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0회삼성화재배세계바둑오픈] 뤄시허 우승, 한·중 결전의 시대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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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7면

'제10회 삼성화재배 세계바둑오픈'

<결승3국 하이라이트>
○ .이창호 9단(한국) ● . 뤄시허 9단(중국)

이창호 9단의 고개가 숙여졌다. 뤄시허(羅洗河)9단의 두 눈은 긴장으로 떨리고 있다. '속기의 명수' 뤄시허가 이창호라는 신화적 존재를 무너뜨리며 우승을 향해 달려가고 있다. 그렇다. 믿을 수 없는 일이었지만 이창호가 졌다. 뤄시허는 신들린 듯 잘 뒀고 상대적으로 이창호에겐 운이 따라주지 않았다. 승부의 기로에서 이창호 9단이 좋은 길을 놔두고 '패'라고 불리는 사나운 진창길을 선택했던 것도 의외였다.

17년 전인 1989년 응씨배 결승전이 떠오른다. 당시 변방의 고수에 불과했던 한국의 조훈현 9단은 세계 최강자로 지목받아온 중국의 녜웨이핑을 쓰러뜨리고 정상에 올랐다. 기세를 탄 한국은 이후 무수한 역전 드라마를 연출하며 끝없이 승리를 쟁취했다. 실력과 기세에다 운까지, 삼박자를 고루 갖춘 한국 앞엔 적수가 없었다. 그러나 이제 한국바둑의 오랜 황금기는 끝나고 세계무대는 한.중 대결의 시대로 접어드는 인상이다. 뤄시허는 중국의 최강자도 아니다. 다음엔 더 강한 존재들이 줄을 지어 나타날 것이다. 한.중 결전이 시작된 것이다.

장면도(278~285)=승부가 결정되는 마지막 장면이다. 이창호 9단이 278로 패를 쓰고 280 따낸다. 278은 손해패다. 오랜 패싸움 속에서 이런 손해들이 누적돼 백의 심신을 갉아먹고 있다. 뤄시허가 281에 둔 것은 패를 져도 끝내기 정도로 이길 수 있다고 본 것이다. 그 계산은 정확했다. 282로 귀에서 살았으나 285가 마지막 큰 곳. 이후 무려 360수까지 가는 긴 종반전 끝에 계가하니 흑이 5집반을 이기고 있었다. 종합 전적 2승1패로 뤄시허가 제10회 삼성화재배 우승컵을 차지한 것이다. 뤄시허의 시계는 아직 30분이 남아있었다. (내일부터는 KT배 왕위전을 연재합니다.)

박치문 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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