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핵정책 주도권 온건파가 잡았나

중앙일보

입력

미국의 조지 W 부시 행정부의 대북정책이 마침내 온건론 쪽으로 방향을 선회했다. 강경파와 온건파의 치열한 싸움에서 온건파가 대세를 장악한 것으로 보인다.

콜린 파월 국무장관은 지난 5일 멕시코 외무장관과 만난 뒤 한 기자회견에서 "북한이 원하는 안전보장을 해줄 수 있는 다양한 방법을 찾고 있다"고 거듭 확인했다.

파월 장관은 북한과의 6자회담을 "대화와 협상"이라고 규정하면서 "북한은 믿을 수 있는 형태로 안전보장을 해달라고 했고, 우리는 다음 회담을 준비하기 위해 앞으로 수주일 동안 그 문제(안전보장)를 검토할 것"이라고 말했다.

다음번 6자회담에선 북한이 만족할 수 있는 안전보장을 해주겠다고 사실상 공언한 것이다.

이에 앞서 지난 8월 말 열렸던 베이징(北京) 6자회담 이후의 부시 행정부 반응은 온건론과 강경론이 뒤섞였다. 국무부 관리들은 대화와 타협을 얘기하면서도 다른 한편으론 "미국은 어떤 선택도 가능하다"는 경고를 잊지 않았다. 하지만 파월 장관은 5일 회견에서 북한에 대한 어떤 경고도 없이 대화와 타협만을 강조함으로써 달라진 분위기를 반영했다.

미국의 이 같은 태도 변화는 무엇보다 북한이 건국기념일인 9일 핵실험 등을 강행할지도 모른다는 우려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북한이 핵실험을 하면 부시 외교정책의 대실패로 기록될 수밖에 없다.

국무부의 고위 관계자가 지난 4일 "북한 건국기념일에 무슨 일이 벌어질 수도 있고, 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면서 "우리는 큰 관심을 갖고 지켜보고 있다"고 말한 것도 이 같은 맥락으로 해석된다.

하지만 이러한 온건론에도 불구하고 북한이 핵실험을 강행하거나 차기 회담을 거부할 경우 상황은 다시 급반전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북한이 미국의 유화 제스처를 거부하고 돌출행동을 한다면 오히려 미국에서 강경파가 명분을 쌓을 것이기 때문이다.

이와 관련, 파월 장관은 5일 조지 워싱턴대 엘리엇 국제관계대학원에서 한 연설에서 "미국은 어떤 선택방안도 배제하지 않을 것이지만 지금은 북한이 행동을 개조해야 할 때"라며 북한의 양보를 촉구했다.
[워싱턴=김종혁 특파원]kimchy@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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