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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경제 완전 회복됐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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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4면

노무현 대통령이 최근 터키를 방문해 "물가든 외환이든 경제성장률이든 실업률이든 모든 측면에서 한국 경제는 완전히 회복됐다"고 선언했다. 참여정부 출범 이후 우리 경제를 짓눌러 온 외환위기의 후유증을 다 극복했다는 자신감의 피력이다. 그러나 노 대통령의 이런 판단이 과연 한국 경제의 현실을 그대로 반영하는지는 의문이다. 오히려 많은 국민은 대통령의 이 같은 발언을 두고 어리둥절하다거나 불쾌하다는 반응을 보인다. 심지어 경제정책을 책임지는 정책당국자마저 대통령의 경제판단을 두고 해석하기 힘든 모양이다.

경기가 단기간에 어떻게 변화할지를 판단하기는 쉽지 않은 일이다. 지난 2년간 수출 호황에도 불구하고 소비와 투자는 침체를 면치 못했다. 경기가 살아난다고 하지만 서민들은 경기회복을 실감하지 못한다. 지표상으로 보면 올해는 내수가 회복할 가능성이 커졌다. 소비자기대지수나 경기실사지수 등 각종 심리 지표가 최근 상승세를 보이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심리 지표의 개선이 실물경제의 호전으로 이어질지는 여전히 불투명하다. 고유가.환율변화.북핵 등 한국 경제를 둘러싼 외부 변수는 대통령의 낙관적인 전망이 완전히 빗나갈 개연성을 보여준다.

경기 전망은 어디까지나 전망일 뿐이다. 참고 자료에 불과한 것이다. 지표가 실물경제를 이끌 수는 없기 때문이다. 이런 점에서 경기 전망치를 가지고 경제가 나아진다고 단언하는 것은 성급하다. 정부가 경기 전망을 가지고 국민을 설득하려는 시도는 부작용을 키울 우려가 있다. 자칫하면 경제 운용 계획 자체가 실패할 가능성이 크다. 정부가 앞장서 떠벌리는 장밋빛 전망은 단기적으론 경제 주체들에게 자신감을 불어넣을 수 있겠지만 실제 경제 흐름이 이런 기대치에 못 미칠 경우 감당하기 어려운 상황이 올 수 있다. 결과가 기대에 어긋나면 경제정책에 대한 신뢰는 허물어질 수밖에 없다.

지금은 성장률 몇%에 일희일비하기보다 성장의 질을 더 따져야 할 시점이다. 통계청의 '3월 고용 동향'은 냉엄한 경제현실을 그대로 보여준다. 계절적 요인을 감안한 실업률은 3.5%로 전달과 같았고, 청년층(15~29세) 실업률은 여전히 8.5%로 높은 수준이다. 일자리에 대한 불안감은 여전하다는 얘기다.

정작 문제는 성장률이 아니라 국민 개개인이 앞으로 어떻게 살림을 꾸려갈지에 대한 걱정이다. 성장률 게임만으로는 내실있는 성장이 달성될 수 없다. 성장률 목표보다 국민의 삶의 질을 실질적으로 어떻게 높일 것이냐가 더 중요한 정책 과제다. 1960년대에는 봉제.가발 등 경공업이 한국을 먹여 살렸다. 70년대는 철강.조선 등 중화학공업이 한국 경제를 이끌었다. 90년대에는 정보기술(IT) 등 첨단 산업이 주역이었다.

그런데 앞으로는 어쩔 것인가. 관건은 눈앞의 수치 변화가 아니라 미래에 대한 청사진이다. 지금은 국가가 경제 개발을 주도하는 시대가 아니다. 그러나 국가 발전을 위한 전략을 강구하고 방향을 제시하는 일은 여전히 정부의 몫이다. 몇 가지 거시 지표에 따라 달라질 수 있는 경기 전망에 정부 정책이 좌우돼서는 안 된다. 오히려 앞으로 한국 경제가 무엇으로 먹고살 것인지를 고민하는 것이 훨씬 더 현실적이다.

지난해 내내 한국 경제에 대한 논의의 초점은 국민소득 1만 달러 국가의 위기론이었다. 1인당 국민소득 1만 달러 국가의 함정에서 벗어나지 못하면 한국 경제는 헤어나지 못할 것처럼 보였다. 그러나 환율 효과에 의해 돌연 1인당 국민소득이 1만 달러를 훌쩍 넘어서자 위기 논란은 어느덧 사라져 버렸다. 숫자놀음의 함정이다.

경기가 회복됐다고 선언한다고 실제 경제가 살아나는 것은 아니다. 이제는 성장률 게임이 아니라 미래에 대한 비전과 전략을 모색하는 것이 더 급하다.

김종일 동국대 교수.경제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