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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년 고통시대 … 대학 나와도 생활고에 마음의 병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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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78호 10면

아픈 청춘, 실태는

“확실한 증거는 없다. 그러나 이상조짐은 분명하게 보인다.” 요즘 한국 청년들의 정신건강에 대한 전문가들의 이야기다. 조짐은 통계적으로도 일부 드러난다. 성인에 비해 청년 우울증 증가율과 자살충동이 훨씬 높다. 현대경제연구원의 분석에 따르면 2012~2016년간 청년층 인구 10만 명당 우울증 환자수의 연평균 증가율은 4.7%로 전체 세대 1.6%를 앞질렀다. 중앙자살예방센터 조사 결과 청년의 자살충동은 7.4%로 성인(5.2%)보다 높게 나타났다. 자살률(인구 10만 명당)은 지난해 10월 기준 20대(16.4)와 30대(25.1)가 모두 OECD국가들의 평균 자살률(20대 10.5, 30대 12.3)을 웃돌고 있다. 그러나 청년들이 왜 아프고, 어떻게 아픈지는 잘 모른다. 한창수(고대의료원) 교수는 “청년 정신건강 문제는 그동안 사회적 관심사가 아닌 탓에 전수조사를 해본 적도 없고, 연구도 별로 이루어지지 않아서”라고 말했다. 실상 파악이 안 되니 대책 마련도 어렵다는 것이다. 그래서 중앙SUNDAY는 고대의료원·중앙자살예방센터와 함께 임상사례를 통해 청년들은 ‘왜 그리고 어떻게 아픈지’ 살펴보았다.

부모는 조기 은퇴, 자녀는 비정규직 #성실한 사람일수록 정신적 타격 커 #“나가면 사고 칠까봐” 은둔 외톨이 #언제 터질지 모르는 분노의 폭탄 #의학적 병 아니지만 실제로 아파 #청년층 정신건강 연구·치료 시급

탈출구 없는 경제적 고통

#자살을 시도해 응급실로 왔던 청년 A(28)는 하루종일 택배와 아르바이트 등 고된 일을 성실히 해온 청년이었다. 그는 은퇴하고 빚까지 있는 부모와 동생의 생계를 책임지고 있었다. 그러다 어느 날 문득 ‘쉬고 싶다’는 생각이 든 순간 자살을 시도했다.

#제과기술자로 직장을 다니고 있던 B(23·여)씨는 환청과 심한 우울증에 시달렸다. “이렇게 평생 일만 하다 죽을지도 모른다”는 공포가 큰 이유였다. 조기 은퇴한 부모가 중년 우울증에 걸리고, 착한 딸은 생활고의 압박을 크게 느꼈다는 것이다.

노후준비 없이 조기 은퇴하는 부모들, 패자부활전이 없는 사회에서 부모 세대의 빚이 자식에게 그대로 전가되는 사회구조는 청년 정신 고통에 직격탄을 날린다. 자신들도 비정규직에 낮은 임금으로 어려운데 여기에 부모가 중년기 우울증까지 겪게 되면 자녀들도 정신적 타격을 받게 된다는 것이다. 착하고 성실한 청년들일수록 더 정신적으로 아프다. 두 사례는 약물치료를 하고 있지만, 경제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 한 근본적인 치료가 안 된다는 게 문제다.

부모의 모럴해저드

[그래픽=이정권 기자 gaga@joongang.co.kr]

[그래픽=이정권 기자 gaga@joongang.co.kr]

#‘조기유학’과 ‘학자금 대출 빚’.

요즘 신경정신과를 찾는 청년들의 원인으로 자주 등장하는 사례다. 특히 나홀로 조기유학을 한 청년들 중엔 적응장애, 우울 등 다양한 정신장애를 겪는 경우가 많다. 군에선 관심사병이 되거나 외국서 따온 학위와 자격증으로 취업은 했지만 적응장애와 왕따로 직장에서도 떠도는 생활을 하다 정신과를 찾는다. 이들을 추적해보면 한국에서 좋은 대학에 가기 어려워 부모들의 탈출구로 조기유학을 선택한 경우가 많다. 보호해주고 롤모델이 돼주는 부모가 없는 상태에서 과도한 긴장감 속에 청소년기를 보내면서 정신건강에 문제가 생기는 경향이 있다. 또 학자금 빚으로 인한 고통도 생각보다 심각하다. 과거엔 노력과 학력으로 성공할 수 있었지만 지금은 그렇지 않다. 오히려 빚만 남긴 학력이 청년들에게 분노와 억울함을 가중시킨다. 부모들도 학비를 대줄 수 없으면 진학이 아닌 다른 진로를 찾아주는 등 자녀를 보호해야 한다는 책임감을 높여야 할 필요가 있다.

우울·분노 안으로 쌓여

#C(27)군은 아버지 손에 이끌려 정신과를 찾았다. 아버지는 학교 졸업 후 밖에 잘 나가지 않고 주로 컴퓨터만 하는 아들이 어느 날 심한 ‘여혐’ 댓글을 다는 것을 보고 아들을 병원으로 데려 왔다.

C군과 같은 은둔형 외톨이 청년들의 사례는 대개 군대에 갈 나이가 되어 부모들이 병원에 데리고 와 드러나는 경향이 있다. 대부분 정신질환 진단을 받기 위한 것이다. 그런데 이들은 사회 부적응 사례는 맞지만 우울증이나 조현증 등 현대 의학에서 정신질환으로 분류하는 어떤 질병으로도 분류되지 않는다.

분노만 가득하고, 개중에는 화병이나 울분장애 증상을 보이지만 현재로선 ‘진단명 없는 분노장애’ 정도밖에는 말할 수 없다. 특히 이들이 밖에 나가지 않는 이유는 자기 안에 있는 분노의 실체를 분명히 알고 있기 때문이다. “길을 가다가 여자를 찌를 것 같다” “밖에 나갔다가 사고를 칠까봐” 등 자신의 상태를 판단하고 자제하는 능력도 있다. 일본의 은둔형 외톨이의 특징은 ‘무기력’으로 나타나지만 한국의 은둔형 외톨이는 좀 더 역동적이어서 주로 ‘여혐’댓글 등 반사회적 여론 조성에 나서는 경향을 보인다. 화와 분노는 어디론가 폭발해야 하는데 청년기에는 자기 내부로 폭발해 분노감만 커지는 경향을 보인다. 문제는 이런 상태가 지속돼 분노가 외부로 폭발하면 ‘묻지마 범죄’로 갈 수 있다는 점이다. 더 큰 문제는 은둔형 외톨이 사례의 경우 군대에 가기 전 병원을 찾는 일부 청년의 사례를 통해서만 확인될 뿐 그 특징은 제대로 파악이 안 되고 있다는 점이다.

인간 관계의 단절

요즘 청년들은 ‘막연히 불안하다’ ‘이성관계가 안된다’ ‘친구들이 나를 싫어하는 것 같다’ ‘잠이 안 온다’는 등 고민상담을 위해서 정신과를 찾는 사례도 늘었다. 정신과의 문턱이 낮아지기도 했지만 과거엔 친구와 가족들 간에 풀었던 문제들을 전문가 상담으로 풀고 있는 경향이 늘고 있는 것이다. 많은 정신적 문제들은 인간관계를 통해 해소되는데, 이 통로가 막히고 있는 것은 아닌지 살펴볼 필요가 있다. 특히 인간관계의 단절로 인해 전문기관을 찾거나 SNS활동을 통해 자신을 알리는 데 몰두하는 경향도 나타난다. 인간관계가 아닌 기계를 매개로 한 SNS 소통을 통한 해소가 과연 정신건강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도 연구해야 할 분야다.

양선희 선임기자 sunny@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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