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최후 심판일' 같은 참상…시리아 화학무기 공격으로 70명 사망

중앙일보

입력

시리아 두마에 정부군 소행으로 보이는 화학무기 공격이 발생해 어린이를 포함해 최소 70명이 숨졌다. [AP=연합뉴스]

시리아 두마에 정부군 소행으로 보이는 화학무기 공격이 발생해 어린이를 포함해 최소 70명이 숨졌다. [AP=연합뉴스]

 시리아 반군 지역인 동구타 두마에 바샤르 알아사드 정권의 소행으로 추정되는 화학무기 공격이 발생해 어린이를 포함해 최소 70명이 숨졌다. 시리아 철군을 검토하던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강경 대응으로 선회하려는 움직임을 보이는 가운데 시리아 정부군의 공군기지에 미사일 폭격이 가해졌다.

시체 더미 옆 신음하는 어린이..피해자들 경련과 입에 거품 #반군측 "사린가스 폭탄으로 부상자 1000명 달해" #중부 정부군 비행장에 피격 당해 이란 군 포함 14명 숨져 #철군 검토하던 트럼프, 군사 공격 선회 여부 주목

 시리아에서 활동하는 구호단체 등에 따르면 지난 7일(현지시간) 두마의 병원 등에 염소가스 폭탄이 떨어졌고, 2차로 신경작용제를 포함한 화학무기 공격이 가해졌다. BBC는 시리아 내전 감시단체를 인용해 사망자가 최소 70명이라고 보도했다. 두마 지역 반군조직은 100명 가량이 숨졌다고 주장했다. CNN은 부상자가 500여 명에 달한다고 전했다.

반군과 가까운 구타 미디어센터는 트위터에서 "75명이 질식사했고 1000명 가량이 부상을 입었다"며 "헬기에서 떨어진 폭탄은 사린가스를 담고 있었다"고 트위터에 밝혔다. 미국에 본부를 두고 시리아 병원에서 활동하는 의료 구호단체는 피해자들이 경련과 입에 거품을 무는 등 신경작용제나, 신경작용제와 염소가스가 혼합된 가스에 노출됐을 때와 같은 증상을 보이고 있다고 전했다.

화학무기 공격 피해자들은 의료진과 의약품 등이 부족해 제대로 치료를 받지 못하고 있다. [AP=연합뉴스]

화학무기 공격 피해자들은 의료진과 의약품 등이 부족해 제대로 치료를 받지 못하고 있다. [AP=연합뉴스]

 한 현지 매체 기자는 가디언에 “현지 진료소에 일가족 전체가 바닥에 담요를 덮고 있었는데 인근에 수의를 입은 시체 40여구가 놓여있었다. 냄새가 진동했다"고 참담함을 전했다. 그는 “사람들이 대처할 방법이 없어 멍하게 걸어 다니고 여성들은 울고 있었는데 마치 최후의 심판일 같았다"고 말했다.

 현지 병원에는 의료진과 의약품이 부족해 손을 쓰지 못하고 있다. 한 구급대원은 "별다른 대책이 없어 환자 대부분이 목숨을 잃을 것"이라고 말했다. 일부 구조대원도 화학무기에 노출된 것으로 전해졌다.

화학무기 공격을 받은 어린이를 구조대원이 데리고 나오고 있다. [AP=연합뉴스]

화학무기 공격을 받은 어린이를 구조대원이 데리고 나오고 있다. [AP=연합뉴스]

 시리아 정부군은 국영 통신을 통해 “독극물 공격 주장은 반군의 조작"이라며 화학무기 공격을 부인했다.
 이런 가운데 미사일 여러 발이 중부 홈스에 있는 T-4 군용 비행장을 타격했다고 9일 시리아 국영TV가 보도했다. 내전 감시단체 시리아인권관측소는 “이란 병력을 포함해 최소 14명이 사망했다”고 전했다. 이 기지는 시리아 정부군뿐 아니라 러시아와 이란, 레바논 무장정파 헤즈볼라 병력도 주둔하고 있다.

 알아사드 정권이 지난해 4월 반군 점령지인 칸셰이쿤에 대규모 화학무기 공격을 벌이자 트럼프 대통령은 토마호크 미사일 59발을 발사해 시리아 공군기지를 공습했었다.
시리아 정부는 이번 미사일 공격 역시 미군 측에 의한 것이라고 의심했지만 미 국방부는 “이번에는 시리아 공습을 하지 않았다”고 밝혔다. 공격 주체가 확인되지 않고 있는 가운데 이스라엘의 공격 가능성이 제기되고 있다.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 [로이터=연합뉴스]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 [로이터=연합뉴스]

 시리아 정권의 화학무기 공격 만행이 재연되면서 시리아 주둔 미군 병력의 철수를 주장해온 트럼프 미 대통령이 입장을 바꿀 것인지 주목되고 있다. 그의 미군 철수 시사 발언이 아사드 정권의 화학무기 사용에 빌미를 줬다는 비판이 나오면서 트럼프 대통령이 전격적인 군사 행동에 나설 가능성이 커지고 있다고 워싱턴포스트(WP) 등이 보도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트위터를 통해 “여성과 아이들을 포함해 많은 이들이 화학 공격으로 숨졌다”며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과 러시아, 이란은 짐승 같은 아사드를 지지한 책임이 있다. 큰 대가를 치를 것"이라고 경고했다. 토머스 보서트 백악관 국토안보보좌관도 ABC 방송에 출연해 “어떤 것도 테이블에서 배제하지 않을 것”이라며 군사 공격의 가능성을 열어뒀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트럼프 대통령이 9일 선임 군사고문들과 저녁을 함께할 예정이라며 시리아 문제가 논의될 것이라고 전했다. 미군 당국은 이미 다양한 옵션을 마련했다고 WSJ은 보도했다.

 대북 강경파인 공화당 린지 그레이엄 상원의원은 방송 인터뷰에서 “그들은 시리아에 머물려는 미국의 의지가 약해지는 것을 봤다. 화학무기를 사용한 것은 우연이 아니다”며 “지금이 트럼프의 대통령직에 결정적인 순간”이라고 말했다. 이어 “의미 없는 트윗에 그친다면 트럼프는 북한에 대해서도 상처를 입게 될 것이고 러시아와 이란의 눈에도 약해 보일 것”이라고 압박했다. 그는 알아사드 축출을 위한 비밀작전 재개를 제안했다.

시리아 주둔 미군 [AP=연합뉴스]

시리아 주둔 미군 [AP=연합뉴스]

 시리아 문제는 9일 임기를 시작하는 존 볼턴 백악관 국가안보회의(NSC) 보좌관, 12일 인준 청문회를 앞둔 마이크 폼페이오 국무장관 지명자 등 새 외교안보라인에도 시험대가 될 것으로 미국 언론들은 내다봤다.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도 트럼프 대통령과 통화한 뒤 “강력한 공동 대응”에 합의했다. 프랑스와 영국 등 9개 국가의 요구로 유엔 안전보장이사회가 긴급회의를 열고 화학무기 문제를 논의한다.

 시리아 내전은 러시아와 이란, 터키의 나눠 먹기로 정리되려던 참이었다. 지난 4일 푸틴 대통령과 하산 로하니 이란 대통령, 레제프 타이이프 에르도안 터키 대통령은 앙카라에서 정상회담을 하고 “시리아의 영토적 통합성을 지키겠다"며 ”시리아 내전은 군사적 해결책은 없고 정치적 협상 과정을 통해 종식될 수 있다”고 밝혔다. 사실상 알아사드 정권의 통치를 공고히 하겠다는 뜻으로 받아들여졌다.

하산 로하니 이란 대통령과 에드로단 터키 대통령,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정상회담을 하고 시리나 내전 문제를 논의했다. [EPA=연합뉴스]

하산 로하니 이란 대통령과 에드로단 터키 대통령,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정상회담을 하고 시리나 내전 문제를 논의했다. [EPA=연합뉴스]

 미국과 프랑스, 영국 등 서방이 러시아 등에 대한 비난 전선을 펴는 가운데 향후 반인권적 화학무기 공격에 따른 트럼프 대통령의 대응에 따라 향후 시리아 사태의 향배가 영향 받을 전망이다.

 시리아 주둔 미군 지휘부는 현 상태에서 철군에 부정적이다. 미군이 2011년 이라크에서 승리 선언 후 철군했다가 이슬람국가(IS)가 발호한 것 같은 상황이 시리아에서도 일어나면 안 된다는 입장이다. 미 정부는 내전 초기 아사드 정권 축출을 추구하다 이후로는 IS 격퇴전에 집중해왔다.

런던=김성탁 특파원 sunty@joongang.co.kr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