해 ‘헌법 9조에 자위대를 명기하겠다’는 입장을 첫 표명했다.  현재 중동을 방문중인 아베 총리 역시 헌법기념일인 3일엔 귀국할 예정이다.

지난달 11일 일본 중의원에 출석한 아베 신조 일본 총리가 곤혹스럽다는 표정을 짓고 있다.[로이터=연합뉴스]

지난달 11일 일본 중의원에 출석한 아베 신조 일본 총리가 곤혹스럽다는 표정을 짓고 있다.[로이터=연합뉴스]

아베 총리는 1일 밤 요르단의 수도 암만에서 가진 기자회견에서 "평화헌법의 원칙을 바꿀 생각은 전혀 없다"면서도 "우리의 독립과 평화를 지키는 자위대를 헌법에 명기해 (자위대)위헌논쟁에 종지부를 찍는 것이 오늘을 사는 정치가의 책무"라며 개헌에의 강력한 의지를 밝혔다.

정권을 뒤흔드는 스캔들속에서도 아베 총리가 개헌에 대한 욕심을 재차 드러낸 셈인데, 일본내에선 "개헌에 대한 과도한 집착이 아베 총리의 발등을 찍을 수 있다"는 관측도 나온다.

아사히 신문이 매년 한 차례씩 조사해 발표하는 우편방식을 통한 헌법 관련 전국 여론조사(2일 보도)에서 ‘아베 정권하에서 헌법개정이 실현되는데에 반대한다’는 답변이 58%, ‘찬성한다’는 답변은 30%였다. 지난해에 비해 반대가 8%포인트 늘어났고, 찬성은 8%포인트가 줄었다.

헌법 9조에 자위대를 명기하는 개헌안에 대해서도 반대가 53%,찬성은 39%였다.

니혼게이자이 신문도 2일 "개헌 논의가 활발해진 2013년이후 매년 100종류 이상의 헌법 관련 책이 발행됐지만 실제로는 잘 팔리지 않고 있으며, 특히 올해 들어선 서점내 헌법 특설 코너도 사라지고 있다"고 분석했다. 또 "어린이를 대상으로 한 헌법 교육도 학교측이 '정치적'이라는 이유로 망설이는 바람에 거의 진전이 없다"며 "전체적으로 헌법에 대한 관심이 시들해지고 있다"고 지적했다.

도쿄=서승욱 특파원 sswook@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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