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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언론·IT 전문가 85%, “드루킹 사건, 포털에도 책임있다”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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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명중 11명은 “포털 뉴스 댓글 기능 없애야” 

“포털은 댓글로 얻는 엄청난 광고 수익의 일부를 매크로 공격을 막는 기술 개발에 적극적으로 투자했어야 했습니다. 소위 언더마케터(댓글 조작업자)들은 ‘돈이 되는’ 기술 개발에 사활을 거는데, 포털로선 방어 기술 개발이 수익 증대에 별로 도움이 안 된다고 판단했을 겁니다. 임하는 자세가 다른데 창과 방패의 싸움에서 결과는 뻔 하지 않을까요?” 익명을 요구한 한 유명 정보보안 전문가는 이 같이 말했다. ‘드루킹’ 김모(49)씨의 댓글 조작 사건에 있어서 “포털은 책임을 통감해야 한다”고도 했다.

“댓글 공감 순위가 드루킹 사건 부추겨” 

중앙일보, 각 분야 전문가 20명 대상 설문해보니

중앙일보는 정치·언론·심리·정보기술(IT) 등 각 분야 전문가 20명에게 국내 포털 댓글 환경의 문제점과 해법 등에 관해 물었다. 그 결과 포털의 현행 댓글 정책을 뜯어 고쳐야 한다는 데 대체적으로 동의했다. 특히 “댓글의 공감 순위가 댓글 조작을 부추긴다”고 지적했다. ‘드루킹 사태를 막지 못한 포털에도 책임이 있다고 생각하나’란 질문에 17명(85%)이 ‘책임있다’고 답변한 데는 이런 배경이 있다. 최진봉 성공회대 신문방송학과 교수는 “이번 드루킹 사건도 자기 편에게 유리한 댓글을 위로 올리려다가 벌어진 일이다. 공감·비공감 수가 여론을 왜곡할 소지가 큰데도 포털은 이를 활용해 돈을 번다”고 지적했다.

중앙일보 설문조사에 응한 전문가 20명

곽금주 서울대 심리학과 교수, 김경환 법무법인 민후 변호사, 김승주 고려대 정보보호대학원 교수, 구정우 성균관대 사회학과 교수, 민병철 선플운동본부 이사장, 박현주 모바일 보안 기업 엠큐릭스 대표, 신율 명지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손영준 국민대 언론정보학부 교수, 이기용 블로그 마케팅 기업 VSM 대표, 이진로 영산대 광고홍보학과 교수, 이택광 경희대 글로벌커뮤니케이션학부 교수, 윤광일 숙명여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조화순 연세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최상명 하우리 침해사고대응실 실장, 최용락 숭실대 SW특성화대학원 교수, 최진봉 성공회대 신문방송학과 교수, 최재용 한국소셜미디어진흥원장, 한규섭 서울대 언론정보학과 교수, 홍형식 여론조사 기관 한길리서치 소장, 허지원 중앙대 심리학과 교수(이상 가나다 순)

포털이 비정상적으로 댓글 추천 수를 늘리려는 시도를 감지했다면, 적극적으로 대응했어야 했다는 지적도 나왔다. 홍형식 한길리서치 소장은 “포털은 통계적 기술만으로도 기사 댓글의 비정상적인 움직임을 감지할 수 있었을 것이라고 추정된다. 만일 이를 감지하지 못했다고 해도 문제다. 이윤을 추구한 댓글 정책으로 조작의 판을 깔아준 셈이다”고 강조했다.

반면 응답자 중 2명(10%)은 ‘포털 책임론’에 대해 신중한 입장을 보였다. 모바일 보안 전문가인 박현주 엠큐릭스 대표는 “이번 사건에서 쓰인 매크로 프로그램이 어떤 것이었는지에 관한 수사 결과가 나온 뒤에야 포털의 책임을 따져볼 수 있다. 전혀 새로운 기술이었다면 포털이 막기 힘들었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고 말했다.

극소수 유저가 댓글 독점해 여론으로 둔갑

전문가들은 ‘현행 포털 댓글 서비스 방식에 문제가 있다(16명·80%)’고 생각했다. ‘표현의 자유’를 앞세운 댓글이 오히려 여론을 왜곡시킬 소지가 있다는 점에서다. 윤광일 숙명여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극소수의 ‘헤비 유저’가 포털의 댓글 기능을 독점하면서 ‘사이비 공론장’을 형성하고 있다”고 우려했다.

그래픽=김경진 기자 capkim@joongang.co.kr

그래픽=김경진 기자 capkim@joongang.co.kr

실제로 댓글 분석 사이트 워드미터에 따르면 네이버 뉴스에는 하루 약 11만4000명이 약 31만개의 댓글을 단다. 이는 네이버 뉴스 하루 평균 이용자(1300만명)의 0.9%에 불과하다. 게다가 그중 6000여 명이 8만개 이상의 댓글을 단다. 한 명이 아이디 3개까지 만들 수 있는 점을 감안하면 ‘헤비 유저’ 수천 명의 의견이 대세 ‘여론’으로 비치는 것이다. 허지원 중앙대 심리학과 교수는 “내용의 타당성과 무관하게 특히 공감수가 높은 댓글은 사람들의 판단에 영향을 끼친다”고 말했다.

“한국 정치 상황선 댓글 이용되기 쉬워”

포털 뉴스의 댓글 기능을 폐지하자는 주장도 설득력을 얻고 있다. ‘포털 뉴스 댓글 기능을 아예 없애야 한다고 생각하나’란 질문에 ‘찬성’(11명·55%)이 ‘반대’(9명·45%)보다 우세했다. 신율 명지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댓글이 여론을 왜곡하면 오히려 민주주의를 후퇴시킨다. 보수와 진보로 갈린 한국의 정치 상황에서 포털의 댓글은 정치적으로 이용당하기 쉽다”고 말했다. 한규섭 서울대 언론정보학과 교수는 “반복되는 댓글 조작 사건들이 댓글은 더 이상 공론의 장이 아니란 것을 증명한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이 말하는 ‘포털 뉴스 댓글 해결책’

조화순 연세대 교수 “언론사 사이트에서만 기사 보고 댓글 다는 방식으로 바꿔야”

윤광일 숙명여대 교수 “일부 기사에만 댓글 기능 두고 문제 댓글은 걸러야”

최진봉 성공회대 교수 “댓글 조작 부추기는 공감·비공감 순위 없애야”

최재용 한국소셜미디어진흥원장 “어느 플랫폼에서든지 강력한 실명제 도입해야”

최용락 숭실대 교수 “정부 산하에 댓글 조작 신고 센터 만들어야”

허지원 중앙대 교수 “댓글 유료화 정책 검토하고 주로 개인 SNS에 댓글 남겨야”

이택광 경희대 교수 “광고 유치 기준을 뉴스 조회수에서 콘텐트의 품질로 바꿔야”

반면 이진로 영산대 광고홍보학과 교수는 “포털 댓글이 사람들에게 즐거움을 주는 측면도 크다. 모두의 자유가 아닌, 댓글을 조작하는 이들의 자유를 억제하는 방향으로 가야한다”고 말했다. 김경환 변호사도 “민간 기업의 자율에 맡길 문제”라고 말했다.

“기사도, 댓글도 언론사 사이트에서만”

세계 최대 검색 엔진 구글 등에선 뉴스 기사를 클릭하면 해당 언론사 페이지로 넘어가고(아웃링크), 댓글도 언론사 사이트에만 달 수 있다. 윤광일 숙명여대 교수는 “국내 포털은 뉴스를 클릭 수, 댓글 수 등을 토대로 배치하는 사실상의 편집권을 갖고 있지만, 저널리즘 윤리엔 구속받지 않는 기형적인 특권을 행사한다”고 진단했다. 그러면서 “뉴스 유통 구조를 아웃링크 방식으로 전환하고, 댓글도 언론사가 관리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임선영 기자 youngca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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