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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에 완성이 있나요, 소리도 평생 가야죠"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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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79호 08면

국립창극단 ‘심청가’ 도창 안숙선·유수정을 만나다 

국립창극단 신작 ‘심청가’ 도창을 맡은 안숙선 명창과 유수정 명창. 두 사람은 선후배이자 사제지간이다. 사진 국립극장 전강인

국립창극단 신작 ‘심청가’ 도창을 맡은 안숙선 명창과 유수정 명창. 두 사람은 선후배이자 사제지간이다. 사진 국립극장 전강인

“많은 연출가들이 창극을 오페라처럼 또 뮤지컬처럼 만들자고 했죠. 하지만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창극이 만들어져야 해요. 어느 나라나 그 나라를 대표하는 음악과 극이 있잖아요.”(안숙선)

국립창극단이 정통성 있는 ‘대표창극’ 제작에 나선다. 지난 6년간 아힘 프라이어, 안드레이 서반 등 외국 거장, 이소영·고선웅·서재형 등 타장르 스타 연출가들과의 적극적인 실험으로 창극은 공연계에서 가장 핫한 장르가 됐다. 평생 한국적인 연극을 화두 삼아온 연출가 손진책은 판소리의 진수를 보여주는 ‘심청가’(4월 25일~5월 6일 명동예술극장)로 창극의 본질에 다가선다.

김성녀 예술감독은 여기에 ‘안숙선 헌정 공연’이란 부제를 달았다. 1979년 국립창극단에 입단해 예술감독까지 지내며 오랜 세월 대들보 역할을 해온 안숙선(69) 명창에게 작창과 도창을 맡긴 것. 그의 후배이자 제자인 유수정(58) 창악부장도 더블캐스팅으로 안 명창을 따르고 있다. 판소리계 두 ‘왕언니’를 만나 ‘대표창극’이 보여줄 ‘판소리의 진수’를 살짝 미리 맛봤다.

안숙선

안숙선

4일 오후 국립창극단 연습실은 안무가 안은미의 특별출동으로 동선 재정비가 한창이었다. “도창이 작품의 주체”라는 손진책 연출의 말대로 안숙선 명창은 배우들 주변을 맴돌며 내내 분주했다. 창극단 최고참인 유수정 명창도 안 명창을 그림자처럼 따랐다. 연습은 저녁 늦게까지 끝날 줄 몰랐고, 유 명창은 지쳐보이는 안 명창을 안마까지 하며 살뜰히 챙겼다. “눈빛만 보면 선생님 컨디션을 알거든요. 몸이 힘드신 게 보이니까 해드리는 거지 ‘미투’ 안마는 아니에요(웃음).”(유수정)

유수정

유수정

두 사람은 만정 김소희 선생에게 동문수학한 선후배로 40년전 처음 만났다. 유 명창이 안 명창을 좇아 창극단에 입단했고, 만정 타계 후에는 사제지간이 됐다. “유수정씨는 만정 선생의 거의 막내 제자거든요. 선생이 돌아가시고 나니 내가 대신 챙겼지만, 제자라기보다는 후배죠.”(안) “선생님께 깊은 마음을 갖게 된 동기가 있어요. 당신과 무관한 일에는 1분도 할애 안 하는 분인데, 창극단 예술감독 시절 저를 불러다 2시간 동안 앉혀놓고 야단을 치셨어요. 중퇴한 대학을 다시 다니고, 대회에 나가 상도 타고, 갈고닦아 완창도 준비해라. 네가 사람이 되려면 내 말을 듣고, 네 맘대로 할 거면 사람구실 못할 거라고 하셨죠.”(유)  

왜 그렇게 특별히 챙기셨나요.  
안: 내가 보기에 재질도 좋고, 지금은 살쪘지만 그땐 날씬하고 예뻤거든요(웃음). 성격도 원만한데 공부를 안 하더군요. 명창 칭호도 얻고 많은 사람에게 들려줘야 할텐데, 아까운 재질을 왜 낭비하나 싶었죠. 지금은 교단에도 서고 창극단의 제일 어른이 되어 같이 걱정하는 사이가 됐어요.
유: 그때 첫마디가 ‘야, 너 뭐가 그리 잘났냐’였어요. 아주 가슴에 콕콕 박히게 다그치셔서 며칠을 울고 잠도 못잤죠. 결국 수능을 다시 봐서 6년 동안 열심히 공부를 했는데, 지금도 가끔 그 일이 없었다면 내가 어떻게 됐을까, 새록새록 감사한 마음이 생겨요. 이젠 개인적인 일이 생겨도 선생님 댁으로 달려가 해답을 얻죠. 소리 스승이자 인생 멘토로, 든든한 비빌 언덕이죠(웃음).=

작년 춘향가 완창 때도 도움받으셨다구요. 
유: 선생님 모시고 다시 한번 춘향가를 갈고 닦았어요. 선생님도 큰 공연 앞두고 만정 선생께 늘 달려가 배우는 걸 제가 봐왔잖아요. 앞으로도 계속 갈 겁니다.
안: 혼자 할 저력이 있지만 교만하지 않고 와주는 게 고맙죠. 요즘 보면 단원들 다 챙기고 걱정하는 게 대견스럽고 만정 선생이 제자 잘 키우셨구나 싶어요. 만정이나 박귀희 선생 같은 제 스승들은 우리가 따라갈 수 없는 큰 어르신이죠. 그 어려울 때 우리 음악 지키려고 사재 다 털어 교육시키신 거에 비하면 우리는 한 일이 없어요. 선생님들 생각하면 후배들 그냥 넘어갈 수 없죠.

안 명창은 자신도 만정 선생에게 크게 혼난 적이 있다고 회고했다. 만정 타계 직전, 방송에서 국악관현악단과 협연을 할 때였다. “내가 한참 소리를 하다가 힘들어 좀 쉬려고 지휘자와 재담을 나눴는데, 음식도 못 넘기던 선생님이 병원에 누워 그걸 보고 편지를 쓰셨어요. ‘내가 너를 보통 제자로 키운 게 아니다. 관객을 웃겨도 판소리 속에 담긴 예술성으로 웃겨야지, 네맘대로 본질을 벗어나면 큰 광대가 못된다. 제발 부탁이다. 나에게 물어봐 달라’는 내용이었어요. 그걸 받고 뜨거운 눈물을 흘렸죠. 누가 내게 저런 말씀을 해주겠어요. 판소리 속에 담긴 가치관을 가벼이 여기지 말라는 말씀을 늘 잠언으로 여기고 있죠.”(안)

2017제야판소리에서 만정제 흥보가를 선보인 안숙선 명창

2017제야판소리에서 만정제 흥보가를 선보인 안숙선 명창

소릿길은 평생 가는 길이라는데, 왜 그런가요.
안: 나이 먹을수록 사물이 바로 보이잖아요. 젊을 땐 겉만 보이고 속을 알 필요도 없다 생각하지만, 지금은 내면에 있는 것들을 알고 싶죠. 소리도 내면이 있어서, 겉으로 찰랑찰랑 하는건 부끄러운 거에요. 여창 대가 박녹주 선생에게 제자들이 병문안을 갔더니 “내가 소리 좀 알만 하니 가게 되었다”고 하시더래요. 소리는 문학·연기·음악이 어우러져 만들어지는 거라 변화무쌍하고 완성이라는 게 없어요. 사람 사는 것도 똑같잖아요.
유: 소리는 에너지가 점점 축적되는 것 같아요. 창극단에 유명한 전설이 있죠. 어느날 경비 아저씨가 오밤중에 쑥대머리를 만나 놀라 자빠졌는데, 안 선생님이 산발을 하고 늦게까지 혼자 연습에 열중하고 있었던 거예요. 그렇게 축적된 에너지들이 있기에 아무리 컨디션이 안 좋아도 무대만 올라가면 신들린 듯 하세요. 우린 그 정도는 아니죠. 선생님처럼 득음하려면 멀었어요.
안: 득음은 없어요. 경지에 가면 유지해야 득음이지. 2~3일만 안 해도 바로 티가 나니 찰나일 뿐이에요. 참 소리란 게 정직해요. 요즘은 무대 전에 더 겁이 나죠. 그 겁나는 맘을 다스리느라 기도를 많이 합니다.

지난해 유수정 명창은 안 명창의 도움으로 완성도를 높여 춘향가를 완창했다.

지난해 유수정 명창은 안 명창의 도움으로 완성도를 높여 춘향가를 완창했다.

득음은 없다, 찰나일 뿐

‘심청가’는 국립창극단이 오랜만에 선보이는 ‘귀명창들을 위한 공연’이다. 그간의 실험작들에서 연출적 요소에 상대적으로 밀렸던 소리 자체를 전면에 내세운 것. 김성녀 예술감독도 “연습실에서 들려오는 소리에 자꾸 이끌려 오게 된다”면서 한귀퉁이에서 하염없이 듣고 서 있었다. “서양음악과 만나는 시도들은 대중이 우리 소리에 관심 갖게끔 하는 촉매제 역할을 했다고 봐요. 세계인이 다 모이는 세상이니 서로의 음악을 만나보는 것도 나쁘지 않죠. 하지만 거기에 동화돼 우리 형체를 버리면 큰일이죠. 우리 소리는 사람이 살면서 느끼는 희노애락과 정서, 가치관을 노래로 만든거라 외국인들의 심금도 울리거든요. 사람 사는 게 결국 다 똑같으니까. 그래서 소리는 절대 없어지지 않아요.”(안)

‘판소리 본질을 살린 창극’을 표방했는데, 판소리의 본질이란 뭘까요.
안: 판소리의 이면과 내면, 고저, 장단, 시김새 같은 것들이 서양음악과 다르거든요. 우리는 내면을 울리면서 나가야되고 서양음악은 직접적으로 가니까요. 서양음악과 만나는 작업들은 깊이 들어가지 못하고 겉으로만 드러내기 쉽죠. 그러다보면 웅숭깊은 것이 없어지는 게 걱정인데, 실험도 다섯 바탕 공부를 다 한 사람이 해야 할 것 같아요.

국립창극단 ‘심청가’ 연습실에서

국립창극단 ‘심청가’ 연습실에서


혼자서 ‘썰’푸는 판소리와 다른 창극 분창의 매력도 있죠.
유: 극적인 면이 더 많죠. 판소리도 혼자 충분히 극을 살리지만 창극은 눈으로 보는 시각적인 즐거움도 있으니 더 몰입이 된달까요.
안: 각자 소리의 특징들이 다 다르잖아요. 판소리는 누가 제일 잘한다 할 수 없는 게, 역할마다 맡은 소리들이 재미가 있어요. 이 사람은 이런 게, 저 사람은 저런 게 매력인데, 여러 소리를 한 무대서 만나는 거죠. 배우 입장에서는 춘향이 심청이가 직접 되어보는 즐거움도 있고. 거꾸로 공부도 됩니다. 이런 절절한 연기를 판소리는 그렇게 소리로만 표현했구나, 하는 거죠.

손 연출이 “판소리는 모든 현대음악 비트를 다 갖고 있다” 했는데, 우리 장단 자랑 좀 해주세요.
유: 8년 전 ‘산불’할 때 안 선생님이 작창을 하셨는데, 휘모리장단을 완전 랩으로 쓰셨어요. (한 소절 시연하며) 이렇게 휘몰아치는 걸 또 정확하게 들리게 해야 하니, 그 대목만 나오면 동맥이 터질 뻔 했죠(웃음).
안: 최백호 선생이 “랩이 판소리에서 나온 것”이라 했죠. 옛날 선생들은 다 랩가수에요. 심청이 빠지는 대목만 들어봐도 사설이 너무너무 멋진데, 작자 미상이지만 당대 하이클래스 문장가들이 만든 게 분명해요. 심청이 바다로 나가며 파도가 일어나는 모습이 장단으로 표현되는데, 처음엔 유장하게 진양조였다가 귀신들이 나오면서 중모리로 바뀌고, 사지로 들어갈 때는 엇모리, 파도 일어날 땐 자진모리, 고사 지내고 심청이 빠질 땐 휘모리로 몰아가서 빠지고 나면 바람이 멎고 고요해지죠. 이 한 대목에 다 들어있습니다.

도창으로 더블캐스팅된 두 명창은 연습도 늘 함께 한다.

도창으로 더블캐스팅된 두 명창은 연습도 늘 함께 한다.

연습을 보니 도창 비중이 상당합니다.
유: 안 선생님 헌정 공연이라 그런가(웃음). 연출께서 판소리 원형을 그대로 옮기려니 그런 것 같아요. 우리에게도 일부러 연기하려 하지 말고 그냥 소리하라고 하시거든요.
안: 무슨 헌정이라고 해서 괜히 더 바빠졌죠(웃음). 사실 내가 헌정받을 군번인가요. 창극 위해 모든 정열 쏟아부은 스승들 차례가 먼저죠. 부담돼서 자다가도 벌떡 일어나 대본을 봐요. 나는 아직도 공부를 많이 해야 해요. 다만 손 연출이 판소리를 잘 살려서 우리나라 대표하는 음악극을 만들어보겠다는 마음에 공감해 이 시간까지 이러고 있는 거죠. 한국의 창극이 중국의 경극, 일본의 가부키 같은 대표성에 도달하기를 간절히 소망하면서 작업하는 중입니다.

글 유주현 객원기자 yjjoo@joongang.co.kr
사진 신인섭 기자·국립극장 전강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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