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느티나무를 사랑하는 50년 소목장 장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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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8면

[더,오래] 이정은의 장인을 찾아서(3)

필자는 분야별 인간문화재와 함께 최고급 한국 수공예품을 제조해 유통하는 일을 한다. 전국 곳곳에 있는 인간문화재를 포함해 숨은 분야별 장인을 찾아 소개하면서 이전에는 주목받지 못했지만, 문화재로 새롭게 지정되어가는 분야 또한 들여다본다. 무엇보다 이제는 거의 끊긴, 한국 고유의 전통 수공예 기법의 맥을 잇고자 한다. 이를 위해 은퇴 후 전통 공예를 배울 문하생을 찾고 있다. <편집자 주>

느티나무를 가장 사랑한다는 소목장 박명배 장인의 작업 모습. [사진 박명배]

느티나무를 가장 사랑한다는 소목장 박명배 장인의 작업 모습. [사진 박명배]

시골 마을에 가보면 회화나무처럼 큰 정자나무가 마을 사람의 쉼터로 이용된다. 점점 귀해져 보호수로 지정된 나무도 많다. 계절이 바뀔 때마다 새로운 모습을 보여주지만, 시간이 흘러도 늘 그곳에 있는 나무. 오랜 세월 사람들의 추억을 간직하며 역사를 만들어 가고 있다.

50년 동안 함께 한 나무가 인생이고 삶인 장인이 있다. 느티나무를 가장 사랑한다는 소목장 박명배(68) 장인을 만났다. 나무를 다루는 장인 중 대목장이 건물을 짓는 사람이라면 소목장은 집안 살림에 쓰는 온갖 가재도구를 만드는 사람이다. 실내에서 쓰는 생활 가구나 농기구, 한옥의 창호제작을 포함해 의식주에 필요한 물건들이다. 소목장의 사전적 정의는 장롱, 경대, 책상, 문갑 등과 같이 전통 목가구를 제작하는 목수를 말한다.

가구를 만드는 나무의 나이는 짧게는 수십 년, 길게는 수백 년이다. 나무 자재도 그렇지만 인간문화재로서 원형을 유지한 채 후대에 물려주며 전통을 지켜내는 사람도 귀한 시대이다. 요즘 유행하는 원목 가구는 효율성·편의성만 강조하는 방식으로 제작되는 경우가 많다.

수십 년을 기다려야 하는 자연건조 목재만을 쓰는 전통 목가구는 귀해졌다. 전통 주거 환경의 변화에 따른 수요도 줄었지만, 자연이 훼손되면서 나무가 부족해져 수입 나무에 의존하는 상황이다.

가구, 전통 목재 대신 수입목 의존도 높아져  

나무와 장인. [사진 이정은]

나무와 장인. [사진 이정은]

제자 양성은 내 사명감이에요. 하지만 경제적인 비전은 밝지 않죠. 재료 수급이 한계에 왔어요. 제작 단가가 비싼 수입목에 의존할 수밖에 없습니다.  대중화가 어려워 특수층을 위한 수공예 가구가 되는 것이 당연합니다. 그래도 이 전통의 맥을 잇기 위해서는 제작자가 많이 생겨나야 한다고 생각해요.

그런데도 흥미로운 점은 박 장인을 따라 소목장이 되겠다는 제자가 끊이질 않는다는 것이다. 제자 이수 시기는 보통 3년이다. 3년 안에 자신만의 공방을 내야 한다는 이야기다. 수요보다는 생산이 먼저 늘어야 한다는 게 장인의 생각이다. 이수자 중엔 40대가 넘어 시작한 제자도 있고, 정년 은퇴 후 생계를 이어가는 50대도 있다고 한다.

요즘에 와서야 우리의 고가구를 인테리어 소품이나 포인트 장으로 사용하지만, 20세기 후반만 하더라도 전통 목가구는 구닥다리 물건으로 여겼다. 이탈리아나 프랑스, 일본, 북유럽 가구 등 해외 명품 가구와 비교하면 그 역사와 가치를 인정받지 못했다. 전통 수공예 명품 가구를 다시 현대적인 주거환경 생활 속에서 소명의식을 가지고 남녀노소가 모두 좋아할 대물림 문화를 만들어가고 싶은 이유다.

나무. [사진 이정은]

나무. [사진 이정은]

명품 가구가 완성되려면 좋은 나무가 있어야 하고, 그 나무를 능숙하게 다루며 튼튼하게 짜 맞출 줄 아는 사람이 있어야 한다. 하지만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나무의 무늿결을 살려 자연스러운 아름다움을 추구하는 한국 전통 목가구의 조형미와 실용성을 살리는 것이다. 주거환경과 주택구조 등도 고려해야 한다. 그래야 고가구가 오래 사랑받을 수 있다. 장인의 손기술과 함께 시대에 맞는 디자인이 필요한 건 그래서다.

예전엔 백골(뼈대를 만들어 놓고 아직 옻칠하지 않은 목기)을 지게에 지고 다니는 소목 장인이 있었다. 하얀 백골에다가 기름칠(유칠)을 해 목기로 사용했다. 그런데 백골에 유칠 대신 옻칠을 하면 가구나 소반 같은 생활 목기의 수명이 훨씬 더 길어지고 견고해진다. 나무에서 상처를 내어 어렵게 얻은 옻칠은 그 당시에도 비싸고 귀했다. 전통적으로 공예품 제작은 분업화했기 때문에 소목장이 나무를 짜면, 옻칠장이 그 위에 옻칠했다.

기초가 가장 중요하다고 강조하는 박 장인은 목가구를 만드는데 나무의 선택과 가공에 많은 시간과 돈을 들인다. 수령이 길게는 약 1000년부터 300~500년 사이를 좋은 나무로 친다. 나이에 따라 어린나무, 젊은 나무, 늙어 죽는 나무가 있는데, 마지막 고사목이 가장 좋다고 한다. 세월의 깊이가 명품 여부를 좌우하는 것이다.

나무가 가구 기초 재료 되려면 7년 숙성기간 거쳐야  

소목장 나무들. [사진 이정은]

소목장 나무들. [사진 이정은]

어렵게 구한 좋은 나무로 곧바로 목가구를 제작하는 것은 아니다. 갑자기 수분이 빠져 뒤틀리고 갈라지는 것을 막기 위해 겨울에 나무를 베어 잘린 면에 풀이나 기름 같은 것을 발라 2년 정도 숙성시킨다. 그리고 실외에서 3년, 실내에서 2년 정도 더 놓아둔 후에 비로소 가구의 자재로 쓰인다. 이처럼 가구 만드는 기초 재료가 되는데 7년의 긴 시간이 필요하다.

전통 목가구는 나뭇결을 살리는 일이 무척 중요하다. 오동나무를 쓰는 '낙동기법'과 소나무를 쓰는 '낙송기법' 두 가지가 있다. 이들 기법은 인두로 나무판을 지져 나무 본연의 색과 무늬를 최대한 살려낸다. 무르거나 단단한 나무 조직에 맞춰 인두 쥐는 힘을 조절해야 하는 까다로운 기법이라 박 장인 말고는 시도하는 사람이 별로 없다.

자연소재를 활용해 본래의 무늬를 살려 자연의 편안함을 주는 가구를 만들고 싶어요. 요새 아파트는 한옥보다 내부가 건조해 가구가 갈라지거나 벌어지는 문제가 발생해요. 다시 기온이 올라가면 벌어졌던 가구가 원상태로 돌아오죠. 나무도 생명체이기에 숨을 쉬는 거예요. 뚜렷한 사계절이 있는 한국에서는 온도·습도에 의해 수축하고 팽창하는 것이 지극히 자연스러운 현상입니다. 사람들이 이 자연의 신비를 흠이 아닌,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면 좋겠어요.

한국에서 목공예품이 언제부터 사용됐는지 그 명확한 시기는 알 수 없으나 문헌 기록과 출토 유물로 미루어 약 2000여 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특히 한국적인 아름다움이 가장 잘 표현된 조선 시대 목가구의 특징은 좌우대칭·면 분할의 비례가 조화롭다는 점이다. 아름다운 목리(나뭇결)를 좌우 대칭으로 배치해 깊은 멋을 자아내는 것이다.

서구나 중국의 집은 넓고 높은 실내공간으로 자연히 가구도 크고 모자이크 같은 나무의 장식적인 면이 매우 강하다. 그러나 한국은 천장이 낮고 실내도 비교적 좁은 한옥 생활의 영향으로 가구가 상대적으로 작고 낮으며 간결하게 제작됐다.

조선 시대 목가구는 다양한 수종의 판재를 좌우대칭으로 구성함으로써 화려한 칠 장식을 대신했다. 이는 자연과 순수의 미를 추구하는 한국적인 미의식을 잘 나타내고 있다. 한국적인 독특한 비례 감각을 살린 조선 시대의 선과 면의 배분은  가구 뿐만 아니라 실내공간에도 적용됐다. 이는 어떠한 공간이나 주택양식에도 잘 어울리는 미적 요소로 발전해 오늘날에도 높이 평가되고 있다.

삼층장. [사진 박명배]

삼층장. [사진 박명배]

머릿장. [사진 박명배]

머릿장. [사진 박명배]

전통 목가구는 눈에 보이지 않는 부분도 아주 견실한 구조로 짜여 있으며, 그 짜임과 이음의 기법은 매우 치밀하다. 대표적으로 삼층장, 반닫이, 사방탁자, 문갑, 머릿장, 책장, 의걸이장 등이 있다. “좋은 전통 목가구의 아름다움을 살리려면 나무 본연 결의 아름다움을 활용하는 게 제일 좋지요. 그러나 좋은 나무와 가구를 만나는 건 좋은 배필을 만나는 일만큼이나 어려워요.”

머리 아닌 마음으로 기억하는 명품 

장인과 도구. [사진 이정은]

장인과 도구. [사진 이정은]

박 장인은 나무는 인생이고 삶이라 했다. 나무가 곧 자신이고 자산이기도 하다. 우리는 자연에서, 특히 나무에서 삶의 지혜를 배운다. 소목 장인은 완벽하게 짜 맞춤하는 손을 50년 이상 갈고 닦았다. 장인의 솜씨를 글이나 책으로 전수할 수 없는 노릇. 시간이 기억하고 머리가 아닌 마음으로 기억해야 비로소 장인정신이 담긴 명품을 오래 보존할 수 있다.

30여 년 내 인생 나무에 나이테가 그어진 과정을 회상해 봤다. 50년의 세월 동안 나무와 함께 한 박 장인의 삶이 그렇듯이 나이테 하나는 수많은 경험과 시간을 거쳐 어렵게 그어진다. 그런 인내심으로 어제보다 나은 오늘을 만드는 장인정신을 기르는 것이 곧 내 소명이다.

이정은 채율 대표 je@cheyu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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