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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에 있는 여동생 살아 있을까, 더 늦기 전에 만났으면….”

중앙일보

입력

북에 어머니와 큰형, 누나, 여동생을 두고 온 실향민 긴건욱(85) 할아버지. 박진호 기자

북에 어머니와 큰형, 누나, 여동생을 두고 온 실향민 긴건욱(85) 할아버지. 박진호 기자

“북에 있는 어머니, 큰형, 누나, 여동생은 살아 있을까, 더 늦기 전에 한 번이라도 만나면 좋을 텐데….”

속초 아바이마을 실향민들 이산가족 상봉 성사됐으면 #동해안 최북단 고성 명파리 주민 금강산 관광 재개 기대

남북정상회담을 하루 앞둔 지난 26일 실향민 마을인 강원도 속초시 청호동 아바이마을에서 만난 김건욱(85) 할아버지는 “이번 회담에서 이산가족 상봉과 금강산 관광이 재개되길 희망한다”고 말했다.

6·25전쟁 때 피난을 오면서 가족과 헤어진 김 할아버지는 “‘아버지 따라 남쪽에 금방 갔다 올게요’라고 한 것이 어머니에게 한 마지막 말이 됐다”며 “살아계신다면 100세가 넘으셨을 텐데…. 맛있는 식사 한번 대접하지 못한 것이 마음에 걸린다”고 말했다.

함경남도 홍원군이 고향인 김 할아버지는 17살이던 1950년 12월 아버지, 작은형과 함께 남한으로 가는 목선에 올랐다. 목선을 타고 포항까지 간 김 할아버지는 3개월가량 포항에 머물다 부산으로 거처를 옮겼다.

함경도가 고향인 실향민들이 모여 사는 아바이마을에 있는 청호노인회관. 박진호 기자

함경도가 고향인 실향민들이 모여 사는 아바이마을에 있는 청호노인회관. 박진호 기자

그러던 중 53년 고향에 가기 위해 북에서 가까운 속초 아바이마을로 오게 됐다.

당시는 국군과 인민군이 남북으로 진퇴를 거듭하던 시기로 많은 실향민이 고향에 가기 위해 아바이마을에 몰려들었다. 53년 전쟁이 끝났지만 고향으로 돌아가지 못했다.

김 할아버지는 “그동안 어떻게 지냈는지, 자녀들은 있는지, 건강은 어떤지 가족을 만나게 되면 물어볼 게 많다. 하지만 이제 다들 나이가 많아 돌아가셨을 것 같다”며 “피난을 갈 때만 해도 집에 금방 돌아갈 수 있을 줄 알았는데…. 요즘 같이 길이 좋으면 고향까지 차로 3시간이면 갈 텐데 참 슬프다”고 말했다.

함경남도 영흥군이 고향인 권문국(86) 할아버지 북에 두고 온 가족을 생각하며 눈물을 흘리고 있다. 박진호 기자

함경남도 영흥군이 고향인 권문국(86) 할아버지 북에 두고 온 가족을 생각하며 눈물을 흘리고 있다. 박진호 기자

함경남도 영흥군이 고향인 권문국(86) 할아버지도 북에 아버지와 남동생 두 명을 두고 온 실향민이다.

권 할아버지는 역시 전쟁이 한창이던 51년에 가족과 헤어졌다. 권 할아버지는 “당시 남한에 간 사실이 알려지면 동생들에게 피해가 갈까 자는 얼굴만 보고 몰래나왔다 ”며 “아버지에겐 일주일 후에 돌아올 거라고 했는데, 국군이 북쪽으로 올라가지 못하면서 고향으로 돌아가지 못했다”고 말했다.

그는 “급하게 나오느라 사진 한장 챙겨오지 못했다. 혹시 이산가족 상봉이 성사돼 동생을 만나게 되면 그동안 아버지를 잘 모셔줘 고맙고 미안하다는 말을 꼭 하고 싶다”며 눈시울을 붉혔다.

권 할아버지는 “혼자 있으면 아버지와 동생 얼굴, 고향 집터 등이 필름처럼 스쳐 지나간다”며 “고향 생각이 날 때면 구글 지도를 통해 고향 땅을 둘러본다”고 말했다.

함경도가 고향인 실향민들이 모여사는 아바이마을. 박진호 기자

함경도가 고향인 실향민들이 모여사는 아바이마을. 박진호 기자

청호동 아바이마을은 국내에서 유일한 실향민 집단정착촌이다. 현재 남아 있는 실향민 1세대는 100여 명이다. 이곳이 아바이마을이라 불리는 건 함경도 출신 실향민이 많아서다. 아바이란 함경도 사투리로 보통 나이 많은 남성을 뜻한다.

동해안 최북단 마을인 고성군 현내면 명파리 주민들도 이번 남북정상회담으로 금강산 관광이 재개되길 기대하고 있다.

금강산 가는 길목인 명파리 마을은 2003년 9월 금강산 육로 관광이 시작되면서 호황을 누렸다. 매년 20만명을 넘는 관광객이 금강산을 찾기 위해 명파리 마을을 지나가면서 도로변 상점은 항상 관광객들로 붐볐다.

하지만 10년 전인 2008년 7월 관광객 박왕자(당시 53·여)씨 피격 사망 사건이 발생하면서 금강산 관광이 중단돼 관광객들의 발길도 뚝 끊어졌다.

장석권(63) 명파리 이장은 “금강산 육로 관광이 재개되면 관광객 증가와 함께 마을이 활기를 되찾을 것으로 기대된다”고 말했다.

속초·고성=박진호 기자 park.jinho@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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