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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의 ‘밉상’ CEO, 한국의 ‘갑질’ 기업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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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손해용 기자 중앙일보 경제부장
손해용 산업부 차장대우

손해용 산업부 차장대우

오만하고 무례하며 비도덕적인 ‘밉상’ 기업인이 한국에만 있는 것은 아니다. 선마이크로시스템스의 공동 창업자인 비노드 코슬라는 미 샌프란시스코 마틴스 해변 주위 땅을 3250만 달러에 사들인 후 이곳으로 가는 유일한 통로를 일방적으로 폐쇄해 주민들의 ‘공적’이 됐다.

아메리칸온라인의 팀 암스트롱 최고경영자(CEO)는 직원들의 출산 소식을 접하고 “‘돈 잡아먹는 아기들’ 때문에 복리후생이 줄어든다”고 말해 공분을 샀다. 로즈인터내셔널의 히만슈 바티아 CEO는 가정부에게 하루 15시간 넘는 일을 시키고 개 옆에서 자도록 학대해 배상금을 물기도 했다.

괜찮은(?) 이미지를 쌓은 실리콘밸리의 거물들도 그리 도덕적이진 못했다. 내부자의 시선에서 실리콘밸리의 민낯을 파헤친 책 『카오스멍키』에 따르면 마이크로소프트의 빌 게이츠는 다른 사람의 운영체제를 베꼈고, 애플의 스티브 잡스는 스티브 워즈니악을 부려먹고 보너스를 가로챘으며, 페이스북의 마크 저커버그는 남의 아이디어를 도용했다. 저자인 안토니오 가르시아 마르티네즈는 날 선 비판을 가하면서도 “결국 성공은 모든 죄를 용서해 준다”고 강조한다.

그의 말대로 미국에서 기업인에 대한 평가는 도덕성보다는 그가 이룬 업적에 의해 좌우된다. 개인적인 일탈에 대해서는 한국보다 관대하다. 하지만 자신의 특권을 남용한 ‘갑질’에 대해서는 엄격한 잣대를 들이민다.

사내 성추행, 인종차별 등으로 구설에 오른 트래비스 캘러닉 우버 창업자는 운전기사에게 폭언하는 동영상이 공개되면서 결국 지난해 자리에서 물러났다. MLB닷컴으로 유명한 ‘MLBAM’의 성장 신화를 쓴 밥 모우먼도 직원에게 폭언을 퍼붓고 몸을 밀치는 등의 언행이 문제가 돼 지난해 말 CEO직을 그만뒀다. 이런 점은 갑질로 물의를 일으켜도 창업자 또는 오너 일가라는 이유로 경영권을 유지하는 한국과는 다른 분위기다.

최근 오너 3세들의 안하무인 처신으로 국민의 정신건강이 위태롭다. 이들은 실리콘밸리 창업자들처럼 용서받을 정도의 업적을 스스로 이룬 게 없는데도 오만방자한 언행은 미국 밉상 CEO들 뺨을 칠 정도다.

조현민 대한항공 전무의 할아버지인 고(故) 조중훈 선대 회장은 해외 출장 때는 현지 호텔이 아닌 파견자 숙소에서 직원들과 숙식을 함께했다. 국내에서 현장을 돌 때는 정장이 아닌 ‘야전 점퍼’를 입고 직원들을 만났다. 그는 평생 금연했지만 혹시라도 담배를 찾는 사람이 있을까 싶어 늘 담배를 호주머니에 넣고 다녔다. 모두 인재 중시, 인간 존중 주의를 바탕으로 나온 행동이다. 문제의 오너 3세들이 창업주들의 이런 마음가짐을 10분의 1만 닮았으면 좋겠다.

손해용 산업부 차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