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 '일방주의 외교' 변하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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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 조지 W 부시 대통령의 '일방주의 외교(unilateralism)'가 변화의 조짐을 보이고 있다.

그는 전통적 우방인 프랑스.독일은 물론 유엔도 무시한 채 '힘의 외교'로 일관해 왔다는 평을 받아왔다. 그러나 지난주엔 이라크 문제와 관련, 유엔의 지원을 호소하면서 다른 동맹국들과의 관계도 개선을 모색하고 있다.

이라크의 전후복구 사업이 질곡에 빠지고 압바스 팔레스타인 총리의 사퇴로 중동 평화안(로드맵)마저 무산위기에 처했기 때문일까.

딕 체니 부통령.도널드 럼즈펠드 국방장관 등 부시 행정부 내 강경파들은 궁지에 몰리고 온건파인 콜린 파월 국무장관이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부시는 이라크 문제와 관련, 7일 밤(미국시간) 대국민 연설을 통해 미 국민들과 동맹국들에 협조를 요청할 계획이다.

◆"일방주의가 아니다"=파월 국무장관은 5일 조지 워싱턴대 연설에서 "부시 대통령의 외교는 세계의 모든 나라들과의 파트너십을 중시한다"고 주장했다.

나토(NATO)나 유엔은 물론 지난 반세기 동안 동맹관계를 맺어왔던 나라들과의 관계도 마찬가지라는 것이다. 파월의 발언은 미국이 '나홀로 외교'를 하고 있다는 비판에 대한 반박이며 동시에 부시 외교정책의 부분적인 수정을 암시하는 것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부시 행정부의 태도 변화는 올 가을부터 본격화될 대통령 선거운동에서 일방주의 외교정책이 집중적으로 비판될 것을 우려했기 때문으로 보인다. 부시 대통령은 7일의 이라크 재건에 필요한 지원금의 총액을 밝히고 국민에게 지지를 호소할 것이라고 뉴욕 타임스는 보도했다.

또 이라크전에 반대했던 국가들에 대해서도 더 유화적인 태도를 취할 것이라고 이 신문은 보도했다.

하지만 브루킹스 연구소의 이보 댈더 연구원은 "자기가 얘기하는 건 옳고 남들은 무조건 거기에 따라야 한다는 게 부시의 방식"이라면서 "다른 나라들을 찾아다니며 협조를 요청하는 게 아니라 이런 식으로 발표만 하면 된다고 생각하는 게 문제"라고 꼬집었다.

◆강경파는 어디 갔나=부시 대통령 주변의 강경파에 대한 미 언론과 의회의 시각이 곱지 않다.

럼즈펠드 국방장관은 지난주 "미군이 푸른 헬멧(유엔을 의미)을 쓰고 지휘받는 상황은 없을 것"이라고 공언했었다. 하지만 부시 대통령은 며칠 뒤 유엔의 지원을 공식 요청했다.

럼즈펠드 국방장관은 이라크전 이후 거의 날마다 언론에 나와 미국의 강경입장을 설파했으나 최근에는 발언을 자제하고 있다.

부시 행정부 내의 또 다른 강경파인 체니 부통령은 거의 언론과의 접촉을 끊고 있는 상태다. 지난 2일부터 휴가를 끝내고 복귀한 미 의회는 이라크 문제와 관련, 잇따라 청문회를 열고 럼즈펠드 국방장관과 폴 울포위츠 부장관 등 강경파들을 추궁할 계획이다.

워싱턴=김종혁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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