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새 스마트폰으로 바꾸세요"…교체주기 길어지자 속타는 업계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직장인 이 모(36) 씨는 ‘얼리어답터’다. 전자기기에 관심이 많아 새로운 기기가 나오면 점심값을 아껴서라도 꼭 산다. 이 씨의 방엔 인공지능(AI) 스피커부터 빔프로젝터, 드론, 가상현실(VR) 헤드셋까지 있다.

특히 이씨가 가장 좋아하는 기기는 스마트폰이다. 20대에는 매년 단말기를 바꿨고, 단말기 3개에 대한 할부금을 동시에 낸 적도 있었다. 그런데 이 씨는 현재 사용 중인 스마트폰을 2년 2개월 동안 쓰고 있다. 딱히 갖고 싶은 단말기가 없어서다.

이 씨는 “단말기 할부금 납부기한도 끝났지만, 스마트폰을 교체할 계획이 없다”며 “가격이 계속 올라가서 새 제품은 100만원이 넘는 데 딱히 지금 쓰고 있는 단말기와 별 차이가 있는 것으로 보이지 않는다”고 말했다.

요즘 스마트폰 업체는 속이 탄다. 스마트폰 교체 주기가 길어지고 있어서다. 신상품이 나오면 1~2년에 한 번씩 새 스마트폰으로 교체했던 이들이 요즘은 3년이 다 되도록 쓰던 단말기를 계속 사용한다. 업체 입장에선 수요가 줄어든 셈이다.

글로벌 시장조사업체인 베이스트리트 리서치에 따르면 스마트폰 평균 교체 주기는 2014년 1년 11개월에서 올해 2년 7개월로 길어졌다.

갤럭시 S9.

갤럭시 S9.

사실상 수요가 줄어들자 스마트폰 출하량도 감소하고 있다. 시장조사업체인 가트너에 따르면 지난해 4분기 전 세계 스마트폰 판매량은 전년 같은 기간 대비 5.6% 하락한 4억800만대다. 2400만 대가 줄어든 것이다. 이는 이 업체가 조사를 시작한 2004년 이후 첫 판매량 하락이다.

시장조사업체인 스트래티지 애널리틱스의 조사에서도 지난해 4분기 스마트폰 출하량은 전년 같은 기간 대비 8.7% 줄었다. 2016년 4분기만 해도 전년보다 출고량이 8.9% 많았다.

"색다른 기능 없고 너무 비싸"…교체주기 길어져 

스마트폰 교체 주기가 길어진 데는 기술의 상향 평준화 영향이 크다. 이전에는 업체별 기술 격차가 단말기에 고스란히 반영됐지만 최근엔 별반 차이가 없다는 것이다. 업계에선 ‘사실상 스마트폰에 넣을 수 있는 기능은 다 나왔다’는 얘기가 공공연하다.

예컨대 갤럭시 시리즈는 매년 새 상품을 발표할 때마다 화면 테두리를 없애거나 지문 인식, 방수, 인공지능(AI) 비서 등 이전에 보지 못했던 기능을 내놨다. 하지만 최근 출시한 갤럭시S9은 ‘새롭다’고 느낄 만한 기능이 없다는 지적이 나온다. 현재 판매량은 전작의 70% 수준으로 알려졌다.

여기에 가격은 계속 오르고 있다. 2014년 나온 아이폰 6 출고가는 78만~105만원이었다. 지난해 말 출시한 아이폰 8의 출가는 94만~114만원이다. 이동통신사 관계자는 “현재 내가 가지고 있는 스마트폰과 큰 차이를 느끼지 못하는데 100만원이나 하는 고가의 제품에 지갑을 열 이유는 없다”고 말했다.

사정이 이렇자 스마트폰 업체들이 자구책 마련에 나섰다. LG전자는 아예 ‘오래 쓰는 스마트폰’을 내세웠다. ‘소프트웨어 업그레이드 센터’를 만들고 기능별 소프트웨어 업데이트, 운영체계(OS) 업그레이드 등을 진행한다. 제품 판매 후 사후 지원을 강화하겠다는 것이다.

업데이트 범위도 카메라 편의기능부터 스마트폰 결제 서비스 등으로 넓어진다. 원격 지원 기능으로 시간과 장소의 제약 없이 수리 서비스를 제공한다. 황정환 LG전자 모바일커뮤니케이션(MC) 사업본부장은 지난달 스페인에서 열린 MWC 2018에서 “우리 폰을 고객들이 안심하고 오래 쓸 수 있게 하겠다”고 밝혔다.

왼쪽부터 아이폰X, 아이폰8, 갤럭시S8.

왼쪽부터 아이폰X, 아이폰8, 갤럭시S8.

삼성전자는 중고폰 보상제를 내놨다. ‘헌 스마트폰 내면 새 스마트폰 준다’는 콘셉트다. 갤럭시 뿐 아니라 애플 중고폰을 반납하면 시세보다 10만원을 더 지급한다는 방안이다. SK텔레콤‧KT‧LG유플러스 등 이동통신사도 중고폰 보상제를 강화하고 있다. 최경식 삼성전자 무선사업부 전략마케팅실장도 MWC 2018에서 “쓰던 폰 보상, 고객데이터마케팅(CDM), 체험 마케팅 등을 강화해 (고객의 스마트폰) 교체 주기를 단축하고 S9을 더 팔 생각”이라고 말했다.

LG전자 "오래 쓰는 폰" VS 삼성전자 "헌폰 주면 새폰 줄께"

하지만 이런 서비스가 새 스마트폰을 위해 지갑을 열기에는 여전히 부족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소프트웨어 업그레이드는 지원이 가능한 단말기 제한이 있고, 중고폰 보상의 경우 가격 책정 기준이 시세보다 낮아 사실상 혜택이 아니라는 불만이 나온다.

앞으로 스마트폰 교체 주기는 더 길어질 것으로 보인다. 아직까지 한국에선 다른 국가보다 스마트폰을 자주 바꾼다. 시장조사기관 카운터포인트에 따르면 독일의 스마트폰 교체 주기는 32.5개월, 중국 40.4개월, 필리핀 43.5개월, 인도 48.3개월이다.

이동통신사 관계자는 “앞으로 교체 주기가 더 길어질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고 있고, 중국이 중저가폰을 장악한 상황에서 가격 인하도 쉽지 않다”며 “하드웨어는 상향 평준화한 만큼 소프트웨어 혁신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최현주 기자 chj80@joongang.co.kr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