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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언의 시시각각] 신이 된 네이버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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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80호 34면

이상언 논설위원

이상언 논설위원

총리가 새벽에 전화를 받고 일어난다. 긴급 대책회의가 열린다. 공주가 납치됐다. 인질범은 공주가 울부짖는 모습이 담긴 동영상을 공개하며 해괴망측한 석방 조건을 제시한다. 총리가 돼지와 수간(獸姦)을 하고, 그 장면을 라이브로 방송하라는 것이다. 그렇지 않으면 공주를 살해하겠다고 협박한다. 데드라인은 같은 날 오후 4시. 여론조사에서 72%의 시민이 “총리가 범죄자에 굴복해서는 안 된다”고 한다. 공주 목숨은 곧 자신의 정치 생명이라고 판단한 총리는 포르노 배우를 대역으로 써 가짜 영상을 내보내기로 한다. 그런데 준비 작업이 대중에 알려지는 바람에 헛일이 된다.

드루킹 “네이버 베스트 댓글이 여론” #전지전능한 포털 뉴스 독점 막아야

그러자 인질범은 공주의 신체에 손상을 가하는 장면을 공개하며 총리를 압박한다. 쇼킹한 동영상이 온라인으로 순식간에 퍼지며 여론이 들끓는다. 불과 수 시간 전과는 정반대로 여론조사에서 시민 86%가 인질범 요구에 총리가 응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망설이는 총리는 순식간에 무책임한 사람이 된다. 영국 드라마 ‘블랙미러’ 1편 ‘국가(國歌)’의 줄거리다. 영국 총리는 수간을 했을까? 찾아볼 독자를 위해 답은 비워둔다. 블랙미러는 노트북·스마트폰이 꺼져 있을 때의 액정 화면을 의미한다. 2011년에 시작해 시즌 4(총 19회)까지 진행된 이 드라마는 디지털 미디어와 인공지능(AI)의 발달이 과연 인류를 자유롭고 행복하게 만들었느냐고 끊임없이 묻는다.

한국에서 네이버는 디지털 혁명의 총아(寵兒)다. 1999년에 토종 검색엔진으로 사업을 시작해 대기업집단(재벌)이 됐다. 대다수 국민에게 네이버는 삶의 동반자다. 이를 통해 갈 곳과 먹을 것을 정하고, 물건을 사고, 뉴스를 본다. 1994년 월드컵에서 어느 나라가 우승했는지를 놓고 친구끼리 언쟁할 위험을 막아주기도 한다. 국민을 똑똑하게 만들어 준 것 같다. 얼마나 현명하게 해줬는지는 의문이지만.

‘드루킹 게이트’에서 보듯 네이버는 여론의 전쟁터다. 드루킹은 ‘여론이란 네이버 기사에 달린 베스트 댓글인 것이다. …온라인에서 지면 오프라인에서도 지는 것이다’고 적었다. 그의 주장대로 전쟁은 주로 댓글을 놓고 벌어진다. 드루킹이 했던 것처럼 집단의 힘이나 특수 프로그램을 동원해 특정 댓글의 ‘좋아요’ 수를 압도적으로 늘리면 그 댓글이 맨 윗자리를 차지한다. 그리고 그것이 ‘국민 여론’이 된다.

더욱 근원적 문제도 있다. 모바일 네이버의 최상단에는 기사 5개가 게재된다. 그 시점에 가장 중요한 것으로 선택된 뉴스다. 네이버 측은 “같은 주제의 기사들을 특수 프로그램이 ‘클러스터’로 묶어 제시하면 사람이 하나를 골라 올린다”고 설명했다. 큐레이터라고 불리는 네이버 직원이 ‘유통’시킬 기사를 선정한다는 얘기다.

네이버를 통한 여론 조작 위험을 없애는 방법은 크게 세 가지다. 첫째는 아예 ‘뉴스 장사’를 못하게 하는 것이고, 둘째는 뉴스를 게재할 수는 있도록 하되 클릭하면 해당 뉴스를 생산한 언론사 플랫폼으로 연결되도록 하는 것(‘아웃링크’ 방식)이다. 한국언론진흥재단이 지난해에 낸 보고서에 따르면 국민의 77%가 포털을 통해 뉴스를 읽는다. 네이버의 포털 시장 점유율이 70% 이상이니 최소한 국민의 55%가 네이버를 통해 뉴스를 ‘소비’한다는 계산이 나온다. 공정거래법상 시장 점유율이 50%가 넘으면 시장 지배(독점) 사업자로 추정된다. 그리고 셋째는 현재의 방식대로 두면서 댓글 추천 기능을 없애는 것이다. 가장 소극적 해법이다.

사전적 정의로 신(神)은 ‘초인간적, 초자연적 위력을 가지고 인간에게 화복을 내린다고 믿어지는 존재’다. 여론을 지배하고, 선과 악을 재단하고, 선거 승패와 사업 성패를 좌우하기도 하는 네이버. 이미 신의 동기동창쯤 된 것 같다.

이상언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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