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일기] 개도국 타령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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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이 개발도상국입니까."(파스칼 라미 유럽연합(EU) 통상 담당 집행위원)

"한국은 말리.소말리아.캄보디아가 아닙니다."(미국 정부 관계자)

지난 4일 한국의 주요 일간지와의 회견에서 미국과 EU 관계자들은 이같이 밝혔다. 오는 10~14일 멕시코 휴양도시 칸쿤에서 열리는 세계무역기구(WTO) 각료회의를 앞둔 사전포석이다. 이들이 전례없이 한국에 대한 홍보공세를 펼치는 것은 국제무역의 새 틀을 짜는 데 한국이 중요한 협상 상대라고 생각해서다.

칸쿤 회의에서 한국 정부의 최대 목표는 개도국 지위를 유지하는 것이다. 정부가 개도국 지위에 목을 매는 것은 이해할 만하다. 경쟁력이 떨어지는 농업분야를 개방할 경우 농민들의 반발은 물론 내년 총선을 앞두고 정치적으로 안게 될 부담이 크기 때문이다.

그러나 세계 경제의 양대 축인 미국과 EU는 한국이 농업분야에서 개도국이냐는 질문에 똑부러지게 "노(No)"라고 밝혔다. 정부의 노력과는 별개로 개도국 지위를 유지하기가 어렵다는 얘기다.

개도국 지위 유지는 과거 우루과이라운드(UR)협상에서도 최대 목표였다. 그게 꼭 10년 전의 일이다. 당시 정부는 국내 농업의 취약성을 읍소해 10년간 개도국 지위를 인정받았다. 그래서 쌀시장의 전면개방을 미룰 수 있었다. 이제 약속했던 개방시한이 내년 말로 다가왔고 새로운 협상이 시작됐다.

10년이 지난 지금 뉴라운드 협상을 앞두고 정부는 여전히 개도국 지위 유지를 외치고 있다. 국제사회는 "자동차.반도체.휴대전화를 수출하는 나라가 개도국이냐"고 반문하고 있다.

정재홍 경제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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