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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북관계는 더 나갔고 비핵화는 덜 나가 … 양자 균형 중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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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8면

강찬호 기자 중앙일보 논설위원
강정현 기자 중앙일보 사진기자

위성락·박명림 교수 대담 

“남북관계 증진과 평화체제 구축은 잘 나갔는데 비핵화는 그보다 못 나간 게 아쉽다.”

위성락 전 한반도평화교섭본부장 #종전선언 시한 올해로 못 박은 건 #미·중과 사전 교감 있었기 때문인 듯 #평화협정과 미군철수는 별개 문제 #비핵화 분명해지면 상응조치 가능 #박명림 연세대 교수 #북한이 핵 완성 선언한 상황서 #완전한 비핵화 동의한 건 큰 의미 #국제제재로 코너 몰렸기에 가능 #남북관계 개선돼도 제재 공조 필수

남북 정상회담을 지켜본 전문가들의 일치된 총평이다. 중앙일보는 회담 다음 날인 28일 외교통상부에서 북핵 실무를 총지휘했던 위성락(전 한반도평화교섭본부장) 서울대 객원교수와 한국전쟁 연구 권위자인 박명림 연세대 교수를 초빙해 긴급 대담을 마련했다. 두 사람은 이번 정상회담이 한반도 긴장완화와 비핵화 논의의 초석을 놓은 점에 높은 점수를 주었지만, 비핵화의 구체적 이행은 미국으로 공이 넘어간 만큼 한·미 간에 물샐틈없는 공조가 절실하다고 입을 모았다.

위성락 전 한반도평화교섭본부장

위성락 전 한반도평화교섭본부장

총평을 해 달라.
위성락 전 한반도평화교섭본부장(이하 위)= “두 정상이 만나서 허심탄회하게 대화했다. 그 자체로 의미가 크다. 여기서 쌓인 개인적인 친분을 배경으로 남북 간 시급한 문제들을 풀어갈 실마리가 생겼다. 이를 생중계로 국민과 전 세계에 직접 보여준 것도 중요한 자산이 됐다. 또 군사적 긴장완화 조치들이 여럿 합의된 것도 평가한다.”

박명림 교수(이하 박)=“전쟁 위기가 대화 국면으로 전환된 의미가 가장 크다. 또 북한이 핵무력 완성을 선언한 상황에서 완전한 비핵화에 동의한 것도 의미가 있다. 한·미 동맹이 튼튼했기에 이런 성과가 가능했다고 본다.”

문제점도 있지 않나.
=“남북관계와 평화 이슈가 좀 더 갔고(진전됐고), 비핵화는 덜 갔다는 인상을 받았다. 정부가 모자랐다고 보고 싶지는 않다. 다만 북한이 비핵화를 놓고 남한을 다루는 스타일은 여전히 큰 변화가 없지 않나 싶다.”

=“전적으로 동감한다. 남북관계와 긴장완화는 빠르게 진전되는데, 비핵화는 교착상태에 빠지는 이중상황이 초래될까 우려된다. 그동안 북한이 비핵화에 합의한 건 국제적인 조건이 북한을 강력하게 압박할 때였다. 이번에도 유엔에서 강력한 대북 결의안이 잇따라 통과돼 원유 공급이 400만 배럴로 제한되는 등 북한이 코너에 몰리면서 합의가 이뤄졌다. 결국 남북 간 긴장완화는 북핵 문제의 국제적 지형에 달려 있다. 양자를 균형 있게 진척시켜 나가는 전략이 중요한 과제다.”

‘남북 간 모든 적대행위를 전면 중지한다’는 합의는 어떻게 보나? 한·미 군사훈련 중단으로 이어질까.
=“그건 한·미가 방어 목적으로 수십 년간 해 온 정규 훈련이다. 북한도 그런 군사훈련을 하고 있다. 이걸 쟁점으로 삼을 수 있을지 모르겠다.”

=“논란 자체가 되지 않을 거다. 중지 대상인 적대행위에 주권국가의 군사훈련은 해당되지 않기 때문이다. 그보다는 종전 선언과 평화협정 합의에 큰 의미가 있다고 본다. 21세기 동북아에선 유엔 회원국들이 유엔과 적대관계에 있는 기묘한 질서가 이어지고 있다. 정전협정으로 인해 중국과 북한이 유엔과 적대행위를 지속하는 상황이 계속되고 있어서다. 이를 종식하기 위해서라도 평화협정은 필요하다.”

=“2007년 10·4 선언에선 ‘3자(남·북·미) 또는 4자(남·북·미·중)가 만나 종전을 선언하는 것을 추진한다’고 했다. 그런데 이번엔 그냥 남북이 ‘한다’고 돼 있다. 또 종전 선언 시한을 ‘올해’로 못 박았는데, 올해는 7개월 남았다. 길지 않다. 결국 (정부가) 미국이나 중국과 사전 교감이 있었으니까 이런 합의가 나오지 않았겠나 생각한다.”

박명림 연세대 교수

박명림 연세대 교수

비핵화가 충분히 안 된 상태에서 평화협정이 이뤄지면 유엔사가 해체돼 안보가 흔들릴 것이란 우려도 있다.
=“큰 오해다. 주한미군사령관은 한미연합사령관이면서 유엔군 사령관이다. 유엔사가 없어져도 주한미군·연합사령관으로서의 지위엔 전혀 변화가 없다. 주한미군 방위력이 그대로 유지되니 안보가 흔들릴 일도 없다.”
그러나 유사시 주한미군은 일본에 있는 유엔사 7개 후방 미군기지의 지원을 받게 돼 있는데 유엔사가 없어지면 이게 불가능해진다는 지적도 있다.
=“그렇게 볼 수도 있다. 또 평화협정이 체결되면 북한은 주한미군 철수를 주장할 가능성도 없지 않다. 그러나 독일이 통일되고 소련이 소멸한 뒤에도 주독미군이 독일에 계속 주둔해 왔듯이 평화협정과 미군 철수는 별개 문제다. 게다가 한반도 주변엔 중국이나 러시아 같은 열강이 있으므로 우리 입장에선 주한미군이 계속 주둔하는 게 좋다.”
북한과 평화 상태가 되면 주한미군의 존재 이유가 없어진다는 주장도 있다.
=“국제법을 보지 않은 이념적 주장일 뿐이다. 주한미군은 한·미 상호방위조약에 의거해 존재한다. 그 조약에 따르면 주한미군은 한반도뿐 아니라 태평양 지역의 안보를 위해 주둔한다. 굉장히 중요하다. 대한민국에 대한 위협은 북한뿐 아니라 인근 국가들일 수도 있다. 정전협정이 평화협정으로 전환돼도 주한미군이 주둔해야 하는 근거다. 또 주한미군은 남북만이 아니라 동북아의 안보 균형 요소다. 주한미군 철수로 공백이 생기면 일본의 핵무장과 중·일 간의 군비 경쟁을 초래한다. 2000년 남북 정상회담에서 김정일 위원장이 미군 주둔을 암묵적으로 용인했듯이 지금도 북한이 주한미군의 철수를 정말로 바랄지는 회의적이다.”

=“맞다. 한·미 상호방위조약을 읽어 보면 북한이란 표현이 한마디도 없다. 그냥 태평양 지역에서의 위협을 한·미가 막는다고 돼 있다. 다만 현실적으로 평화협정이 되면 북한은 미군 철수를 주장할 가능성이 없지는 않다.”

=“한·미 상호방위조약을 보고 이승만 정부와 드와이트 아이젠하워 대통령 행정부가 얼마나 지혜로웠는지 절감했다. 전문에만도 ‘태평양 지역에서의 평화와 안전 보장’이란 구절이 세 번이나 나온다. 북한의 남침을 계기로 우리 안보를 중국·러시아의 위협으로부터 공고히 해놓으려는 비전이 있었다고 본다.”

북한이 ‘완전한 비핵화’에 합의했다지만 정말 그럴 의지가 있을까.
=“이제 북한의 비핵화는 김정은의 의지가 아니라 강제적으로 하지 않으면 안 되는 상황에서 이뤄질 것이다. 그것을 가능케 하는 대북제재 체제의 유지가 중요하다. 남북관계 개선이 제재에 균열을 초래하면 비핵화는 어려워질 것이다. 관건은 중국이다. 비핵화된 북한이 친중 국가로 존속할 수 있다는 확신을 중국에 줘야 제재 전선에서 이탈하지 않을 것이다. 우리가 미국과 동맹을 맺고 중국과는 협력관계를 유지하듯 북한은 중국과 동맹, 미국과 협력하는 체제가 바람직하다. 비핵화한 북한이 친미로 돌아선다면 중국은 북한을 핵을 가진 반미 국가로 유지하는 편이 낫다고 판단할 것이다.”

=“북한이 생각하는 ‘완전한 비핵화’는 우리가 말하는 ‘완전하고 검증가능하며 돌이킬 수 없는 비핵화(CVID)’와 다를 소지가 많다. C를 우리는 완전(Complete)이라 생각하지만 북한은 ‘포괄적(Comprehensive)’으로 여길 수도 있다. 즉 한·미가 대북 위협이나 적대정책을 내려놓아야만 핵 없는 한반도가 가능하다고 주장할지 모른다. 이번 회담은 두 정상이 많은 얘기를 나눴고, 그걸 5000만 국민과 국제사회가 지켜본 만큼 (비핵화 진전에) 좋은 기회였다. 그러나 합의 결과는 그렇게 기대했던 것만큼은 덜하고, 미국을 쳐다보게 됐다는 점에서 아쉽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미국 우선주의가 가장 우려된다. 미국에 북한의 핵심 위협은 핵이 아니라 ICBM(대륙간탄도미사일)이다. 트럼프가 김정은과의 회담에서 핵은 제외한 채 ICBM 발사 중지만 합의하고 협상을 타결하면 우리로선 악몽이다. 미국은 인도·이스라엘·파키스탄이 ICBM을 갖지 않겠다고 하니까 그들의 핵 보유를 다 허용한 전력이 있다. 따라서 한·미는 북핵과 ICBM을 절대 분리하지 않고 ‘공동의 안보 위협’으로 인식해 둘 다 제거해야 한다. 미국은 30년 만에 북한 비핵화에 절호의 기회를 얻었다. 중국과 러시아까지 제재에 동참하고 있지 않나. 여기서 미국의 이득만 챙기고 비핵화 대열에서 이탈한다면 동북아와 한반도에 중대한 평화 파괴 행위가 될 것이라고 정부는 워싱턴에 계속 강조해야 한다. 또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개정을 놓고 조금이라도 더 얻으려고 하다가 안보에서 손해를 보는 일은 없어야 한다. 지금은 북핵 폐기에 온 국력을 집중해야 할 때다.”

=“나도 그런 우려를 항상 하고 있다. 미국이 북한과 적당히 타협하지 못하게 하려면 먼저 우리가 미국과 손잡고 가는 모습을 보여줘야 한다. 그래야 결정적인 순간 미국을 붙잡을 수 있다.”

북한 비핵화가 진전되면 제재는 언제쯤 완화하는 게 적당한가.
=“수치화할 순 없다. 다만 ‘영변 핵시설이 완전히 부서지기 전엔 안 된다’는 식으로 나가선 일이 안 될 수 있다. 비핵화가 움직이는 게 분명해지는 시점에서 우리도 조응하는 조치를 함으로써 비핵화를 가속화할 수 있다면 그렇게 하는 것이 좋겠다.”

=“CVID의 핵심은 V, 즉 검증(Verification)이다. 북한이 사찰에 응할 때까지는 제재를 유지해야 한다.”

북핵은 우리를 겨냥한 것이 아니니 북·미 중재만 하면 된다는 이들이 현 정부 주변에 많지 않나.
=“지금까지 접촉해 본 정부의 공직자 가운데 진보· 보수를 막론하고 그런 발언을 한 이를 접한 적이 없다. 그런 민족주의적 관점에서 접근하면 영구분단을 부를 뿐이다. 핵을 가진 북한이 통일에 응할 리 없고, 미국·중국·일본·러시아가 남북통일을 허용할 리도 없기 때문이다.”
북·미 정상회담을 전망해 달라.
=“두 정상이 비핵화에 원칙적인 합의를 이루지 않을까 추정해 본다. 2005년 9·19 합의에 구체적인 액션이 가미된 선이 아닐까 한다. 가령 미국은 독자 제재 가운데 일부를 풀고, 북한은 바로 구체적인 비핵화 조치에 들어가는 것이 예가 될 수 있다. 그러나 판가름은 1~2년간 이어질 후속 협상에서 날 것이다.”  

글=강찬호 논설위원 stoncold@joongang.co.kr
사진=강정현 기자, 정리=황병준 인턴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