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진도서는 웃지도 말라”…갈길 먼 ‘다크 투어리즘’

중앙일보

입력

전남 진도 팽목항 방파제 등대와 세월호 추모 조형물. 프리랜서 장정필

전남 진도 팽목항 방파제 등대와 세월호 추모 조형물. 프리랜서 장정필

“아직도 ‘진도에 가서는 웃지도 마라’는 말들을 합니다. 이제라도 세월호의 아픔을 역사적 교훈으로 승화시키려는 국민의식이 필요합니다.”

‘세월호 4년’ 진도 할퀸 트라우마 #참사현장 충격에 경기침체 ‘직격탄’ #기름피해·관광객도 끊겨 생계위협 #어민 고통에도 보상 문제 ‘제자리’ #“다크 투어리즘, 거점돼야” 지적 #진도군, 해양안전관에 실낱 기대

세월호 참사 4주기를 하루 앞둔 지난 15일 전남 진도 팽목항. 진도 앞바다에서 잡아 온 조기를 나르던 주민 박선근(65)씨는 “세월호 사고가 터지기 전만 해도 진도산 수산물 하면 최고로 쳐줬는데 이제는 옛말이 됐다”고 말했다. 그는 “참사 이후 유가족들과 슬픔을 같이해온 주민들의 마음을 생각해서라도 더이상 유언비어는 퍼뜨리지 말았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세월호 참사 4주기를 앞둔 전남 진도의 상설전통시장. 세월호 사고 이후 진도 주민들은 참사가 발생한 현장이라는 이유로 경제적인 타격을 입었다. 프리랜서 장정필

세월호 참사 4주기를 앞둔 전남 진도의 상설전통시장. 세월호 사고 이후 진도 주민들은 참사가 발생한 현장이라는 이유로 경제적인 타격을 입었다. 프리랜서 장정필

세월호 사고가 준 충격과 고통을 교훈으로 새겨야 한다는 움직임이 일고 있다. 지난 4년 동안 희생자 가족들과 슬픔을 함께해온 진도 주민들의 상처가 여전하기 때문이다. 주민들은 참사 직후부터 생업을 중단하고 승객 구조나 봉사활동을 벌였지만, 사고 현장이라는 이유로 갖은 고통을 감수해야 했다.

참사 후 주민들이 겪은 가장 큰 고통은 사고가 발생한 장소라는 ‘트라우마’다. 세월호가 진도 앞바다에서 침몰한 뒤 장기적인 수색 작업과 선체 인양이 이뤄지는 동안 주민들은 마치 죄인이라도 된 듯 숨죽여왔다. 사고 원인과는 별개로 자신들의 삶의 터전에서 300명이 넘게 숨졌다는 충격에 인고의 세월을 보낸 것이다. 지난해 전남대병원 조사 결과 진도 주민 10명 중 2명이 ‘외상후스트레스장애’를 호소할 정도로 정신적인 상처가 깊게 남아있다.

전남 진도 팽목항 분향소를 찾은 방문객들이 희생자들을 추모하고 있다. 프리랜서 장정필

전남 진도 팽목항 분향소를 찾은 방문객들이 희생자들을 추모하고 있다. 프리랜서 장정필

참사 후 외지 관광객들의 발길이 끊긴 것도 진도 주민들의 삶을 어렵게 했다. 사고 전 전남 지역을 대표하는 관광지 곳곳의 숙박업소와 식당들이 세월호 사고의 직격탄을 맞았다. 진도군에 따르면 세월호 사고 후 경제적인 어려움 때문에 어민과 상공인들이 대출받은 특별자금은 270억4400만원에 달한다. 이중 지난해 말까지 92억7300만원(34.3%)만 상환됐을 뿐 나머지는 연장을 한 상태다.

사고 직후 미역이나 꽃게 등 진도산 수산물을 외면했던 사회 분위기도 주민들에게 상처로 남아있다. 아무런 근거도 없이 ‘진도에서 난 수산물을 먹어선 안 된다’는 유언비어가 나돌면서 지역경제에 큰 타격을 줬다. 진도 상설전통시장에서 수산물을 파는 이민자(70·여)씨는 “2년 전까지만 해도 진도에서 잡은 고기라면 손사래를 치는 사람들이 있었다”며 “해산물은 진도에서 난 것이 가장 맛있다고 말해주는 관광객들이 가장 고맙다”고 말했다.

전남 진도 팽목항 방파제에 설치된 세월호 추모 조형물. 프리랜서 장정필

전남 진도 팽목항 방파제에 설치된 세월호 추모 조형물. 프리랜서 장정필

세월호에서 유출된 기름으로 인한 피해도 보상이 이뤄지지 않고 있다. 진도군에 따르면 지난해 3월 선체 인양과정에서 잔존유 50㎘가 유출돼 동·서거차도 일대의 양식장 등 554㏊가 피해를 봤다. 진도 어민들은 “당시 135어가에서 34억여원의 피해가 발생했다”며 서울 광화문과 목포신항 등에서 집회를 열었지만, 보상을 받지 못했다. 진도 동거차도 어촌계장 소명영(56)씨는 “올해 2월 ‘세월호 피해자 지원법’이 통과돼 보상받을 길은 열렸지만, 보상액 산정 절차 등을 거쳐야 해 실제 보상이 이뤄지기까지는 6개월이 넘게 걸릴 것 같다”고 말했다.

일각에서는 침체된 진도의 활로를 ‘다크 투어리즘(Dark Tourism)’에서 찾아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304명의 목숨을 앗아간 국민적인 아픔을 역사적인 교훈으로 승화시키자는 움직임이다. 다크 투어리즘은 재난이나 전쟁·학살 등 비극적인 역사의 현장을 돌아보며 교훈을 얻는 여행을 말한다. 세월호의 경우 참사 3주기인 지난해부터 사회관계망서비스(SNS)와 인터넷 커뮤니티 등을 중심으로 팽목항과 목포신항, 경기 안산을 도는 ‘추모여행’이 확산되고 있다.

 전남 진도 팽목항 방파제에 설치된 등대와 세월호 추모 조형물. 프리랜서 장정필

전남 진도 팽목항 방파제에 설치된 등대와 세월호 추모 조형물. 프리랜서 장정필

진도군도 세월호 희생자 추모와 안전에 대한 중요성을 각인시키기 위해 ‘국립해양안전관’ 건립을 추진 중이다. 팽목항에서 500m가량 떨어진 임회면 남동리 일원 10만㎡ 부지에 지하 1층, 지상 2층 규모로 조성되는 첨단 안전체험 시설이다. 선박 탈출과 4D시뮬레이터, 심폐소생 교육시설 등을 갖춘 국민해양안전관과 함께 해양안전정원(추모공원), 유스호스텔, 추모 조형물 등이 들어선다. 진도군 관계자는 “세월호가 남긴 아픔과 고통을 후손들에게 알리기 위해 국민해양안전관 건립과 세월호 추모 사업에 최선을 다하겠다”고 밝혔다.

진도=최경호 기자 ckhaa@joongang.co.kr

전남 진도의 ‘팽목항 분향소’ 쪽에서 바라본 팽목항 등대와 ‘진도항 배후지 종합개발’ 공사현장 모습. 프리랜서 장정필

전남 진도의 ‘팽목항 분향소’ 쪽에서 바라본 팽목항 등대와 ‘진도항 배후지 종합개발’ 공사현장 모습. 프리랜서 장정필

전남 진도 팽목항 인근에 조성될 국민해양안전관 조감도. [사진 진도군]

전남 진도 팽목항 인근에 조성될 국민해양안전관 조감도. [사진 진도군]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