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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주민 청장, 경찰의 윤석열이 돼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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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8면

조강수
조강수 기자 중앙일보 논설위원
조강수 사회데스크

조강수 사회데스크

댓글이 뭐길래 정권 교체기 때마다 나라가 들썩들썩하는 걸까? 인터넷 댓글은 특정 언론사의 기사나 블로거의 의견 표명 글 등에 네티즌들이 자기 생각을 다는 것이다. 그런데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는 여론을 특정 후보에게 우호적으로 조성해 당선시키려는 경쟁이 극도로 치열해진다. 때로는 불법과 편법도 동원된다.

국정원에 이어 드루킹까지 … 반복되는 댓글 조작 사건 #검찰이 정면돌파했듯 이번엔 경찰이 제대로 수사해야

2012년 말 국가정보원 댓글 조작 사건은 이명박 정부 때 국정원과 군 사이버사령부의 공무원들이 저질렀다. 인터넷 포털 사이트인 보배드림, 뽐뿌, 오늘의유머 등 15개 사이트에 게시글을 올리거나 찬·반 댓글 작업을 했다. 국정원 직원들이 ‘숲속의참치’, ‘좌익효수’라는 아이디로 활동했다. 하나의 목적을 향해 돌진했다.

올해 드러난 ‘민주당원 댓글 조작 사건’은 김동원(필명 드루킹)씨 등 민간인들이 주도했다. 드루킹과 서유기라는 게임 속 캐릭터가 등장한다. 이들은 사이버상의 ‘용병’처럼 행동했다. 이해관계에 따라 댓글 파워를 이용해 이익집단화한 듯 보인다. 댓글 조작을 해주고 오사카 총영사 등 인사청탁도 했다.

댓글의 파워는 대단하다. 네이버 가입자 수는 5000만명 이상이다. 그들이 매일 아침 접속하는 게 댓글 순위 글이다. 한정된 골수 블로거와 댓글러들이 특정 여론을 주도할 수 있다는 의미다. 드루킹은 말한다. “여론이란 네이버 기사에 달린 베스트 댓글인 것이다. 온라인에서 지면 오프라인에서도 지는 것이다.” 국정원과 드루킹의 목적은 비슷했다. 국정원 여직원은 오늘의유머에서 정부 비판적인 글이 추천을 많이 받아 베스트 게시물로 선정되면 다른 게시판의 요리나 여행 관련 글들을 추천해 베스트 게시물을 바꿨다. 정부 비판적인 글을 밀어내기 했다.

드루킹은 매크로 프로그램을 활용, 네이버의 정치성향 글에 ‘공감’을 반복 클릭해 순위를 바꿨다. 드루킹이 “MB아바타”라고 공격했던 안철수 바른미래당 대표가 드루킹 댓글 조작의 최대 피해자라고 자처하는 것도 틀린 말은 아니다.

국정원 댓글 조작 사건은 처음엔 별것 아닌 듯 보였다. 18대 대선을 일주일 앞둔 2012년 12월 11일 서울 역삼동의 S오피스텔 607호 앞이 민주통합당 인사들로 북적였을 때만 해도 ‘설마 국정원 여직원이 오피스텔에 앉아서 인터넷 댓글 조작을 할 리가 있을까’라며 고개를 갸우뚱하는 이들이 적지 않았다.

이듬해 윤석열 특별수사팀장은 앞만 보고 수사해 진실을 밝혀내려 했다. 그 후폭풍으로 ‘항명’ 파동의 주역이 됐다. 그는 “조직에 충성하지 사람에 충성하지 않는다”는 명언도 남겼다. 박근혜 정부 내내 한직을 떠돌던 윤석열은 지난해 5월 문재인 정부 출범 직후 서울중앙지검장에 발탁돼 ‘적폐수사’의 최선봉에 섰다. 2013년 댓글 수사팀원들은 전원 명예를 회복했다.

국정원 댓글 사건이 없었다면 ‘강골검사’의 인생 역전 스토리도 없었을 것이다. 그런 점에서 본다면 이번 드루킹 댓글 사건은 경찰 조직에는 더할 나위 없이 중요한 시험대다. 드루킹과 연루 의혹이 불거진 김경수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문재인 대통령의 최측근이다. 성역없는 수사를 통해 정권 수사에 특히 취약할 것이라는 국민의 의구심을 씻어내고 홀로 서는 데 좋은 기회다. 더욱이 창설 이래 수십 년 동안 검찰의 수사 지휘를 받던 관행에서 벗어나려고 전 조직이 몸부림치고 있는 시기 아닌가. 하지만 이 사건 수사 사령탑인 이주민 서울경찰청장이 보여준 모습은 실망스럽다. 김경수 의원과 노무현 정부 때 청와대 국정상황실 행정관으로 같이 근무했던 사적 인연은 잊어야 한다.

특히 2012년 12월 16일 밤 11시 ‘국정원 여직원이 다수의 아이디를 사용한 증거는 있지만 게시글이나 댓글을 단 흔적이 없다’고 서둘러 발표해 여론을 호도한 당시 서울경찰청장의 전철을 밟아서는 안 된다. 이주민 청장은 경찰의 윤석열이 된다는 각오로 국민만 보고 수사에 임하라. 그게 어렵다면 댓글 수사에 정통한 윤석열에게 드루킹 사건을 그대로 넘겨라.

조강수 사회데스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